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역에서는 청년들이 일군 임팩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성장이 로컬의 변화로 이어지는 소셜디자이너들의 다채로운 활동과 이야기를 특집으로 전합니다. 오는 11월 14일 개최되는 청년 소셜디자이너를 위한 무대 ‘2024 사회적가치 투자(Social Investor Relations, SIR) 대회’에서도 생생한 임팩트 경험담이 펼쳐집니다.[기자말] |
희망제작소가 김은율
동해형씨 대표를 처음 만난(
인터뷰 보기) 2022년 초, 그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어요. 국내 최초로 반려견을 위한 수산물 펫푸드를 만든지 3년이 지났는데, 매출은 큰 폭으로 오르지 않고 직원은 도망가고 주변에선 그를 별종 취급했습니다. 서럽고 외로웠어요. 그런데 그해 말, 김은율 대표는 대한민국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펫산업 최초로 국무총리상을 받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반려동물박람회인 메가주(MEGAZOO)에서 완판 신화를 씁니다. 백화점에서 러브콜이 쇄도하고 기획하는 이벤트마다 화제가 되고 두터운 팬층이 생겨요. 고객추천지수(MPS)가 76%로 스타벅스나 넷플릭스 수준을 넘어서죠.
매출이 급증하고 해외 수출길이 열리며 본격적인 성장세에 접어든 2023년, 김은율 대표는 동해형씨의 정체성과 비전을 '제조 기업'에서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바꿉니다. "바다가 허락한 만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어요. 동해형씨 제품을 매개로 해양생태 캠페인을 벌이고, 반려동물 친화적인 고성의 숙소, 카페, 음식점, 산책길 등을 조사해 여행지도를 그립니다.
올해 6월엔 고성 안팎의 자원을 연결해 반려문화 예술축제를 열었어요. 축제 삼 일간 동해형씨 사옥과 그 옆 공형진 해변이 전국에서 몰려든 반려견과 가족들로 북적였지요. 김은율 대표는 동해형씨와 고성을 진지로, 환경친화적이고 포용적인 반려문화를 만들어가려 해요. 해외진출을 하면서 더욱 로컬 깊숙이 뿌리내리고, 매출 증가폭만큼 사회적가치 창출에 힘쓰는 김은율 대표를 만났습니다.
- 2022년 처음 만났을 때와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특히 '바다가 허락한 만큼'이라는 슬로건이 눈에 띄는데, 무슨 뜻인가요.
"2023년부터 제조 기업에서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전환하기로 마음먹고 현안을 짚어봤는데요. 기후위기 때문에 수온이 상승하면서 어획량이 계속 감소하고 있었어요. 저희는 갓 잡아 항구에서 입찰하는 신선한 원재료를 쓰기 때문에 해양환경에 굉장히 민감해요. 태풍이 와서 출항을 못 하거나 어획량이 줄어들면 차질이 생기는 거죠. '바다가 허락한 만큼'이라는 슬로건은 저희 제품이 바다가 허락한 만큼만 만들 수 있는 귀한 제품이라는 뜻도 있고, 그렇기에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위해선 바다를 더 잘 지켜야 한다는 뜻도 있어요."
제품 마케팅도 하고 고성 관광도 촉진한 '댕냥어보 캠페인'
- 슬로건을 바꾼 후 기획한 '댕냥어보' 캠페인이 화제가 됐어요.
"슬로건이 제품과 연결돼 소비자에게 가닿도록 '댕냥어보' 캠페인을 기획했어요. 저희가 원재료로 사용하는 11종의 생선 카드를 만들고, 카드에 각 생선의 생태와 특징, 어획량 등의 정보를 적었어요. 제품을 사면 카드를 한 장씩 드리고 여러 장 모아 SNS에 인증하면 '반려동물과 함께 바다를 지키자(Save The Sea With Pets)'고 쓴 굿즈로 교환해 드렸죠. 굿즈는 사전설문을 통해서 강아지 집사들이 가장 원하는 걸 제작했는데, 1위가 강아지 밥그릇었어요.(웃음)
카드를 모아 굿즈를 받은 고객들이 굿즈를 사용하고 SNS에 사진을 올리니까 메시지가 순식간에 확산되고 팬층이 생겼어요. 내친김에 서울숲에서 동해형씨 팬바자회를 열었죠. 바다로 가는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로 평소 안 쓰는 반려용품을 기부받아 판매하고 수익금을 바다환경단체에 기부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나중엔 생선 카드를 50장, 100장씩 모은 분들이 생겼고, 연말에 이분들에게 고성의 반려견 동반 숙소 숙박권을 선물해서 우리가 모은 팬덤이 자연스레 소멸위험지역인 고성관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캠페인을 마무리했어요. 댕냥어보는 동해형씨의 브랜드 가치와 비전을 담은 캠페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할 계획이에요."
