여기저기 재즈가 풍년이다. 유튜브에도 스탠다드 재즈부터 K-pop을 편곡한 재즈 플레이리스트가 넘쳐나고, 노동요가 필요한 많은 노동자들은 귀가 피로해지는 음악을 잠깐 내려놓고 재즈를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이곳, 지리산 산골에도 재즈가 울려퍼지고 있다. 시골의 동네카페부터 각종 활동가들의 연대 현장까지, 자신들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는 살래재즈팀 이야기다. 다정한 연주자, 살래재즈팀의 콘트라베이시스트 한결과 트럼페터 보석을 만나봤다.[기자말] |
여기저기 재즈가 풍년이다. 유튜브에도 스탠다드 재즈부터 K-pop을 편곡한 재즈 플레이리스트가 넘쳐나고, 노동요가 필요한 많은 노동자들은 귀가 피로해지는 음악을 잠깐 내려놓고 재즈를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이곳, 지리산 산골에도 재즈가 울려퍼지고 있다. 시골의 동네카페부터 각종 활동가들의 연대 현장까지, 자신들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는 살래재즈팀 이야기다. 다정한 연주자, 살래재즈팀의 콘트라베이시스트 한결과 트럼페터 보석을 만나봤다. - 기자 말
[지난 기사] 지리산엔 '재즈 복지'가 있습니다 https://omn.kr/29lfp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발을 담그고
- 지리산권 이곳저곳에서 살래재즈팀을 불러주는 걸 보면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공연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것 같아요. 이렇게 공연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보석: "형식적인 공연보다 지리산권에서 벌어지는 공연이 더 감동적인 순간이 많아요. 과거에 공연할 때 행복의 기준이라 하면 클린하게 잘 끝난 공연, 그리고 페이가 많은 공연이었는데, (웃음) 여기선 그런 걸 기준으로 놓기 어려워요. 대신 이곳에서 하는 공연의 행복은 우리 음악이 필요한 곳에 가닿았을 때의 느껴요.
예를 들면 최근에 골프장 건설이 예정되어서 숲을 밀어놓고 벌목지를 탐사하고 있는 구례 사포마을에서 행보를 규탄하는 연대 문화제에 초대받아서 갔었는데요. 이런 행사에서 저희를 불러준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었기 때문에 연대하는 차원에서 이 행사를 위해서 민중가요나 연대 현장에서 자주 불리는 노래를 편곡하고 준비했어요. 그렇게 공연에서 마을 주민분들과 대책위 분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했던 순간이 엄청 행복했어요. 이 순간엔 공연의 페이가 별로 중요한 게 아니게 되는 거죠. 내가 행복의 우선순위에 돈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될 때의 행복감이 있어요. 그리고 저희를 불러준 팀에서 '와줘서 너무 고맙다. 너무 잘 들었다' 얘기해주시면 돈을 받지 않아도 정말 괜찮았어요."
한결: "저는 보석이 이야기했던 것과 반대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지난해에 한 사찰의 재즈 공연을 갔는데 그때 무대에 한국에서 탑클래스 연주자들이 왔거든요. 그런데 그 무대에서 시간 한 번 때우고 가겠다는 연주자들의 태도가 보였어요. 지역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무대니까 관객들은 좋아하셨는데 저는 그걸 보는 순간 저런 음악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보석이 이야기했던 사포마을 공연 같은 경우는 돈과 관계없이 정말 행복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공연료의 일부를 공금으로 비축해두기도 해요. 저희 밥값이나 기름값으로 쓰거나 외부 연주자들 오면 밥 사주고, 페이가 적은 공연이라면 이 공금으로 외부 연주자를 섭외하기도 하는 거죠. 신기하게 돈이 딱 맞게 들어와요. 단순히 돈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하는 섭외자 분들의 마음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 활동가의 활동이나 연대 현장 같은 곳에서 더 불러달라고 하는 살래재즈팀의 마음이 궁금했어요. 우리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불러달라고 하는 마음은 어떤 건가요? 공연의 페이를 일순위로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보석: "연대 현장의 공연에서만 행복을 느꼈다기보다는 거기서 큰 보람을 느끼고 다시 또 다른 공연에 초대되는 순환이 좋았어요. 예를 들면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 때 지리산권의 3개 지역을 3일 간 돌면서 캐롤을 배달했거든요. 제가 사는 산내면뿐만 아니라 이웃 지역인 함양, 구례까지요.
