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연일 35도를 웃돌고 있고, 열대야는 30일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더위에 에어컨은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지금 같은 더위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면 에어컨은 진정 인류가 발명한 것 중에 가장 최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에어컨이 없이 이런 여름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에어컨이 없지는 않다. 결혼할 때 전자매장에서 세트로 구입한 가전혼수 중에 포함되어 있어 설치해 놓은 20년 된 에어컨이 있다.
올해는 에어컨의 덮개를 절대 벗기지 않고 생활해 보겠다 다짐을 했지만, 이번 더위는 나를 몇 번이나 망설이게 했다. 미련할 만큼 에어컨을 거부하는 이유는 기후 위기의 문제였다.
어느날 17세 아이가 말했다.
"엄마 세대까지는 괜찮을 거야. 하지만 나랑 내 자식 세대는 망한 거야."
뒷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이미 아이는 자신이 마주할 미래에 대해 체념하고 있었다. 이 아이가 느끼는 기후 위기는 분명히 기존 세대인 우리와는 다른 것이었다.
입추가 오면, 밤에 서늘한 공기를 삼킬 수 있고, 입춘이 오면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맞이할 수 있는 기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그날부터 조금씩 내가 행동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편한 신발을 하나 꺼내어 출퇴근용으로 삼았다. 대중교통 출퇴근은 사람을 아주 조금 더 부지런하게 만든다. 30분은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니 말이다. 뜻밖의 효과도 있었다. 대중교통 출퇴근 6개월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던 몸무게의 앞자리 수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역할까지 해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여름이 왔다. 이번에는 에어컨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사실 대구가 고향인지라 더위를 잘 이겨내는 유전자도 가지고 있는 듯했고 찬 바람이 이제 싫어질 나이도 되었다.
6월과 7월 지리한 장마 기간까지는 견딜 만했다. 문제는 8월 폭염으로 접어들었을 때부터였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밤이었다. 너무 더워 잠이 깨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하룻밤 사이 3~4번 잠에서 깨어버리니 이건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싶었다.
그리하여 다시 에어컨 앞에 서서 고민을 해보기도 여러 번. 결론은 지금 한 번만 참으면 우리 아이가 살아갈 시절의 온도를 낮추지는 못해도 더 올리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선다.
굉장히 미련하고 답답한 더위 참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는 기숙사에, 다른 가족들은 따로 살고 있어 가능한 일이지만 가족들이 다 동조하는 편이다. 단지 이런 나를 아는 사람들만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폭염이니 참지 말고 에어컨을 켜라고 한다.
다행히 아직 더위가 내 목숨을 앗아 가지는 않고 있다. 즉, 아직은 인내할 수 있다. 여기, 이 폭염에 에어컨 없이 견디고 있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테다. 아니, 에어컨을 가동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여러분도 한 번쯤은 더 참아보시길 권유드린다. 이제 곧 찬 바람이 불어올 것이니까!
우리 말고,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기온을 1도라도 낮춰보자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