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육성 회고록>(한길사)이 출간되었다. 김대중의 마지막 자전적 기록이 그의 탄생 100주년이자 서거 15주년이 되는 2024년에 출간된 것이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김대중이 2006년 7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과 진행한 41회 42시간 26분 분량의 구술 인터뷰 녹취문에 근거한 것으로서 784쪽의 방대한 분량이며 양장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유일한 자서전이기도 하다.
김대중은 출생부터 대통령 재임시기까지의 주요 내용에 대한 증언기록을 동영상자료로 남겼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이 녹취문 전체를 정리, 편집, 윤문하여 이 책을 출간한 것이다. 다른 자서전과 달리 김대중은 생전에 이 책의 원고를 검토하지 못했다. 대신,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증언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필자는 41회에 걸친 김대중 구술 인터뷰 전 과정에 참여했다. 자료 조사 및 인터뷰질문지를 작성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을 상대로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을 만들 때에는 구술 녹취문의 편집과 윤문 작업의 책임을 맡아서 김대중 대통령의 기억, 생각, 느낌 등이 책에 제대로 담길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큰 보람을 느낀다.
김대중, 생전에 구술인터뷰 기록을 남기다
김대중은 퇴임 이후부터 자신의 마지막 자서전을 준비했으며 서거 1주기가 되는 2010년에 총 2권의 <김대중자서전>이 삼인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가 직접 저술한 마지막 자서전이다. 이번에 출간된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그 책과 비교해서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는데 주된 내용은 이 책의 기본 텍스트가 구술 인터뷰 녹취문이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김대중 구술 인터뷰를 기획할 때 김대중만이 증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인, 평가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그의 어린 시절 및 청년 시기,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전인 40세 전까지의 내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 시기의 내용은 김대중이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존 자료와 각종 흔적까지 모두 모아서 김대중에게 일일이 질문하여 답을 얻었다.
김대중은 당시 '어떻게 이런 내용까지 조사해서 질문할 수 있었느냐'고 하면서 '구술작업 덕분에 그냥 묻힐 수 있었던 여러 사실, 일화 등이 기록으로 남을 수 있게 되어서 뿌듯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김대중 정치사상의 형성 및 발전 과정, 김대중의 정치적 성장과정의 내용과 성격을 학문적으로 분석하는 데에 큰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학술연구기관이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밝히기 꺼렸던 주제에 대해서 가감 없이 질문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적인 인물답게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서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실관계에 대해서 증언했다. 그래서 자료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이 책의 아주 중요한 장점이 된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의 장점과 가치
이 책은 김대중이 증언한 자신의 일생이자 한국 현대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그는 해방과 남북분단, 6·25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운동, IMF위기 극복과 재도약, 국가 번영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살아왔다. 그는 역사의 현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선두에 섰으며 온갖 고난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끝내 살아남았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화이행에 큰 역할을 했으며 정권교체를 이뤄내서 한국의 민주화의 질적 도약을 이뤄냈다. 대통령 김대중은 한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모범 국가가 되도록 했으며 복지국가의 길을 열고 지식정보화와 문화강국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향한 원대한 비전을 구상하고 실천한 국제적인 지도자였고 외교의 달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정치가로서,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결단을 했겠는가? 그때마다 이뤄진 그의 고뇌와 전략이 이 책에 잘 담겨 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고난 속에서 마모되지 않고 극단화되지 않으면서 화해, 관용, 통합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 현대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는 교양서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것은 이 책이 인터뷰 형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김대중의 마지막 자전적 기록으로서 학문적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에 있는 1993년의 스티븐 호킹 박사와 김대중
또한 이 책에는 최초로 공개하는 사진 10장도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1993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유학을 갔던 김대중이 이웃으로 지내던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1960년대 6대, 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미공개 사진도 몇 장 수록했다. 패기 넘치면서도 원숙미를 더해가는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40대 초반 김대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사진은 남아 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해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사진 자료를 입수해서 공개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김대중 육성 회고록>
김대중은 인류보편적인 가치인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위대한 정치가였다. 이러한 김대중의 삶과 사상 그리고 실천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국내외에 걸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먼저 삶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다. 김대중은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불빛을 밝히고 깊은 절망의 늪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았으며 정신적, 신체적 탄압과 테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며 밝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그는 이러한 노력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그는 '기적은 기적같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통하는 말일 것이다.
또한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는 그의 탁월한 정치 리더십, 유능한 국정 운영 능력은 혼란스럽고 어두운 오늘날의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희망의 길잡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상적 현실주의자였으며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통합을 동시에 발전시킨 유능한 민주주의자였다. 이러한 그의 면모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김대중은 생전 마지막 일기에서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쓴 바 있다. 이는 인간의 삶과 역사에 대한 그의 통찰이 담겨 있는 명언이다. 김대중이 생전에 남긴 마지막 역사적 증언이 담긴 <김대중 육성 회고록>에도 이와 같은 그의 인식과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 연구자입니다. 김대중 재평가를 위한 김대중연구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김대중육성회고록>(한길사, 2024) 편집과 윤문 작업의 책임을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