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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볼 일이 있어 아들과 함께 나갔다가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종종 들르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한 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니 식탁 위에 수저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부침개 한 접시가 벌써 나와 있었다.

아들은 부침개를 먹기 좋게 잘라놓고 앉아 있다. 부침개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먼저 먹지' 하니 '같이 먹어야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음식이 나오고 숟가락을 들자 어묵볶음 접시를 내 앞으로 옮겨 놓는다. 아들은 평소 어묵을 좋아하는 내 식성을 잘 알고 있다.

밥을 먹고 있는 아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아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여 처음으로 집을 떠나던 날, 배웅을 위해 버스터미널에 같이 나갔다.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승강장에 선 채 며칠 전부터 수도 없이 반복한 말을 다시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결국 버스에 앉은 아들에게 다가갔다. 창문을 톡톡 두드리며 "공부 열심히 하고 밥도 잘 챙겨먹고 집에 자주 연락하거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당부한 말을 또 입밖으로 꺼냈다.

그렇게 아들이 서울로 떠나고 한동안 가슴에 구멍이라도 난 듯 커다란 상실감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녀석이 잘 먹고 잘 자는지 늘 걱정이 앞섰다. 어느 날 아들의 방을 기웃거리던 나는 아들의 초등학교때 일기장을 발견했다.

녀석은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으며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면서도 그 일기장만큼은 소중하게 챙겨놓았던 것이다. 서툴고 엉성한 일기장의 글씨는 새삼스레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서툴긴 하지만 정성스레 써놓은 2학년 어느 날의 일기를 읽다가 나는 그만 가슴이 꽉 막혀 왔다.

*월 *일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월 *일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니 현관에 엄마가 학교갈 때 신고 가는 구두가 있었다. 나는 반가와서 큰 소리로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했다. 방에서 '다녀왔니' 하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아파서 오늘 학교에 가시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엄마가 집에 있으니 너무나 기분이 좋다.....

나는 아들 녀석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무슨 말이 지금의 내 심정을 표현해줄 수 있을 것인가. 가슴이 온통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아파왔다. 늘상 텅 빈 집에 들어섰을 때의 허전함은 어린 마음에 얼마만한 상처로 남았을 것인가. 곁에 있어도 곁에 없는 엄마. 녀석은 엄마가 미우면서도 그리웠을지 모른다.
 
 아들은 수업이 끝나면 돌봄교실이나 방과후 수업에 참여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수업이 끝나면 돌봄교실이나 방과후 수업에 참여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 meganwatson on Unsplash
 
돌이 지나고 내가 다시 출근하면서 아들은 가사도우미의 손에 맡겨졌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겨 올 수 없다는 도우미의 연락을 받은 날, 아이를 안고 쩔쩔 매던 기억도 난다. 낮과 밤이 바뀐 아이를 업고 달래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출근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 물론 아이 아빠도 곁에서 힘을 보태주었지만 엄마인 내 몫이 훨씬 많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아침에 출근하며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아들은 수업이 끝나면 돌봄교실이나 방과후 수업에 참여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들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숙제를 하고 있거나 저만치서 동네 친구들이랑 놀고 있다가 내게로 막 뛰어오곤 했다. 그럴 때면 형제가 없어 더 외로워 보이는 아들이 안쓰러워 가슴이 아프곤 했었다.

교직은 어릴 때부터 단 하나의 꿈이었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며 꿈을 키웠다. 처음 발령을 받고 교단에 섰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았다.

아침마다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내게 돌보미 아주머니는 가끔 '아이가 엄마 직장다니라고 타고 났네. 어쩜 울지도 않고 떼를 안 쓰는 지 몰라' 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를 두고 뒤돌아 설 때는 더 마음이 아프고 아이한테 미안했다.

그러나 학교에 출근하면 엄마가 아닌 충실한 교사가 되어 있었다. 직장생활에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들의 어릴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이제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아들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엄마가 없는 빈 자리를 잘 견뎌내고 심성바르게 잘 자라준 아들이 새삼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요즘도 어린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엄마를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그리고 힘을 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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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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