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수출사업본부가 내년 상반기 중으로 세종시 인근으로 옮기는 것을 추진한다'는 한 언론의 보도가 경주 지역 사회를 크게 술렁이게 하고 일단락 되는 분위기다. 한수원이 지난 3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4일 각각 이전설을 공식부인하면서 진정되는 국면이다.
하지만 '한수원 관계자' 발로 시작된 한 언론의 보도가 낳은 파장은 컸다. 단순 해프닝이었을까, 실체적 진실에 근거한 현상이었을까. <경주포커스> 취재 결과 '한수원 실무진에서 세종시 인근 충북 충주시 오송역으로 이전을 검토했던 것'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발로 시작된 '한수원 수출사업본부 이전설'의 경과를 정리했다.
수출사업본부 이전설, 8월 20일 최초 보도
한 언론이 한수원 수출사업본부 이전설을 최초로 보도한 것은 8월20일이었다. 기사의 근거는 한수원의 관계자의 말이었다.
<'체코 원전 수주 주역' 한수원 수출사업본부, 세종 근처로 이전 추진>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약 24조원 규모의 체코 원전 수주 사업에 주력했던 한국수력원자력 수출사업본부가 정부 부처가 밀집된 세종시 인근으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 부처와의 소통을 늘리기 위해서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한수원은 지난주 내부 심의 과정을 거쳐 수출사업본부 근무지 이전 지역을 세종시 인근으로 확정했다. 이번 주 중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해 수출사업본부 근무지 이전을 공식화할 예정"이라고 썼다.
'한수원 관계자'가 단순히 이전사실을 말했다고만 보기 어려울 정도로 기사는 구체적인 내용도 담고 있었다. 한수원 수출사업본부는 유럽, 아시아 사업 개발 및 북미 시장 개척 파트로 나눠진 사업 개발처, SMR(혁신형 소형모듈원전) 사업실, 체코·폴란드 사업실, 해외원전건설처 등으로 나뉘어 있으며, 경주에 있는 한수원 본사에는 176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이중 수출사업본부 인원은 220여 명이라는 사실까지 적시해놨다.
이 언론은 이어 한수원 관계자가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라면서도 '오송역 인근 빌딩을 임대하는 방식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내용대로라면 한수원은 8월21일~24일 사이 이사회를 열어 이전을 결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수원 이사회는 열리지 않았고, 수출사업본부 이전은 현재까지 공식 결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전개 상황을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대목이 발견된다. '이전설'은 최초 언론 보도 직후에 해당 기사의 보도경위를 해명하기위해 경주시를 방문한 한수원 관계자에 의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경주시의 대응도 본격화됐다.
지난 8월 30일 주낙영 시장은 관계 부서에 경위파악과 대응을 지시했다. 경주 지역사회에 반발 여론이 불이 붙은 것도 이날이 기점이 됐다. 8월 30일 오후 2시 경주시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위원장 이진구)가 열렸고, 회의에서는 열흘 전 보도된 기사내용이 비중있게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내용은 원전 범시민대책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지역 내 한 언론사 관계자가 자사 인터넷판에 보도하면서 확산됐다.
주낙영 시장은 확대간부회의가 열린 9월 2일 재차 대응지시를 했고, 3일 송호준 경주시 부시장이 한수원 경영부사장을 만나 이전에 반대한다는 경주시 입장을 전달했다. 경북 내 언론사들이 이전설과 경주시민들의 반발 기사를 내보낸 것도 그 이후였다.
이렇게 되자 한수원은 3일 '한수원이 수출사업본부의 근무지 이전을 추진한다는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는 설명자료를 내고 진화에 나섰다.
뒤이어 산업통상자원부도 4일 한수원 본사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17조 및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2016년 경주시로 이전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한수원 본사의 일부를 여타 지역으로 이전한다는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냈다.
한수원-산자부 해명, 최초 보도 후 약 보름 뒤에... 왜 이렇게 늦었을까
한수원의 첫 공식해명은 첫 언론보도 이후 14일이 지난 뒤에야 나왔고, 산자부의 해명은 15일이 지난 뒤에 나왔다.
왜 이렇게 늦었을까. 한수원 관계자는 5일 <경주포커스>와 통화에서 "최초 보도한 언론사 기자에게 사실무근이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하며 사실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수원의 소극적인 대처와 늑장 해명에 의문이 남는다는 평가다.
5일 경주시 고위 관계자는 <경주포커스>에 "8월 20일 최초로 언론보도가 나간 직후에 한수원 관계자가 경주시를 찾아와 보도경위를 설명하면서 '이전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실무진 차원에서 오송역 쪽으로 이전을 검토했던 것은 사실'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라고 말했다.
공식 결정된 바 없다는 점을 경주시 관계자에게 강조하는 과정에서 '실무차원의 검토는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준 셈이다. 종합하면 한수원 수출사업본부의 세종시 인근 충북 오송역 이전설은 전혀 근거가 없었던 것 아니라, '실무차원의 검토'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수원이 경주시민과 산자부 등의 여론을 살펴보기 위해 언론에 수출본부 이전설을 흘렸고, 파장이 커지자 이를 없던 일로 되돌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주포커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