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뇨물뇨물', '뀨뉴웅', '후게엥', '미미미미밍'…

웹툰 <흔한햄>의 주인공 '햄'이 울고 웃을 때, 구르고 꿈틀댈 때 내는 다양한 의성·의태어다. 모든 화의 시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본 작품은 우울증에 대한 묘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므로 감상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웹툰 작가 잇선은 2015년 웹툰 <우바우(우리가 바라는 우리)>로 데뷔한 이래, 우울과 무기력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마음을 세심하게 그려냈다. 2023년 말부터 연재하고 있는 <흔한햄> 또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이 겪는 고뇌를 보여주지만, 스무 컷을 넘기는 동안 한 번쯤은 배시시 웃게 하는 유머와 귀여움이 담겨 있다. 벌써 10년 차 만화가가 된 노련한 우울꾼 잇선과 지난 4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흔한햄> 작업 중인 화면 잇선 작가가 태블릿 PC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흔한햄> 작업 중인 화면잇선 작가가 태블릿 PC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잇선
- <흔한햄>은 <우바우>처럼 동물 캐릭터의 일상과 우울증을 다루지만,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요. 욕설도 없고, 귀여운 의성·의태어도 많이 나와요. 작가의 말도 친근하고요.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요?

"<우바우>를 연재할 때는 작가주의에 취해있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꼭 해야 했어요. 냉소적인 정서도 많이 넣었고요. 심지어 작가의 말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없으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적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이젠 나이를 먹으면서 성격이 할아버지처럼 변했어요.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더 생각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부끄러움도 없어져서 이상한 대사와 효과음을 즐겨요."

- 어떤 기회로 <흔한햄>을 연재하게 되었나요?

"전작까지는 고양이 캐릭터를 주로 그렸어요. <흔한햄>을 기획할 당시엔 고양이 유행이 지나가고 햄스터 유행이 왔어요. 햄스터가 찹쌀떡처럼 생긴 게 귀엽다고 느꼈어요. 귀여운 캐릭터가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이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그리기 시작했어요. 햄스터가 그리기 쉬워 보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더 힘을 쏟은 건 <중세기사 슬레이어>라는 웃긴 액션 만화였어요. <흔한햄>은 예비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SNS에 올렸죠. 그런데 네이버에서 진행한 공모전에 <중세기사 슬레이어>를 응모했는데 빛과 같은 속도로 탈락한 거예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흔한햄>을 투고했는데, 오히려 이걸 받아주더라고요.

- 게으른 마음과 무언가 이루어내고 싶은 마음 사이의 갈등을 자주 그리시잖아요. 작가님도 실제로 이런 고민을 하시나요?

"비슷한 고민을 해요. 제 마음은 야망보단 강박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제대로 쉬어보자'고 작정해도 이틀만 지나면 마음이 불편해요. 그렇다고 자제력이 강하지도 않아요. 하루를 알차게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죠.

이러한 강박은 만화 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생긴 것 같아요. 연차가 쌓인다고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잖아요. 연재를 안 하면 돈을 못 벌고 사람들에게서 잊히니까요."

잇선 작가의 일정표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 하기'
잇선 작가의 일정표'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 하기' ⓒ 잇선
- <흔한햄>에 작가님의 경험을 얼마나 투영하나요?

"가급적 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해요. 저는 만화를 오락물로 여겨서, 독자가 가볍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저를 투영하면 마냥 가볍게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예 모르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제 이야기를 조금은 넣어요. <흔한햄> 초반부에 햄이 아르바이트하면서 그림 그리는 장면이 있는데, 80% 정도는 제 경험이에요. 2부에서 연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는 제 삶과 거리가 먼 이야기가 많지만, 공감할 만한 요소를 넣을 땐 여전히 제 일상을 참고해요."

- 햄과 작가님은 어떤 점이 닮았고, 어떤 점이 다른가요?

"삶이 순탄하지 않다는 점이 비슷해요. 어떤 일도 마음먹은 대로 안 돼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할 일을 한다는 점도 닮았어요. 다른 점은, 저는 햄만큼 자주 울지 않아요. 제가 울 때는 매운 음식을 먹을 때뿐이에요. 예전에 국물 떡볶이 프랜차이즈 'S 떡볶이'에서 보통맛을 먹었는데 한 입 먹고 도망간 적이 있어요. 또, 저는 햄처럼 귀엽게 생기지 않았죠. 햄은 바보 같은 짓을 해도 귀여움을 받는데, 제가 그런 행동을 하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요."

- 우울한 만화를 그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너무 밝은 내용을 견디지 못해요. 저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슬픔이' 같은 사람이에요. 세상이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서, 그런 콘텐츠를 보기 힘들어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문구를 보면 도망가곤 하죠.

우울도 엄연히 사람이 느끼는 감정인데, 밝은 감정만 다루는 콘텐츠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해요. <흔한햄>은 처음에 인스타그램에 연재했는데, 인스타그램엔 우울한 콘텐츠가 특히 적었어요. 우울한 정서를 좋아하는 독자를 위한 만화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만화가 오락물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비슷한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이 공감해 준다면, 그걸로 좋아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웹툰#흔한햄#잇선#인터뷰#만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값어치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해야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