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나고 수확기를 앞둔 농촌은 요즘 울상이다. 쌀값은 80kg 한 가마에 20만원 이하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여기에 지난 21일 내린 폭우로 충남 전역에서는 잘 익어 가던 벼가 쓰러지는 도복 현상까지 발생해 농심이 타들어 가고 있다.
임선택 전국농민회 충남도연맹 사무국장은 지난 23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폭우로 벼의 도복(쓰러짐)이 심해서 난리도 아니다. 충남도 보령, 태안 등 해안가 쪽으로 벼멸구가 번지고 있다"며 "여기에 나방 피해도 커지고 있다. 생강의 경우에도 나방으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 나방이 생강의 연한 부분을 갉아 먹는다. 수확기인데도 이래저래 농민들에게는 힘든 시기"라고 호소했다.
지난 23일 기자는 충남 예산군, 홍성군, 보령시 북부 일대를 돌며 현장을 살펴 봤다. 산골 다랑이 논과 평지의 논 등 지역을 가릴 것 없이 벼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쓰러진 벼 수확하는 데 시간 두세 배 더 걸려"
홍성군 서부면 중리에서는 트럭에 콤바인을 싣고 벼를 수확하러 가고 있는 A씨를 만났다. A씨는 트럭을 잠시 세우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지난 폭우로 벼가 쓰러진 곳이 많다. 어떻게든 벼를 수확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업 시간이 두배 혹은 세배 정도 더 걸리는 것이 문제"라며 "벼가 도복돼 있을 경우 1500평 논을 기준으로 벼를 베는 데 '기본 3시간'은 걸린다. 기계(콤바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상당한 손해"라고 호소했다.
폭우로 인한 벼의 도복 피해 뿐 아니라 올해는 유난히 벼멸구와 같은 병충해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지속된 고온 현상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종협 보령시 농민회장(전국농민회 충남도연맹)은 "보령 지역에서도 예년에 비해서 벼멸구가 심하게 발생하고 있다. 몇 년 동안 벼멸구 피해가 없었는데 올해 유독 심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최근에 계속된 고온 현상이 원인으로 보인다. 논산이나 부여도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령은 이제 막 벼멸구 피해가 시작됐다. 피해 규모를 가늠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벼멸구가 벼의 진액을 다 빨아 먹으면 결국 쭉정이가 된다"면서 "보령 지역은 보통 10월 초에 벼를 벤다. 하지만 올해는 이미 벼를 수확하는 농가도 있다. 더 늦기 전에 울며 겨자 먹기로 벼를 베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스에선 올해 풍년이라는데... 현실 모르는 것 같다"
홍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오경씨는 "올해는 벼멸구 피해가 심각하다. 일부 뉴스(언론 보도)에서는 올해 풍년이라고 하는데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 같다"며 "쌀 수확량은 떨어지고, 쌀값도 폭락하고 있다. 여기에 해충(벼멸구)과 도복 피해까지 발생했다.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요즘 심리적으로도 많이 위축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예산군의 삽교읍의 한 농가에서는 미국흰불나방으로인한 피해를 호소했다. 김종대 씨는 "미국 흰불나방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됐다. 하지만 올해 유독 심한 것 같다"라며 "감나무·아로니아·뽕나무 잎, 심지어 지난 봄에는 벚꽃까지 먹어 치웠다. 흰불나방은 겨울에 월동하고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장을 위해 심어 놓은 배추와 알타리무에도 흰불나방이 옮겨붙어서 피해를 입히고 있다.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나방이 유난히 더 번식하는 것같다. 어쩔 수 없이 농약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후 위기로 농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농가들의 병충해 피해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벼멸구와 관련해서는 충남도 차원에서도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충남 농업기술원 기술보호과 재해대응팀 관계자는 24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지난 23일 기준으로 1635ha가 벼멸구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방제는 90% 정도 이뤄진 상태다. 농민들에게 수확을 조금 더 앞당길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벼멸구 피해는 농업 재해로 인정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농업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건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