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며칠째 폭염이 끝나지가 않는다. 뉴스에선 연일 '이상기후' 얘기를 한다.

뿔난 지구가 우리에게 경고장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경고장은 어쩌면 조만간 '(인류) 퇴장'이 될 지도 모른다.

며칠전 '처서'가 지났다. 처서(處暑)는 24절기 중 열넷째로 본격적으로 가을이 자리 잡는 때이다.

예전에는 이때쯤이면 여인들은 여름동안 장마에 눅눅해진 옷을 말리고, 선비들은 책을 말렸다고 한다. 아무리 더워도 절기가 오면 거짓말처럼 더위가 사그라들었는데 올해는 무더위가 계속이다.

더위를 피해 산바람 맞으러 도락산으로 향했다. 선암계곡 주변에 댐 건설 계획이 발표됐는데, 발표 뒤 주변 풍경이 궁금해서였다(지난 7월 30일 환경부에서 전국 14곳에 댐 건설을 추진하자 지역에서 반발이 나오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편집자 주).

더구나 이상기후에 식지 않는 더위를 '이열치열'로 즐겨보자는 마음에 도락산 등산을 가게 됐다.

단양8경으로 꼽히는 이 곳

도락산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 소재로 소백산과 월악산 사이에 걸쳐있는 965.5m의 바위산이다. 일부가 월악산국립공원 내에 포함되어 있다.

도락산이란 이름은 우암 송시열선생이 붙여주었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또한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단양팔경 중 4경을 가까이에 두고 있어 주변경관이 빼어나다.

단양시가지를 벗어나 선암계곡길에 이르렀다. 나무그늘이 시원한 도로를 달리며 도로옆 계곡소리를 듣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풀벌레소리, 계곡소리, 자동차소리가 악기가 되어 연주한다. 조화롭게 어울리는 소리가 웅장하고 아름답다.

8시가 조금 못 미치는 아침 시간, 물놀이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인 듯한데 저 멀리 엄마, 아빠손을 잡은 남매가 아장아장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모습이다. 도로 건너편 오토캠핑장의 여유로운 아침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상선암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등산안내도를 살폈다. 초보 등산객에겐 길을 익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길치, 방향치인 내겐 더욱 그렇다. 제봉으로 올라가서 채운봉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상선암주차장-제봉-신선봉-정상-도락산삼거리-채운봉-상선암주차장. 가늠해 보니 대략 6.8km이다.

상선암주차장 이용 시 주차비를 받는데, 이날은 '주차장 공사 중'으로 무료였다.

높은 지대에 위치, '신선마을'이라고 적힌 비석이 마을과 잘 어울린다. 등산 초입에 'OO가든'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최근 허영만의 식객 촬영지였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작은 사찰을 지나자 산길이 맞아준다. 나무그늘과 흙길이 심신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나무사이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숲을 더욱 푸르게 해준다. 흙길에 떨어진 푸른빛 도토리와 밤송이는 후회 없이 막바지 여름을 즐기고 있고, 키 큰 나무에 매달린 열매는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가을을 맞이하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르막이 시작된다. 나무계단, 철계단을 오르며 오늘 산행이 쉽지 않겠다는 노파심이 스쳤다. 계단 끝까지 오르니 우아한 소나무와 매우 큰 돌이 한 몸이 되어 짝을 이뤘다. 거대한 바위틈을 거슬러 흙을 찾아 멀리 뿌리내린 소나무의 모습이 경이롭다.

심하게 꺾이고 구부러진 소나무를 보니 이곳 바위산의 험한 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바위틈에서, 바위 위에서 자연을 이겨내는 소나무의 강인한 정신력과 생명력을 배운다.

 바위틈 소나무
 바위틈 소나무
ⓒ 박서진

관련사진보기


건너편 산줄기가 구름에 가려져 희미하다. 산골짜기 사이사이 오목조목 모여있는 작은 마을 풍경이 마치 동화책 속 그림같다.

 구름짙은 산자락
 구름짙은 산자락
ⓒ 박서진

관련사진보기


나무에 가려 조망이 좋지는 않았다. 나무와 나무사이의 작은 틈이 카메라 렌즈가 되어 주기에, 검은 산자락을 얼른 내 눈동자에 담았다.

