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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 흑산도는 문화생태자원이 빼어난 섬으로 꼽힌다. 홍어로 유명한 섬이지만, 국내 최초 해양생물학 백과사전인 '자산어보'의 산실이자 국내 최대 철새 중간 기착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대형고래 1464마리가 학살된 고래의 바다이기도 하다. 정부는 흑산도 관광자원에 주목해 2023년 'K관광섬 육성사업' 대상지로 선정, 세계인이 찾는 섬으로 가꿔나가고 있다. 흑산도 대표 문화자원 '자산어보'를 열쇳말로 흑산도 답사기 3편을 송고한다.[기자말]
흑산도항 '7말 8초' 북적이는 전남 신안 흑산도항여객선터미널.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은 비금·도초도, 흑산도를 거쳐 최종 목적지 홍도에 다다른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 2시간, 홍도까지는 2시간 30분 소요된다. 쾌속선은 2층으로 돼 있으며 좌석은 350석 안팎이다. 2024. 8. 1
▲ 흑산도항 '7말 8초' 북적이는 전남 신안 흑산도항여객선터미널.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은 비금·도초도, 흑산도를 거쳐 최종 목적지 홍도에 다다른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 2시간, 홍도까지는 2시간 30분 소요된다. 쾌속선은 2층으로 돼 있으며 좌석은 350석 안팎이다. 2024. 8. 1
ⓒ 김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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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말 8초' 한여름, 그 섬을 다시 찾았다. 섬 중의 섬, 흑산도(黑山島). 시속 50㎞로 내달리는 쾌속선에 몸을 싣고 목포항을 출발해 꼬박 2시간 내달려야 도착하는 그 섬을 나는 5년 만에 다시 찾았다. 5년 전 첫 방문이 단순 관광이었다면 이번은 목적이 따로 있었다. 자산어보(玆山魚譜) 유산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자산어보는 정약전(1758~1816)이 집필한 한국 최초 해양생물 백과사전이다. 그는 조선 순조 원년(1801년)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때 흑산도에 유배돼 1814년까지 머물렀다. 이어 1814년 우이도로 거처를 를 옮겼다가 1816년 사망했다. 흑산도에 머물던 시기 정약전은 흑산청년 장창대의 도움을 받아 총 226가지의 생물종을 담은 어보(魚譜)를 펴냈다. 집필 과정은 이준익 감독이 2021년 내놓은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7월 31일 오전, 여객선터미널로 마중 나온 이곳 토박이 이영일(57·자산어보 마을학교 대표)씨와 이른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답사에 나섰다. 고래 흔적을 찾는 여정이다.

 전남 신안 흑산도 자산문화도서관에 걸린 고래 사진. 자산어보마을학교 이영일(57) 대표에 의하면 촬영 시기는 포경이 허용되던 1985년으로 흑산 앞바다에서 잡힌 길이 19m의 참고래라고 한다. 2024. 7. 31
 전남 신안 흑산도 자산문화도서관에 걸린 고래 사진. 자산어보마을학교 이영일(57) 대표에 의하면 촬영 시기는 포경이 허용되던 1985년으로 흑산 앞바다에서 잡힌 길이 19m의 참고래라고 한다. 2024. 7. 31
ⓒ 김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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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신안 흑산도 고래정원 앞에 설치된 고래 사진. 1980년대 흑산도 근해에서 포획된 고래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2024. 7. 31.
 전남 신안 흑산도 고래정원 앞에 설치된 고래 사진. 1980년대 흑산도 근해에서 포획된 고래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2024.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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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섬 흑산도... 곳곳에 고래 흔적

경어(鯨魚, 속명 고래어) : 고래는 철흑색에 비늘이 없다. 길이는 100척 남짓이며 간혹 200~300척도 잇다. 흑산바다에도 있다.

해돈어(海豚魚·속명 상광어) : 큰 놈은 10척 남짓이다. 몸통은 둥글고 길다. 색은 큰 돼지처럼 흑색이다. (...) 다닐 때는 반드시 무리가 따라다니며, 물에서 나올 때는 삑삑 소리를 낸다. 기름이 많아 한 마리에서 한 동이나 얻을 수 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고래 3종을 다뤘는데 위 설명은 그중 일부다. "고래는 흑산바다에도 있다" "(상괭이는) 흑산에 가장 많이 산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렇다. 지금은 고래하면 울산 장생포를 떠올리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흑산 앞바다는 고래 천지였다.

섬 곳곳엔 고래 흔적과 유산이 남아 있다. 여객선터미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자산문화도서관과 인근 고래정원에도 1980년대 흑산 앞바다에서 붙잡아 건져 올린 고래 사진이 걸려 있다. 족히 수십m는 돼 보이는 커다란 고래를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 모습이다. 고래정원 바로 뒤에는 일제강점기 일제가 설치한 포경기지 터가 있다.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고래 해체장 등 작업공간과 사무실 터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그 많던 고래는 어디로 갔을까. 논문 한편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일제강점기 대흑산도 포경근거지(포경회사 사업장) 터.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예리 1길 일원이다. 이 곳 포경근거지는 일제가 한반도에 설치한 포경근거지 4곳 가운데 하나였다. 2024. 7. 31
 일제강점기 대흑산도 포경근거지(포경회사 사업장) 터.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예리 1길 일원이다. 이 곳 포경근거지는 일제가 한반도에 설치한 포경근거지 4곳 가운데 하나였다. 2024.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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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신안 흑산도 자산문화도서관 실내에 걸려 있는 고래 사진에 대해 '자산어보마을학교' 이영일(57) 대표가 설명하고 있다. 2024. 7. 31.
 전남 신안 흑산도 자산문화도서관 실내에 걸려 있는 고래 사진에 대해 '자산어보마을학교' 이영일(57) 대표가 설명하고 있다. 2024.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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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흑산도 포경근거지 연구'(이주빈, 목포대학교 대학원, 2017)에 따르면 1926~1944년 일제가 한반도에 설치한 포경근거지(울산 장생포·제주 서귀포·전남 흑산도·황해도 대청도)에서 포획한 고래는 모두 3130마리다.

