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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에 조카가 아기를 낳았다. 제일 막내 조카가 이제 스무 살이니 우리 집안에 20년 만에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너무 신기하고 궁금했지만, 요즘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기에 조심스러워서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대신에 언니(아기 외할머니)가 가끔 올려주는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아기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기를 빨리 보고 싶어서 이제나 저제나 조카가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지난 주말에 언니가 아기를 돌봐주러 간다기에 따라갔다. 한 달 정도 지났으니 이쯤 되면 가봐도 되겠지 싶어 조카에게 물었더니 방문을 허락해 주었다.

언니는 사위의 생일선물로 딸과 사위가 한나절 외출을 할 수 있도록 아기를 돌봐주기로 했단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지 않고 집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는 조카는 물론이고, 6개월간 육아휴직을 내고 아기를 함께 돌보고 있는 조카 사위에게 그 어떤 선물보다 반가운 선물이 될 것 같았다.​

두 팔은 만세를 부르고 다리는 잔뜩 구부린 채로 자고 있는 아기를 보자마자 '어머나' 하는 탄성이 나왔다. 아기가 원래 이렇게 작나? 우리 아이 신생아 때가 벌써 21년이나 지나서 내가 그새 다 까먹었는지 아기가 너무너무 작아 보였다.

그런데 그 작은 몸에 손가락도 있고 발가락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었다. 게다가 하품도 하고 재채기도 하고 방귀까지 뀌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내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도 이랬었나 싶게 신기하다 못해 감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 작고 예쁜 천사가 어디에서 왔을까,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신비로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기를 보고 또 보았다. 내 아이를 낳아서 키울 때도 이런 마음이었더라면 더 행복하게 키울 수 있었을텐데, 그때는 왜 그렇게 낯설고 힘들고 버겁게만 느껴졌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금방 지나가 버리는 아주 짧은 순간이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을 키울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태어난 지 한 달이 된 아기를 안으니 아기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게 느껴졌다.
태어난 지 한 달이 된 아기를 안으니 아기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게 느껴졌다. ⓒ 심정화

잠투정을 하는 건지, 어디가 불편한 건지, 찡찡대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내 가슴과 아기의 가슴이 서로 맞닿으니 아기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게 느껴졌다. 그 느낌이 너무나 따뜻하고 좋아서 한참을 안고 있었다. 아기를 자꾸 안아주면 손을 타서 엄마가 힘들어진다지만, 다시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겨우 반나절 동안 아기를 돌봐주었을 뿐인데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손목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뻐근했다. 그동안 아기를 돌봐주고 나면 몸의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했던 언니의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구나 싶었다.

이다음에 내 딸들이 아이 때문에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내가 손주들을 돌봐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1일 할머니 체험으로 자신감이 확 줄어들었다. 점점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있는 요즘, 내 딸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려면 앞으로 적어도 5년은 있어야 할 테고, 그때는 나도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을 텐데, 함부로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요즘은 친구들을 만나면 자식들의 결혼에 관한 얘기들을 많이 나눈다. 나를 비롯해서 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아온 친구들은 대부분, 딸들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기꺼이 손주들을 키워주겠다고 한다.

아들을 가진 친구들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외벌이로는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빠듯한 요즘 세상에서 자식들이 맞벌이를 해서 경제적으로 빨리 기반을 잡을 수 있도록 자식이 원한다면 육아를 도와주겠다는 생각들이다. 부모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능력이 안 되니 몸으로라도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는 자조 섞인 말들도 오고 간다.

간혹, 우리 세대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교육과 입시에 그토록 극성을 부리더니 자식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식의 인생에서 그만 빠지라고 하지만, 내가 힘겹게 지나온 길을 자식들은 좀 쉽게 걸어갔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다.

하루 동안의 할머니 체험으로 진짜 할머니가 되어버렸는지 집에 돌아와서도 아기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나도 이다음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손주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딸들에게는 이런 내 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손주들을 키워주겠다는 말도 섣부르게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보다 먼저 내 몸이 더 늙지 않도록 지금부터 건강 관리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환갑이 넘어서도 손주를 거뜬히 안아줄 수 있는 튼튼한 체력을 키워야겠다. 할머니 되는 게 참 쉽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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