이런 걸 기획해서 한 건 아니었는데 섭외 연락이 딱 알맞게 온 거예요. 구례에서는 시즌을 종료하는 커뮤니티 공간에서 공연을 했었고, 함양에서도 청년 커뮤니티에게 초대를 받은 거였어요. 내가 사는 이 지역 말고 이웃 지역과 내가 연결되는 느낌이 생소하지만 큰 보람으로 다가와요. 그 지역분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이웃 동네 친구가 생기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이제 불러 주시는 곳이 많이 생겨서 스폰서가 있으면 좋겠어요. (웃음)"
한결: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건 저희가 유랑단처럼 모든 악기를 제 차에 가득 실어서 이동하거든요. 이동하면서 보석이나 다른 연주자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게 즐거워요. 근황 토크도 하고 있었던 일도 이야기하면서요. 최근에는 함양 청년커뮤니티를 통해서 거창 산 정상에 있는 풍력발전소에서 재즈 공연을 했어요. 오가는 길에 우리가 언제 이런 곳에서 연주해보겠냐,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보석: "한결의 차 덕분에 합천의 숲이나 구례의 양수댐, 저수지 바로 옆의 사포마을 같은 곳까지 가서 공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가는 길의 풍경도 너무 아름답지만, 그 시간은 저희가 음악을 계속 탐구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이동하는 길에 재즈 이야기도 정말 많이 나누거든요. 그런데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한가롭게 시골 길을 달리는 것 자체가 너무 낭만적인 거예요. 노을이 질 때 어울리는 음악을 바꿔 듣기도 하면서요. 이게 도시 음악인이 느끼지 못하는 오감적인 넉넉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결: "미국에 있을 때 미술관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고흐나 피카소, 모네의 그림들이 있었어요. 그게 너무 부러운 거예요. '얘네는 이런 작품에서 영감 받으면서 음악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뭔가 불공평한 것 같았는데, 지리산 다니면서 그것 못지 않은 영감을 얻고 있어요."
- 지금 공연 레퍼토리는 주로 창작곡인가요? 아니면 있는 곡들을 편곡하고 있나요?
한결: "지금은 창작곡보다는 기존의 곡들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원래 저는 스탠다드 연주를 많이 해요. 스탠다드라고 하면 미국에서 1890년대부터 1920년대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나왔던 음악들이 재즈로 바뀌어서 연주되는 곡들이예요. 그래서 미국인들에게는 재즈가 익숙한 거예요.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들이니까요. 근데 한국에서 아메리카 스탠다드를 연주하면 공감대가 없고 무슨 노래인지 모르는 거예요. 대중적인 재즈는 'Fly to the moon' 같은 곡이나 디즈니 주제곡, 크리스마스 캐롤 정도라서 재즈를 알리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 관객분들과 교감이 안 되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요즘 시도하는 부분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한국의 곡을 재즈로 편곡해서 '코리언 스탠다드'로 만드는 거예요. 아직 생소할 수 있는 자작곡을 내는 것보다 사람들한테 익숙한 노래를 재즈로 편곡해서 재즈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이번 공연은 포크송 특집으로 김광석 님의 노래나 <터> 같은 노래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관객들에게 익숙한 재즈를 많이 전달하고 싶은데, 이걸 창작곡이라고 해야할지 애매하긴 하네요."
- 이렇게 들으니 공연 준비라는 게 정말 큰 노력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구나 새삼 느끼게 돼요. 그렇다면 기억에 남는 가장 인상에 남았던 공연을 뽑아줄 수 있나요?
한결: "우선 정기공연을 펼치는 플래닛카페 공연인데요. 와 주신 분들도 재즈를 좋아해 주시고 무엇보다도 정말 집중해서 들어주시거든요. 제가 미국에서 봤던 무대보다 오히려 더 존중해 주세요. 물론 재즈 문화는 관객들이 공연에 집중하기보다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고 와인잔도 부딪혀가면서 듣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집중하는 공연으로 존중받는 기분은 그것대로 좋아요.
