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두 달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수험생들은 이달 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9월 모의평가를 통해 자신의 '시험 능력'을 최종 점검한다. 이번 9월 모의평가에 지원한 수험생은 48만8천292명으로 집계됐는데, 이 가운데 (검정고시생을 포함하여) 올해 초 졸업생 등 이른바 N수생이 10만6천559명으로 21.8%를 차지했다.
이런 추세를 고려할 때, 오는 11월 14일에 치러질 예정인 2025학년도 수능에서 N수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역대 최고치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입시전문가들은 N수생이 전체 수험생의 34% 정도인 17만8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열에 서넛은 졸업생이라는 얘긴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중 다수가 성적 상위권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이런 흐름은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모집 비율을 40% 정도로 늘린 2022학년도 입시부터 본격화한 것으로 올해 처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의대 신입생 모집정원이 갑자기 1천5백여 명 늘어나면서, 성적 최상위권 아이들이 너도나도 'N수 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감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고3 교실에 번지는 'N수생 공포증'
문제는 이런 현상이 고3 재학생들에게 'N수생 공포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의 일반고에서, 특히 의대 지망생 사이에서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방대 의대생은 수도권 의대로, 약학과 재학생은 한풀이 삼아 의대로, SKY 공대생은 어디든 의대로... 이렇게 상당수 성적 최상위 졸업생들이 다시 수능에 도전한다는 소문이 퍼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학업 성취도가 낮은 고3 재학생은 N수생 선배들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달 9일부터 13일까지 원서접수가 이루어지는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높은 곳에 지원할 예정인 고3 아이들 사이에서는 "믿을 건 영어밖에 없다"는 말이 유행처럼 돈다고 한다. 절대평가로 치르는 영어는 90점 이상이면 1등급, 80점 이상이면 2등급, 이렇게 내 점수로 등급이 산출되기 때문에 N수생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에 진학하려면 내신성적도 탁월해야 하지만 '수학 포함 3개 영역 합 4~5등급 이내' 정도의 까다로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충청권 대학의 경우 이번 의대 증원으로 해당 지역 고교 출신만 지원할 수 있는 '지역인재전형' 선발 인원이 170명에서 464명으로 2.7배나 늘었지만, 고3 재학생은 워낙 높은 '최저학력기준의 벽'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성적 최상위 졸업생 선배들이 많이 몰리면 그만큼 원하는 등급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올해 충남대 의대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국어, 영어 및 과학탐구(2과목 평균) 중 상위 2과목과 수학(미적분, 기하) 합산 4등급 이내다. 영어 1등급은 기본으로 가져간다 쳐도, 만약 수학에서 2등급을 받으면 국어, 과탐 중 1개는 반드시 1등급이어야 하는데 이게 쉬운 게 아니다.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국어, 영어, 수학, 과탐 영역 모두 1등급을 받았다 해도 안심할 수가 없다. 올해 수능에 N수생이 대거 들어오면 상대평가인 국어, 수학, 과탐 등급 중 어딘가는 한 단계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고 고3에겐 지방 의대도 '넘사벽'
지난달 21일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24학년도 신입생 합격 현황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충청권 의과대학 7곳의 신입생 10명 중 6명은 현역이 아닌 N수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대 의대는 49명 중 무려 39명이 N수생이었고(79.6%), 충남대 의대도 113명의 59.3%에 달하는 67명이 N수생이었다.
이런 흐름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6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정원이 또 늘어날지 아니면 유예될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이든 고3 의대 지망생의 'N수생 공포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악순환이다. 올해 입시에서 최저학력기준을 못 맞춰 의대 진학에 실패한 상당수 고3 학생이 내년에 N수생으로 '참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 의과대학의 신입생 자리 절반 이상을 N수생이 차지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아니, 정상이 아니다. 수능시험 한두 문제 차이로 고등학교 3년 내신성적 최우수 학생이 재수로 내몰리는 현상이 고착화할 경우, 학교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고3 아이의 '의대 승차권'을 N수생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수능 대비 문제 풀이 수업에 매진하는 등 교육과정을 파행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능을 자격고사로 바꿔야 하는 이유
독일은 한국의 인문고에 해당하는 김나지움(Gymnasium) 내신성적과 한국의 수능 격인 아비투어(Abitur) 점수를 합산하여 대학 입학 자격을 부여한다. 10일 정도에 걸쳐 치르는 논술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비투어에 한 번 합격하면 평생 대학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은 해마다 한날한시에 9등급 상대평가 수능을 치르고, 5지선다 객관식 문항을 누가 한두 개 더 맞혔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고 말하면 믿지 않으려 할 것이다.
역사와 문화가 다른 독일의 교육제도를 당장 한국에 적용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초등학교 때 이미 김나지움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독일 교육 시스템이 최선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자격고사인 아비투어에 한 번 합격하면 언제든 원하는 시기에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대입제도는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내신성적 소수점과 수능점수 1~2점 차이로 학생을 걸러내는 폭력을 지속할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