어느순간, 내가 길을 잘못들었는지 거대한 바위가 길을 막고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연결되는 길이 없어 바위를 오른다. 거북이 등을 올라타는 기분이다.

미끄러지지 않고 발을 헛디디지 않으려고 천천히 신중하게 움직였다. 표지판이 없어 길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등산동호회 리본이 도움이 되었다.

여러 개의 바위를 지나고 나서야 등산로를 찾았다. 저 아래로 철계단이 보인다. '아, 바위를 탈게 아니고 저 계단으로 올라왔으면 됐을 걸!' 생각이 들어 힘이 빠지고 멍해졌다.

 갑자기 나타난 계단
 갑자기 나타난 계단
ⓒ 박서진

관련사진보기


제봉을 지나 신선봉으로 향했다. 신선봉이 가까워지자 한 명,두 명 다른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선봉 넓은 바위에 서니 사방으로 펼쳐진 암석이 절경이다. 나무하나 없이 매끈한 암석이 색조화장 하나없이 깨끗한 민낯처럼 반질반질하다.

 색조화장 없이 깨끗한 민낯 바위
 색조화장 없이 깨끗한 민낯 바위
ⓒ 박서진

관련사진보기


물줄기가 흐르는 폭포를 닮은 깍아지른듯한 암벽이 펼쳐진다. 두 눈이 호강했다. 마음속 깊이 감탄이 흘러나왔다.

 물줄기 떨어지는 절벽
 물줄기 떨어지는 절벽
ⓒ 박서진

관련사진보기


곳곳에 꺽인 소나무가 의자가 되어준다. 이건 혹시 신선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을까 상상하게 된다.

정상까지 0.3km 남았다. 마음놓고 쉬고 싶은 생각이 빨리 걷게했다.

 소나무 의자
 소나무 의자
ⓒ 박서진

관련사진보기


둥글둥글 깜직한 정상석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의자에 앉아 목을 축이며 가뿐 숨을 천천히 몰아 쉰다. 먼저 올라와 쉬고 있던 커플에게 인증샷을 부탁하고 배낭에 넣어온 떡을 나눠 먹었다.

저마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정상에서 모두 만났다. 인증샷을 부탁했던 커플은 최단코스 내궁기로 올랐다고 한다.

 도락산 정상석
 도락산 정상석
ⓒ 박서진

관련사진보기


급하게 하산하지는 않았다. 일단 가져온 간식을 천천히 먹으며 충분한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했다.

그러자 몸도 마음도 가뿐해졌다. 가벼운 발걸음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채운봉 방향으로 향했다.

구름이 걷힌 파란하늘과 마주한다. 푸른소나무에 걸터 앉은 뭉게구름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눈부시다.

 하늘에 맞닿은 소나무
 하늘에 맞닿은 소나무
ⓒ 박서진

관련사진보기


보통의 산은 하산길이 내려가는 길이라 무릎에 무리만 가지 않으면 어렵지 않게 내려가는데, 왜인지 이곳은 만만치가 않다. 오르락내리락 경사가 심하고 흙과 모래가 섞여 길이 미끄럽다. 방심하다간 넘어지기 십상이다.

높지 않은 산이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몹시 힘들었다. 평소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편인데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마을에 다다라서 푸른 산을 뒤돌아 보니 자연에 순응하며 순리대로 살고있는 바위와 소나무가 다시 생각났다.

 바위와 소나무
 바위와 소나무
ⓒ 박서진

관련사진보기


어린 소나무를 업어키운 듯한 바위는 거센 비바람에 깍여 자연스레 몸집이 작아졌을것이고, 바위 등에서 자란 소나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크고 강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함께 동고동락한 바위와 소나무가 마치 엄마와 자식같다. 바위는 어린자식을 업어 키운 엄마, 소나무는 늙어 작아진 엄마를 모시는 자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연은 부모와 자식이 아닐까. 서로를 위해 조건없는 관계가 성립되는 끈끈한 사이 말이다.

다시금 뉴스에서 본 '이상기후' 생각이 난다. 건강했던 자연이 병들어 가고 있다. 아름다운 사계절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더 늦기전에 서둘러 찾아야한다. 인류에게 있어 자연을 구해낼 '골든타임'이 얼마남지 않았다.

#단양#선암계곡#도락산#단양천댐#반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형적인 ISFP 입니다. 게으른 내가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꾸준히 써 보려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