이 중 858(27.4%) 마리는 흑산도에서 포획됐다. 기간을 늘려 1917~1944년까지 포획된 개체 수는 흑산 앞바다에서만 모두 1464마리였다. 일본포경협회 작성 통계, 옛 신문 등 자료에 드러난 것만 집계한 것이니 실제로는 이보다 많았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학살에 가까운 남획으로 고래 씨가 말라버렸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고래는 영영 흑산 앞바다를 떠난 것일까. 길잡이 이영일 대표 소개로 흑산도 어부들과 이야기했다. 주로 홍어잡이에 종사하는 선주와 선장들이다. 그들로부터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고래가 여전히 흑산 앞바다에서 종종 목격된다는 것이다.

어민들 "고래는 드문드문... 상괭이는 흔하다"

홍어잡이 선장 이상수(60)씨 휴대전화에는 고래 사진이 한 장 저장돼 있다. 크레인에 매달린 7m쯤 돼 보이는 고래 옆에 이씨가 서 있는 사진이다. 촬영 시기는 2017년 10월 28일, 장소는 흑산도 예리항.

 전남 신안 흑산도 홍어잡이 어선 이상수(60) 선장이 2017년 10월 28일 흑산도 예리항에서 크레인에 매달린 고래 옆에 서있는 모습. 이 고래는 흑산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저인망어선 그물에 혼획됐다고 한다.
 전남 신안 흑산도 홍어잡이 어선 이상수(60) 선장이 2017년 10월 28일 흑산도 예리항에서 크레인에 매달린 고래 옆에 서있는 모습. 이 고래는 흑산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저인망어선 그물에 혼획됐다고 한다.
ⓒ 이상수 선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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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고래요? 흑산 앞바다에서 저인망어선 그물에 혼획된 고래입니다. 요즘도 고래가 있냐고요? 홍어 잡으러 나가면 드문드문 보이죠. 4~5년쯤 됐을까, 고래 한 두 마리가 물살이 센 곳 수면 위로 올라와 '푸~ 푸~' 물 뿌리고 숨 쉬는 거 있잖아요. 그런 걸 봤어요. 상괭이요? 흔하디 흔하죠.

흑산도 홍어잡이 어선 선장 심동열(68)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전했다. 흑산도와 다물도 사이, 또는 다물도 북쪽 조류가 거센 바다에서 조업을 하던 중 고래를 수차례 목격했다는 것이다. 홍어잡이 어선 이승호(56) 선주 역시 상괭이는 어렵지 않게 바다에서 목격된다고 전한다.

"고래 물 쏘는 것은 작년에도 보고 재작년에도 봤어요. 어떻게 봤냐고요? 그냥 눈으로 보죠. 홍어 잡고 있으면 주변에서 고래가, 참고래가 물 위로 올라와 물 쏘고 숨 쉬고 놀고 하죠. 일하느라 사진이며 영상은 찍을 생각을 못했네요. 상괭이는 흔하죠. 그물에 올라오거나 홍어 주낙에 걸려 올려 올라오거나 그렇죠. 이 담에 조업하다 고래 보면 내가 꼭 영상 찍어서 보내줄게요" (홍어잡이 어선 선장 심동열씨)

이영일 자산어보 마을학교 대표는 "사람들은 흑산도 하면 홍어만 얘기하는데 흑산도는 고래로도 유명했죠. 자산어보에도 그렇게 나오지 않느냐"며 "여행길 포구에서 처음 만난 어부들과 고래를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겠느냐"며 웃었다.

어민들과의 고래 이야기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②편에서 계속)

흑산도 파시 1960년대 조기 파시(波市·바다 위 생선 시장)가 열린 흑산도 예리항. 이 시기 흑산도는 어업 전진기지로서, 서해 먼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선박들이 태풍을 피해 몰려와 파시가 형성됐다. 상어잡이도 왕성했고, 고래도 더러 잡혔다고 한다.
▲ 흑산도 파시 1960년대 조기 파시(波市·바다 위 생선 시장)가 열린 흑산도 예리항. 이 시기 흑산도는 어업 전진기지로서, 서해 먼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선박들이 태풍을 피해 몰려와 파시가 형성됐다. 상어잡이도 왕성했고, 고래도 더러 잡혔다고 한다.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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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신안군 흑산도 전경. 2019. 5. 10
 전남 신안군 흑산도 전경. 2019.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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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도 위치도. 홍도와 만재도, 하태도, 가거도 등은 모두 흑산면 부속도서다. 이들을 아울러 흑산군도라고도 한다.
 흑산도 위치도. 홍도와 만재도, 하태도, 가거도 등은 모두 흑산면 부속도서다. 이들을 아울러 흑산군도라고도 한다.
ⓒ 카카오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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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고래#자산어보#파시#K관광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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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 제보 및 기사에 대한 의견은 ssal198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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