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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취준생 63만 명, 고립 청년 54만의 시대다. 이들은 점점 좁아지는 ‘취업문’에 꿈, 결혼, 출산 등 미래를 하나씩 포기한다. 이젠 ‘힘내’라는 응원도 버겁게 느껴진다. 청년들은 대신 더 소박한 것을 원한다. 그저 지켜보고, 들어주고, 믿어주기를. 있는 그대로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나 또한 청년층의 한 구성원으로서 부탁한다. 서재를 핑계 삼아 하는 내 일상 이야기를 들어주기를.[기자말]
 청년의 서재 책장 모습이다. 현재 약 사천 권의 책을 보관하고 있다.
청년의 서재 책장 모습이다. 현재 약 사천 권의 책을 보관하고 있다. ⓒ 김명근

공간에 담긴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사 년간 공들여 '청년의 서재'를 만들었다. 현재 사천 권의 서적과 글 쓰는 데 필요한 여러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다. 서재는 '책 나눔'을 해준 모든 이에게 고마움를 표하기 위해 나중에 공공도서관으로 발전시킬 생각이다.

청년의 서재는 집안 사업의 흥망이 담긴 '우여곡절의 공간'이다. 90년대 우리 집은 음료 유통업을 했고, 이곳은 음료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하지만 사업 초기와 달리, 동네에 대형 유통업체와 마트가 들어서면서 납품하는 곳들을 하나씩 빼앗겼다. 초등학생 때 점점 쌓여가던 음료 재고와 함께 부모님의 깊어가는 한숨 소리를 기억한다.

아버지는 사업을 접고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창고를 개조했다. '할머니 방'을 만든 것이다. 벽 하나를 두고 우리 집과 할머니 방이 분리돼 있어 아주 가깝게 모시면서도 독립된 공간을 보장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거의 십 년을 이곳에서 생활했다. 즉 청년의 서재는 상업 공간이자 살림 공간이었다. 우리 집을 웃고 울게 한 애증의 공간이자 삶과 죽음이 깃든 공간이기도 하다.

 대형 책장 반대편에는 책상과 독서대 등 글쓰기와 관련한 여러 도구가 있다.
대형 책장 반대편에는 책상과 독서대 등 글쓰기와 관련한 여러 도구가 있다. ⓒ 김명근

코로나블루를 독서로 이겨내다

조용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학창 시절부터 친구가 많았다. 그래서 정확히 외롭고 우울한 감정이 어떤 건지 알지 못한 듯하다. 이는 가족, 친구, 이웃 등이 끈끈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제주 특유의 '괸당 문화' 덕택일 수도 있다. 그랬던 내게, 코로나19가 가져온 강제적 단절의 충격은 남들보다 배로 다가왔다.

당시 대학 고학번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흔히들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쌓아둔 인간관계의 덧없음을 토로할 나이 아니던가? 갑작스레 벌어진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아분열의 기폭제가 돼 무기력증까지 겪었다. 그때 집어 든 책이 공자의 <논어>였는데, 어쩌다 그 책을 선택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덕에 '책은 운명같이 다가오는 것'이라 굳게 믿게 됐다.

독서는 카프카의 말처럼 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행위였다. 불환인지불기지, 환불지인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해라". <논어>는 이제까지 남의 평판에 집중해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후 독서를 통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았다. 한 해에 150권 이상 읽을 만큼 책에 푹 빠졌는데, 결국 서재를 만들자는 생각까지 이르게 됐다.

개인의 가치관은 살아가는 공간을 통해 만들어진다

 공간과 서재에 관련한 책이다.
공간과 서재에 관련한 책이다. ⓒ 김명근

유현준 교수의 에세이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를 읽으면서 그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음을 느낀다. 도시과 지방, 부자 동네와 시골 동네, 교육열 높은 집안과 그렇지 못한 집의 차이였다.

유 교수는 어린 시절 '골목길'을 축구와 야구를 하는 '운동장의 공간', 딱지치기와 다방구를 하는 '오락의 공간' 등 캘리포니아에서 창업이 이루어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차고' 같은 공간으로 기억했다. 반면 우리 동네 골목길은 그렇지 못했다. 불우한 아이들의 오갈 데 없는 성지였고, 술에 취한 어른들이 점령한 거리였다.

그러나 반대 성향은 통하는 법이다. 유 교수와 나의 감성은 같은 주파수 영역대라 자신한다. 이는 애석하게도 내가 직선을 좋아하는 이유와 유 교수가 곡선을 좋아하는 이유에 맞닿아 있다. 우선 유 교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가 곡면 안쪽에 있으면 더욱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가 우리를 안아줄 때는 팔을 펴서 둥그런 형태를 만든다. 곡면 안쪽에 서게 되면 팔에 안긴 것처럼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현대인이 경험하는 대부분 공간은 직선이 평평하다. 건물의 벽면도 평평하고, 천장도 평평하다. 그러니 도시가 무표정의 차가운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반면 나의 일상 곳곳은 돌담과 오름 등의 곡선이 많다. 최근 제주에 많은 건물이 들어서며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맞아간다고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직선미'를 갈망했다. 그 본심에는 도시로 가고 싶은 욕구가 존재할 것이다. 또 둥그런 성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작용했을 터다. 괸당문화권에선 뚜렷하고 직설적인 사람은 배척당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협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속으로나마 신념이 뚜렷한 사람을 동경했다.

이에 서재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생각해보라. 수평과 수직의 연속인 책장, 직사각형 모양의 책, 책상과 독서대의 각진 모서리에 둘러싸일 때면 꽤 만족스럽다. 인간은 결국 살아가는 공간을 중심으로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이다.

훗날 공공도서관을 만들어 다시 베풀 계획

이문열 작가는 문학에 전념하며 무료로 기거할 객원을 기르기 위해 '부약문원'이란 제자 양성기관을 만들었다. 이 작가는 외부 도움 없이 자력으로 그들을 지원함으로써, 영국의 블룸즈베리 그룹 같은 문학 그룹을 형성하려는 야심을 밝혔다. <청년의 서재>의 목표도 그와 닮아 있다.

훗날 청년의 서재를 '공공도서관'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나의 소장 도서는 대부분 중고다. 공공도서관 설립은 싼값에 책을 나눠준 모든 거래자에게 보내는 '감사 표시'다. 또 팬데믹 기간에 우리나라 성인 우울증 유병율이 두 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나처럼 독서를 통해 자신을 찾아갈 이가 분명 더 있다고 생각해서다.

더불어 지난해 성인 10명 중 6명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고 집계됐다. 나는 그들에게 독서를 강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독서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격차감을 느낀다면, 저절로 독서 인구는 다시 늘어날 것이다. 당장 독서 인구를 늘리는 것보다 독서 공간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대한민국 독서율이다. 성인 10명 중 4명 정도만이 독서를 하고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 독서율이다. 성인 10명 중 4명 정도만이 독서를 하고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이번 '공간'에 관한 독서를 하며 무엇보다 윗세대에게 고마움을 느낀 점이 있다. 바로 서재를 자유롭게 공개할 수 있는 민주화 시대를 열어 준 것. 나는 그 토대 위에서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타인의, 특히 작가의 방을 엿보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1990년대 민주화하기 전까지 금서를 찾아내기 위한 가택수색이 행해졌다. (중략) 종전의 가택수색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기획은 지금이 꽤 민주화한 시대니까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 박래부 <작가의 방>, 5쪽

#청년의서재#맹구리북#제주#제주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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