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아도 정해진 날은 돌아온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오는 우리의 명절 추석 연휴,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뉴스에서는 연일 차가 밀리고 있다고 지역 소식을 전한다. 이전엔 그러려니, 하고 생각해 왔지만 새삼 많은 생각이 든다. 고향이 무엇이기에, 왜 사람들은 명절이면 고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고향과 가족들을 찾아올까? 하고.
내게 고향이란 내 생의 뿌리이며 어릴 적 살아왔던 추억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온몸의 긴장을 풀어지게 하는 곳. 언제 가도 편안한, 안전함이 깃든 곳이다.
내가 그렇듯, 사람들은 이 고달픈 세상 속 찾아갈 고향과 부모 형제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하고 기뻐 한다. 만나면 반가울 뿐 아니라, 오랜만에 서로의 삶을 나누는 시간은 지친 우리 삶에 새로운 에너지가 돼 준다.
사람의 행복은 물질로만 채워지지는 않는다. 명절에 고향을 찾아오는 일은 부모와 형제와의 만남으로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을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가족은 만나야 하는데... 마음 쓸쓸한 이유
우리 집 둘째 딸과 사위는 추석 전에 내가 사는 군산에 다녀갔고 셋째 딸 가족과 막내딸 가족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군산에 내려오지 못했다.
그런 연유에서 남편과 나, 두 사람만 산소에 갔다. 전주에 사는 작은 집과 산소에서 아침 8시가 지나면 만나기로 미리 약속 했었기 때문이다. 가족은 만나야 한다. 이렇게라도 만나지 않으면 형제 조카들 얼굴 보고 살기도 어렵다. 그래야 소통도 하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정도 나눌 수 있다.
올해는 큰집 시숙과 형님이 돌아가신 후라서 마음 한편이 슬프고 쓸쓸한 명절이다. 우리의 안식처가 무너진 느낌마저 든다. 다른 때 추석이면 큰집에 모여 삼 형제 가족이 음식 준비도 하고 제사를 한 다음 모두 함께 성묘를 해 왔다. 수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집 추석 문화였다.
두 분이 계시지 않은 이번 추석은 큰집에 갈 수가 없다. 큰집 조카가 오라는 연락이 없으니, 우리는 괜히 불편을 줄까 싶어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한 세대가 가고, 집안 문화도 달라져 간다. 오랫동안 이어왔던 우리의 가문의 전통이 무너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야단 할 수도 없다. 나이 든 조카들도 각기 자기들만의 가치와 생활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남편과 내가 탄 차가 큰집을 돌아 다른 길 산소 쪽으로 가고 있는데 사람들 한 무리가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누가 우리처럼 일찍 산소를 오나 보네"라고 말하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시동생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그가 쓴 모자가 특이해서다.
시동생네 가족은 두 아들 네 가족은 추석이면 산소를 찾고 조상에게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인사를 한다.
시동생은 산소에 올 때마다 손자 손녀들에게 집안의 살아온 내력을 설명하곤 한다.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생활해 왔던 그분들의 가족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조상님들의 삶을 돌아 되돌아본다.
그런 시간이 새삼 소중하다. 조상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산다는 것은 자기의 뿌리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분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은 달라진 문화에 마음이 쓸쓸해 온다. 어쩌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도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두 분이 떠나신 뒤 우리 가족의 고유했던 문화가 사라지는 건 아닌지, 갑자기 변화된 모습에 울컥하고 마음이 아린다.
산소 상석에 평소 시아버님이 좋아하시던 막걸리, 시어머님이 좋아하시던 음료수, 송편과 과일, 전과 곶감 몇 가지를 간소하게 놓고 우리는 제사를 지내 듯 절을 했다.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그분들을 마음으로 그린다. 온몸으로 자손들을 사랑했던 그분들의 마음을 가슴 가득 새긴다.
변해 가는 날들을 묵묵히 바라 볼 뿐
9월이 이미 중순을 지나서 가고 있지만 날씨가 여전히 너무 덥다. 시시각각 폭염주의보가 휴대폰으로 오고 있다. 아이들은 날이 덥다고 가자고 보챈다. 오랫동안 산소에 머무를 수도 없다.
조카의 자녀들은 안보는 사이 금방 자란다. 나이 탓인지 조카의 아이들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명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가족들, 성묘를 하면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갑다.
세상 뜨신 지 몇 달 되지 않은 형님과 시숙이 누워 계시는 곳을 바라보니 새삼스레 슬픔이 밀려온다. 부모 다음으로 우리 형제가 의지해 왔던 분인데 이토록 황망 하게 가시다니,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평소에 시숙이 좋아하시던 커피 한잔을 올리고, 두 분이 외롭지 않게 잘 지내시기를 손 모아 빌어 본다.
산소에서 바라보는 산 아래 마을 큰집을 바라본다. 우리 기억 속에 수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던 이 곳도 이제 서서히 잊힐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를 어찌 막을 것인가, 우리는 그저 세월에 따라 변해 가는 날들을 묵묵히 바라 볼 뿐이다. 앞으로 추석 명절에는 또 어떤 변화가 오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추석이 오고 성묘를 하면서 느낀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