- 댕냥어보 캠페인으로 동해형씨를 새롭게 브랜딩하고 제품 마케팅도 하고 고성관광도 장려하는 일석삼조 효과를 거뒀네요. 김 대표가 이렇게 효과적인 캠페인을 기획한 것이 놀랍지는 않아요. 기업에서 브랜드 전문가로 일하다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창업한 걸 알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국내에 없던 수산물 펫푸드를 아이템 삼아 제조업 창업을 하고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4년 넘게 버틴 비결이 궁금해요. 시간이 좀 걸려도 결국 성공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그럴리가요(웃음). 물론 막연하게 시작한 건 아니에요. 창업 전 기업에서 식품 브랜딩을 했는데 시장의 선호가 더 싼 제품에서 더 빠른 배송으로 변화하고, 브랜드된 전문몰이 등장하는 추세였어요. 그럼 앞으로 농산, 축산, 수산 순으로, 유통 난이도에 따라 수산이 탑티어겠구나 생각했죠. 당시 반려견을 키우고 있었는데, 사람 먹는 식품 시장처럼 반려동물 시장도 비슷하게 흘러가리라고 예상했어요. 제가 고향이 고성이니까 어릴 때 바닷가에서 해풍에 건조하는 생선을 강아지들이 많이 훔쳐가는 걸 봤거든요. 또 반려견용 오메가3 오일에선 아주 짙은 비린내가 나는데, 아이들(반려견)이 그 향을 너무 좋아했어요.
여기에 착안해서 강아지와 향에 대해 공부하고 논문도 찾아보면서 수산물 펫푸드의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미국을 비롯한 세계 펫푸드 시장에 세 가지 큰 흐름이 있는데, 첫째는 팻휴머니제이션(Pet-Humanization)이라고 해서 사람이 하는 걸 반려동물이 그대로 같이 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가 주목받고, 둘째는 프리미엄화, 셋째는 웰빙 즉 건강식이 각광받습니다.
저희 제품은 갓 잡아 항구에서 입찰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국산 생선을 살만 발라 염분을 빼고 첨가물 없이 반건조한 건강식이고, 주식에 맛과 향, 영양을 더하는 프리미엄 토퍼(Topper)예요. 글로벌 트렌드엔 잘 맞지만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니 시간이 걸릴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그래도 '강아지가 수산물을 좋아하나요?'라는 질문에 저희 브랜드로 답하기까지 3년 넘게 걸릴 줄은 몰랐지만요(웃음).
3년을 견딘 비결은, 우선 제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고, 그 일을 잘해내려면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실의에 빠지거나 할 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공정을 표준화하고, 유통기한을 늘릴 기술적 해법을 찾고... 제품 생산과 관련된 이런 일들은 생소하고 어렵지만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성취감과 재미도 느꼈어요. 그에 비하면 브랜딩, 마케팅, 유통은 제게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국내에 시장이 아예 형성돼 있지 않은 제품의 인지도를 쌓고 신뢰를 얻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고요. 론칭 후 1~2년간은 고객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뭐가 궁금하고 뭐가 걱정되고 뭘 원하는지... 고객들 질문에 답하면서 3년을 보낸 것 같아요."
- 고향에 돌아와 창업한 것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힘든 점은 뭐였는지도 궁금해요.
"부모님이 수산업 쪽에서 오래 일하셔서 생선에 대한 정보를 얻기 좋았고, 생선 손질을 오래 해오신 지역 어르신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강아지 먹이를 만드는 데 왜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구느냐'고 타박하시면서도 생선 살을 기가 막히게 발라주셨죠. 고향이 아니었다면, 시제품을 만들 때부터 이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을 거예요.
