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나는 처음으로 호주를 방문했다. 태평양 저편에 있는 이 거대한 나라는 많은 한국인에게 코알라와 캥거루, 아름다운 해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라는 여행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나는 호주와 한국이 관광을 넘어 경제와 외교, 인적 교류 측면에서도 밀접한 관계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관련 기사:
한국인의 눈으로 본, 기회의 땅 '호주' https://omn.kr/296tn ).
호주 통계청의 2023년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은 호주의 주요 무역 파트너로 수출 3위, 수입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 입장에서도 호주는 수출 10위, 수입 5위 국가며, 지난 70년 넘게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쌓아온 중요한 무역 파트너다.
자원 부국인 호주의 자원과 에너지는 과거 한국의 산업화에 큰 도움이 되었고, 현재는 방산, 이차 전지, 태양 전지, 수소 연료 전지, 전기차 분야 등 미래 산업에서 더욱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와 연결고리가 많은 호주를 여행하면서 나는 호주인의 눈으로 본 한국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멜버른에서 여행하는 동안 '호주인의 눈으로 본 한국' 이라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행사를 통해 호주 안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 한국인 파트너가 있거나 한국에 관심이 많은 다양한 호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양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중 호주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 중 신선하고 인상 깊었던 점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호주인들이 높게 친 한국의 가치들
1. 어른 존중하는 유교적 가치
내가 만난 호주 사람들은 한국의 유교를 드높게 샀다. 특히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아름다우며, 그 정신을 호주에 도입하고 싶다고도 했다. 물론, 호주에서도 어른을 존중하지만 한국의 방식은 보다 명확하고 체계적이며, 공공 장소에서도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배려하는 등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사실 나는 전통적 권위를 강조하고, 나이에 따른 수직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가 권위적이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특히 개인의 자유나 창의성과 자율성을 저해한다고 느꼈었는데,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유교 문화의 장점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 기초 학문 잘 가르치는 한국 초등 교육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두 살 자녀를 뒀다는 한 호주 참가자는 한국 초등학교의 우수한 교육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몇 년간 살며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어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초등학교는 국어, 수학, 과학 등 기초 학문을 탄탄하게 가르쳐요. 호주는 아이들의 적성과 흥미에 따라 교과 과정을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기초 학문에 대한 중요성이나 교육 과정이 한국만큼 탄탄하지 않아요."
그녀는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면 한국의 공교육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이며, 한국의 입시 위주 교육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호주에서는 중고등학생이 되면 비판적 사고 교육이 더 중요하지만, 한국은 입시 위주라서 그 부분은 호주 시스템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실제로 한국 학생들은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매년 우수한 성적을 낸다. 2022년 평가에서 한국은 수학, 읽기, 과학 모든 영역에서 OECD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창의적 사고력, 또 자아 효능감에서는 64개국 중 49위에 그쳤다.
'새로운 것 발명하기'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기'와 같은 자아효능감 설문 문항에 '자신 있다'고 답한 학생들이 OECD 평균보다 적었다. 주입식 교육과 치열한 학업 경쟁이 자기 효능감을 떨어뜨린 결과는 아닐까?
기초 학문에 강하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한국 학생들에게 개개인의 흥미와 역량을 중심으로 자기자신을 탐구할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문화가 선물처럼 주어지면 좋겠다. 그러면 자연스레 학업 성취도와 더불어 자신감이 높아지고, 이는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로도 이어질 것이다.
3. 뛰어난 분리수거 시스템
Reloop 또는 Eunomia 등 환경 관련 여러 글로벌 컨설팅 그룹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분리수거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한국에 산 지 10년 된 내 남편 또한, 굉장히 철저한 한국의 분리수거 시스템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재활용율을 높이고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칭찬한 바 있다. 그와 비슷하게 이번에 만난 호주 참가자들도 입을 모아 내게 말했다.
"플라스틱, 비닐, 종이, 음식물쓰레기 등 가정에서 재활용을 철저하게 하는 한국의 문화가 인상 깊었어요. 특히, 호주와 달리 음식물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와 분리해 버리는 것도요. 제도가 일상생활에 잘 녹아든 사례인 것 같아요."
땅덩어리가 큰 호주는 쓰레기를 매립하는 비율도 크단다. 더구나 주마다 정부가 따로 있다보니, 중앙 집권식으로 일관적이고 체계적인 분리수거 제도를 만들기 어려운 것도 분리수거가 어려운 하나의 이유라고 한다.
한국인들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호주인의 눈에는 새롭게 보이고, 배울 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4. 소프트 파워의 강국
K-pop,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세계적인 인기로 호주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교민이 모여사는 시드니를 너머 호주 전역에서 한국어 교육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멜번 대학교는 작년 한국어 교사 양성 과정을 도입했고, 올해에는 한국학 전공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호주에는 약 16만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는데, 실제로 시드니와 멜버른 곳곳에는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볼만한 한국 음식점에서 한국에서 먹는 것만큼 맛있는 한식을 맛볼 수도 있었다.
특히, 멜번 영사관 전문관님은 한국 음식점이 모여 있는 구역을 '코리아 타운' 지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도 귀띔해주셨다. 호주의 대형 마트 체인에서도 한국 음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인 CJ는 2023년 호주에 비비고 생산 공장을 설립해 호주 전역에 유통하고 있다. 호주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울월스(Woolworths)에서 한국 만두를 발견했을 때,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했다.
멀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나라 호주
이번 호주 여행을 통해 나는 한국과 호주가 경제,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으로 바라본 호주는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만큼 문화적으로 역동적이고, 천혜의 자연 환경과 여유로운 삶의 방식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한편, 호주인들에게 한국은 전통적 가치와 현대 대중 문화, 그리고 교육과 생활을 위한 효과적인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곳이었다.
이 여행을 통해 한국과 호주가 서로 교류하고 배울 점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느꼈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닌,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라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말처럼 이번 여행은 나로 하여금 한국의 장점과 가능성을 재발견하게 했고, 앞으로도 한국과 호주 양국이 더욱 긴밀히 협력하며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나라는 없다. 완벽이라는 이상을 좇기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한 발자욱씩 움직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과 호주가 서로 더 긴밀하게 교류하며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번 '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 시리즈가 독자들에게도 호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