그리고 구례 공연에서 좋았던 건 그날 저희가 벚꽃나무 밑에서 연주했거든요. 벚꽃이 휘날리던 무대였는데, 악기 안에 벚꽃 잎이 들어가는 사이에서 공연을 하는데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또 구례의 수수님과 함께 스페인 민중가요를 편곡해서 함께 불렀는데, 리허설 한 번도 없이 너무 좋은 에너지로 공연을 마쳤어요.
마지막으로, 저희 마을의 실상사에서 공연한 것이 기억에 남는데요. 그때 내가 왜 여기서 살고 있고 왜 이 마을에서 공연하고 있는지를 느꼈어요. 나를 다시 초심으로 되돌려주는 기분이요. 그 공연은 지난해에 실상사에서 만들었던 카혜님의 앨범을 발표하는 자리였는데요. 제가 전체 공연 기획도 맡고 제가 수업하고 있는 작은학교 밴드부를 위해 앨범 수록곡 하나를 록 밴드 사운드로 편곡해서 아이들이 연주할 수 있게 기획했어요.
또, 재즈밴드 한결의 앨범에 있는 곡들을 재즈로 편곡해 연주했는데, 마을 분들이 너무 재미있게 봤다고, 좋았다고 이야기해주시는 것이 감사했어요. 그리고 제가 이 마을에 살게 된 계기가 돼주신 실상사 도법스님도 리허설을 했던 몇 시간동안 관객석을 지켜주셨고요. 그걸 보면서 마을을 위해 내가 좋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보석: "저도 구례 사포마을에서 공연했던 게 커다란 기억으로 남았어요. 공연 끝나고 그 공연에 대해서 저희 둘이 여러 번 회자를 할 정도로요. 어떤 공연은 저희가 쓰이기만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좋은 기획과 충분한 페이로 섭외해주셨지만 저희를 기능으로만 쓰는 공연은 하고 나서 찜찜해요. 확실히 돈보다는 내가 왜 이 장소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지를 자각하게 해주는 공연이 저희에게 너무 필요하고, 그게 저에게도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으로 위로하는 법
- 앞으로 추구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각자가 느끼는 음악에게 받는 힘이 있다면요?
한결: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관이 딱 있었어요.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재즈 음악은 연주자들을 위한 음악이지, 관객을 위한 음악은 아니예요. 그렇지만 나중에 정말 제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해요."
보석: "저는 언젠가는 우리만의 음악을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보컬리스트나 작곡가도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같은 재즈라도 스타일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우리 스타일, 우리만의 시그니쳐가 정형화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한결의 말에도 공감해요. 연대 현장 공연에서 재즈가 주는 위로에 대해 느꼈거든요. 재즈는 보통 사랑 노래가 많은데, 이런 가사는 연대 현장에서는 어울리지 않잖아요.
근데 재즈의 매력은 편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네모라는 도형은 편곡을 통해서 직사각형, 정사각형 모양이 되지만, 재즈라는 장르를 거치면 별이 되거나 세모가 되는 것처럼 아예 그 모양과 색깔을 바꿔버려요. 이런 걸 경험할 때마다 신선한 충격을 받아요. 그래서 아는 사람만 즐기는 재즈 말고 익숙한 노래를 저희 스타일로 편곡했을 때 음악으로부터의 위로와 즐거움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결: "이런 이야길 나눴던 이유가 사실 지금의 공연은 다른 재즈 팀을 모셔와도 저희 공연과 비슷한 소리를 낼 거예요. 그런데 우리만의 스타일이 있다면 어디에서 공연하더라도 '살래재즈팀인가보다.' 할 거잖아요. 우리 공연이 우리만의 색깔이 있었으면 좋겠고, 유행처럼 소비되는 칵테일 재즈 말고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재즈를 하고 싶어요. 재즈의 유행이 꺼져도 지리산에서 활동하는 살래재즈팀만의 재즈를 하고 싶은 거죠. 최종적으로는 '재즈를 좋아한다'가 아니라 '살래재즈팀을 좋아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 편곡을 하는 두 사람도 곡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재밌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한결: "저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한 가지는 개인적으로 제가 하는 '재즈밴드 한결'이라는 팀이고요. 여기에서 많은 공연 레퍼토리가 만들어지죠. 살래재즈팀과 함께 여기에서 개인적인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고요.
