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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9월 27일 오전 11시 26분]

대한민국은 예로부터 '활의 민족'이라 불렸다. 중화사상에 젖었던 중국도 고대부터 한민족을 동이(東夷)라 하여 말 그대로 해석하면 '동쪽 오랑캐'라고 표현하였지만, 이(夷)라는 단어 자체에 깃든 의미까지 가볍게 봐서는 곤란하다. 이 글자를 파자하면 '대궁(夷=大弓)'으로 큰 화살, 혹은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활을 잘 쏘는 우리 민족을 두려워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사와 전쟁사에서 활(弓)을 뺴놓고 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부터 시작한 활의 역사는 최근 대한민국 대표팀의 양궁 선전까지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전 종목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다시 한 번 신궁(神弓)의 나라임을 증명해 보인 바 있다.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인도네시아의 레자 옥타비아와의 32강 경기에서 임시현이 활시위를 놓고 있다.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인도네시아의 레자 옥타비아와의 32강 경기에서 임시현이 활시위를 놓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양궁협회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국가대표 선발전은 세계선수권 대회보다 훨씬 어렵고 수준 있다는 사실만 되뇌어 보아도 대한민국이 얼마나 활에 대해 진심인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일례로 지난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산(23) 역시 국가대표 선발전을 넘지 못한 바 있다.

굳이 엘리트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활은 국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취미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각궁으로 대나무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어 승부를 겨루는 전통 스포츠인 궁도(弓道)를 즐기기도 한다. '도(道)'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활을 통하여 심신 수양을 동시에 추구하는 셈이다. 또한, 놀이동산에서도 화살을 활용한 놀이가 있을 만큼, 활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존재해 있다.

이렇게 활과 가까운 생활을 하고있는 대한민국에서 이에 대한 학습이 가능하고,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상당히 드물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황학정(黃鶴亭)'이 바로 그곳이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으로, 1898년 고종 황제의 어명에 의하여 설립된, 상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황학정 국궁전시관에 전시된 신기전 모형. 활의 민족답게 무기 체계 역시 다양하게 진화를 거듭했다.
황학정 국궁전시관에 전시된 신기전 모형. 활의 민족답게 무기 체계 역시 다양하게 진화를 거듭했다. ⓒ 김현희

당시 고종 황제는 "비록 활은 군대의 무기에서 제외되었으나, 국민의 심신단련을 위한 활쏘기는 권장되어야 한다"는 어명으로 황학정을 건립하여 민간에 개방했다. 무기로써의 역사적 사명을 다 한 우리 활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신체활동이자 문화로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 온 황학정은 현재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인근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그 곳에 국궁을 직접 시행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대한민국 활의 역사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국궁전시관도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찾을 수 있다.

황학정 국궁전시관에서는 고대부터 시작된 한반도 활의 역사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별도의 영상자료도 상시로 방영되고 있어 유소년/청소년들의 역사 공부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에 매주 금요일과 마지막 주 토요일 등 한 달에 5~6회 정도는 직접 활을 쏠 수 있는 체험(유료로 진행. 10발당 4,000원. 별도 예약 필요)도 할 수 있다. 양궁에 꿈을 지닌 어린 선수들에게 더 큰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장소임엔 분명하다.

 황학정에는 직접 활을 쏠 수 있는 체험장도 있다. 인근에 실제 국궁장이 있어 월 5~6회(매주 금요일, 마지막주 토요일)로 제한된다.
황학정에는 직접 활을 쏠 수 있는 체험장도 있다. 인근에 실제 국궁장이 있어 월 5~6회(매주 금요일, 마지막주 토요일)로 제한된다. ⓒ 김현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학정이 민간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이다. 황학정을 찾아오려면, 사직공원에서 인왕산 스카이웨이로 진입하여 단군성전 바료 앞에 위치한 오른쪽 일방통행길로 진입해야 한다.

그나마 이 방법도 차량 소지자에 한하여 가능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사직공원 앞에서 버스 하차 후 가파른 언덕길을 걷거나,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마을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사실 최초 황학정은 경희궁 회상전 북쪽 기슭에 활터를 설치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만큼 현재 위치보다는 접근성이 나았다. 다만, 일제에 의해 경희궁 안에 경성중학교가 세워지는 등 훼손으로 인하여 황학정이 없어질 위기에 처한 역사가 있다. 이에 박영효가 회장으로 있던 조선교풍회와 황학정 사원들이 주축이 되어 이전을 추진하고, 1922년에 현재 위치인 '등과정'에 자리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평일에도 '목적을 갖고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이나 우연찮게 찾아 온 국내 관광객 아니면 찾는 이들이 드문 것이다.

그러나 매년 올림픽에서 효자 종목으로 국민들을 기쁘게 해 주고 있는 양궁 종목의 '역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한 번쯤 기억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운동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가벼운 복장으로 인왕산길을 산책하며 잠시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황학정 국궁전시관(서울 종로구 사직동 산 1-1)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민간에 무료 개방하며, 전시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주요 지리정보

#황학정#양궁#올림픽#국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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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데일리안, 마니아리포트를 거쳐 문화뉴스에서 스포테인먼트 팀장을 역임한 김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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