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봄나들이를 꿈꾸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퍼붓는 빗줄기에 온 세상이 흠뻑 젖었다. 한낮의 햇빛은 강렬함을 넘어 적색의 뜨거움으로 온몸을 불사른다. 세상은 여전히 변함없이 순환하고 여름의 한가운데 우리는 서있다.
계절을 앞서간 식물원의 꽃들은 화려한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푸르른 수수함으로 변했다. 식물원 밖 야외 정원에는 나무수국이 탐스럽고 풍성한 흰색 아름다움을 전한다. 찌는듯한 무더위에 시위하듯 쏟아지는 분수대의 물줄기는 더위로 지친 몸을 식혀준다. 하얀 물거품과 하나가 된 아이와 부모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 삼매경이다.
"나 잡아봐라"라는 듯 도망가는 아이와 잡으려는 아빠의 술래잡기가 정겹고 사랑스럽다. 동화적 시간이 주는 즐거움은 기억 너머 저편의 아버지와의 물놀이를 소환한다. '추억은 아름답다'는 말처럼, 아이와 부모의 해맑은 웃음 속에 나 또한 입꼬리가 올라간다. 여름은 그렇게 불타는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은 계절 속의 배경으로 혹은 주인공으로 한여름의 풍경은 다채롭다.
여름 한가운데의 전주 정원문화 센터도 식물 클리닉, 베란다 정원 가꾸기, 반려 식물 만들기, 정원 산책, 우리는 도시 농부, 놀이 정원사, 국화 분재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정원을 가꾸는 것이 시민의 삶이며 문화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정원 도서관은 신간 도서의 구매로 방문객에게 앎과 덕스러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도서관의 수반 속 '요정 숲'에는 물매화, 귀이개, 마디 속세, 이끼와 작은 바위 등이 신비로운 세계를 연출해 우리를 잠시 현실 밖 피안의 세계로 안내한다.
전주 정원문화 센터는 일상의 바쁨을 잠시 내려놓는 멈춤의 공간이며 생명의 쉼터이다. 지난 5월에 이어 7월 24일에도 정원 속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의 배경음악인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시작으로 동요 메들리가 이어졌다. 청중은 어린 시절 아무런 걱정 없이 순수했던 '해맑음'으로 돌아가 손뼉을 치고 어깨를 들썩였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진성의 '안동역에서',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가 비올라와 클라리넷, 색소폰으로 연주됐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넘나드는 연주 속에 꼼지락거리던 어린 시절과 아련한 그리움을 추억했고, 트로트의 가락 속에서는 들썩이는 엉덩이를 붙잡느라 애썼다.
지난주 8월 3일에는 '더욱 건강한 소금이 되도록 매진하자'라는 뜻을 가진 연주팀 '덜 짠 소금'의 공연이 있었다. 전주에서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덜 짠 소금'은 7·80년대 팝송을 연주했다. 전자 기타와 통기타, 건반과 드럼, 보컬 등 6명의 연주자는 존 덴버의 'Today', 빌리 조엘의 'Piano man' 등 8곡을 들려주었다.
식물로 둘러싸인 공연장은 악기와 연주자, 30명에 가까운 사람으로 비좁다. 드럼 연주자는 '몬스테라'의 커다란 잎과 드럼 채가 스치는 상황에 "식물에 미안하다"라며 조심스럽게 연주에 최선을 다한다. 식물원 작은 공간은 듣기 편한 음악과 연주자의 따뜻한 마음까지 겹쳐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어쩌면 '몬스테라'도 드럼 채의 간지럽힘과 음악이 주는 편안함에 낯선 기쁨을 맛보았을지 모를 일이다.
옛것이 주는 '갬성'은 MZ 세대의 트렌디하고 화려함에 미치지 못하지만,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이 있다. 그리움과 아련함, 흐린 그림 같은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치듯 반복한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은 분명히 감정적 동물임이 확실하다.
또 하나의 행사가 끝났다. 아니 또 하나의 선한 행위가 여러 사람을 감동의 세계로 안내했다. 비록 작은 음악회이지만 아낌없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한 연주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그들이 연주를 한다기에 공간을 빌려준 것뿐이에요"라며 손사래를 치는 담당 공무원도 아무 일도 아닌 척 큰일을 해냈다.
"노인이 결코 그늘에 앉지 못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나무를 심을 때, 사회는 성숙해진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무심한 듯 이타적 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을 때 세상은 '사람 맛' 나는 곳이 될 것이다.
오늘도 분수대의 물줄기는 하늘을 향해 힘껏 솟아오르고 아이들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