또 한 가지는 산내에 빅밴드를 하나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미국은 크리스마스 연말 시즌만 되면 빅밴드가 엄청 많아요. 대규모 오케스트라처럼 브라스 밴드가 캐롤을 보여주는데 진짜 멋있거든요. 그게 미국인들이 겨울을 보내는 문화인 거죠. 산내에서도 비전공자들이 소모임처럼 한 주에 한 번씩, 1년 정도 연습해서 크리스마스 때 공연을 한 번 하면 정말 재밌고 멋있을 것 같아요."
보석: "저는 소박한 상상인데요. 재즈 CD를 내고 싶어요. 우리가 공연하는 걸 어떤 기록의 형태로 남기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유통이나 음원 사이트에서는 들을 수 없고 산내에 있는 매장이나 카페들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거죠. 공CD에 매직으로 팀 이름을 적고, 신문지 포장해주고. (웃음) 예전에 연극 프로젝트 '월간 정상순'을 기획하는 똥폼과 이야기하다가 외부 도시에 가서 공연요청이 왔을 때 가지 않고 '너네가 여기로 와~' 라는 마인드로 공연을 연다는 말을 하셨거든요. 그 말이 저에게 아직도 인상깊게 남아있어요. 저희도 여기에서만 듣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 그게 예술가로서 진짜 멋있는 거잖아요.
보석: "뮤지션들 공연가면 CD 판매하잖아요. 오늘 공연을 기억하면서 다시 돌려 듣기도 하고요. 저희도 CD가 있으면 공연 때 CD를 팔아서 경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 앙상블의 구성이 재즈 드럼도 없을 정도로 단촐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거든요. 일상에서, 운전하면서 듣기 좋은, 그리고 산내에서만 구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을 고마운 분들에게 나눠드리는 것들을 최근에 상상해봤어요."
- 살래재즈팀의 CD앨범과 살래브라스밴드의 공연이 정말로 실현될 것 같아서 기대되네요. 너무 즐겁고 재밌을 것 같아요. 두 사람도 마을 주민들과 관객에게 감사함을 많이 느끼지만, 이웃 마을 주민으로서 이런 재즈 공연을 시골에서 들을 수 있어서 마을 주민들도 정말 복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한결: "마을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장 커요. 공연 홍보 게시물에 '좋아요'도 많이 눌러주시고 호응도 많이 해주시거든요. 사실 이런 일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안 좋아할 수도 있는 데도 항상 좋아해주시고 불러주시는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예요. 거기에 제가 힘을 받기도 하고요. 산내 분들이나 지리산 분들이 든든한 서포터로 느껴져요."
보석: "저는 한결에게 가장 고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음악하는 파트너가 한결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요. 음악하는 사람들 중에 성격이 사납거나 독특한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같이 공연을 만들려면 조율해야 될 것들이 되게 많은데 그 부분에서 한결과 잘 맞는다는 건 정말 행운이죠.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공연문화 예술을 바라볼 때 생각하는 태도가 있잖아요. 항상 가장 후순위에 있거나 무시하는 시선들이요. 그런 시선 때문에 페이가 적어지거나 소비되는 뮤지션들이 많아지고,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공연 이후에 연주자 팀이 와해되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물론 그런 현실적인 문제도 참 중요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너머에 다른 생각들을 더 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한결은 페이와 관계없이 어떤 취지의 행사에서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같이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괜찮아요. 그런 공연이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라고 이야기해줘요. 이런 합의가 어렵지 않게 잘 되면 실력, 음악적인 진지함, 방향성 이런 것들은 조금 부차적으로 밀려나요. 어쨌든 같이하는 사람이 편해야 하는데 그 무드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한결과 같이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죠."
한결: "저도 그런 측면에서 보석과 잘 맞아요. 저희 둘 다 게으르고 태평한 구석이 있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준비하다 보면 그게 좋은 공연으로 이어질 때도 많더라고요. 서로 재촉하거나 고칠 것들이 많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오늘의 할 일을 책상에 펼쳐놓고 BGM을 고른다. 오늘은, 역시 재즈 플레이리스트지. 스피커에선 드럼과 베이스의 비트 위에 피아노와 트럼펫의 소리가 얹어진다. 소리가 마음을 통과하는 듯한 음악이 시작되고 나면 울적하고 무기력한 마음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이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진행 / 넉넉
글 / 승현
2024년 6월 21일,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글쓴이 : 승현
지리산 귀촌인 인터뷰집 <어디에나 우리가> 저자.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동력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