힘든 점은, 그럼에도 외로웠다는 거예요. 가족이나 친구들도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 했어요. 주변에선 서울서 대학 다니고 직장생활 잘하다가 갑자기 고향에 온 걸 보니 무슨 큰 문제가 있는가 보다, 수군거리고요. 함께 일할 동료를 구하는 건 더 어려웠어요. 고성도 청년인구 유출이 심해서, 다양한 업무 역량을 가진 청년을 찾기 쉽지 않고 외지 청년들이 이주해 정착하기엔 인프라가 부족해요.
로컬에서 창업하면 서울의 창업 인프라 안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비용이 들어요. 예를 들어, 저희 직원들과 식사를 한 번 하려면 10분 정도는 차를 타고 나가야 해요. 또 회사를 운영하려면 세무, 회계, 법률 자문을 구할 일이 많은데, 이곳에선 해결하기가 어려워서 서울까지 왔다갔다 하며 시간 걸리고 교통비 쓰고... 그게 다 비용이잖아요. 스타트업에게 시간과 비용만큼 소중한 게 없는데 말이죠.
동해형씨가 조금 알려지면서 이직 문의를 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그중엔 식품가공이나 무역과 같이 저희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전문성을 가진 경력자 분들도 있고요. 동해형씨에 와서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청년들도 있어요. 그런데 고성에 집이 없어요. 다른 지역 청년들이 이곳에서 일 경험을 쌓으면서 정착하기까지 머물 수 있는 숙소를 마련했으면 해서, 마을 분들과 정부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것도 쉽진 않네요."
고성을 반려문화도시로 만들려는 까닭
- 제품 수요가 늘어 공장 규모도 커졌겠어요. 그 사이 반려견 동반 호텔 '형씨호텔'과 '형씨카페'도 문을 열었고요.
"기존의 프리미엄 제품 외에 조금 저렴한 캐주얼 제품을 출시했어요. 프리미엄 제품은 동해형씨 본사 공장에서 생산하고, 캐주얼 제품은 지역의 동결진공건조 전문기업 두 곳과 협업해서 만들어요. 저희가 독점생산하지 않고 지역의 산업과 고용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 협업을 제안했는데, 올해 1월부터 해외수출을 시작한 데다 원재료인 생선도 지금의 11종에서 15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 아무래도 자체 생산라인을 확대해야 할 것 같아요.
형씨호텔과 형씨카페는 동해형씨를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전환하면서 론칭했어요. 제품이 입소문을 타면서 고성에 왔다가 동해형씨에 들르는 분들이 점점 많아졌거든요. 애플 플래그스토어처럼 한번 경험하면 동해형씨의 완전한 팬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생선모양으로 설계한 동해형씨 사옥 1층에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장과 반려견 동반 카페, 그리고 생선 조식을 경험해볼 수 있는 반려견 동반 호텔을 마련했어요. 호텔은 객실이 7개로 규모가 크진 않아요. 숙박업을 하려는 게 아니라 고성에 동해형씨 체험공간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이곳을 생태친화적이고 포용적인 반려문화가 시작되고 퍼져나가는, 반려관광+문화의 앵커스토어로 만들고 싶어요."
- 올해 8월에 싱가포르 펫페스티벌에 참여해 또 완판을 했다고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건가요?
"올해 1월부터 홍콩,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로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했어요. 창업할 때부터 세계적인 트렌드를 염두에 뒀다고 말씀드렸지만, 실제로 수출계약이 성사되니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정말 해외에서도 팬을 만들 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싱가포르 펫페스티벌(SGPF)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SGPF는 바이어들이 주목하는 세계진출의 교두보 같은 곳이에요. 통관 절차가 까다로운 수산물 가공품과 5m가 넘는 배 모형 전시물을 싱가포르까지 옮기고 설치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생략할게요(웃음). 다행히 결과가 좋았어요. 행사장 입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관에서, 국내 대비 1.5배 단가로 제품을 판매했는데 이틀 만에 전 제품이 다 팔렸어요. 비슷비슷한 부스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디자인 덕분에 베스트부스 톱4에 선정됐고 싱가포르 3대 메이저사 중 한 곳과 계약도 따냈죠.
제가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따로 있어요. 이런 전시에선 행사가 끝나면 부스 한 개당 폐기물이 평균 270kg이나 발생해요. 그런데 저희는 배 모형과 부가 전시물을 직접 가져가서 전부 회수해 돌아왔기 때문에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았어요. 오가는 길이 힘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바다를 지키자'는 약속과 결심을 지킨 셈이에요.
- 고성 반려동물 동반 여행지도 '형씨태그'를 제작하고 올해 6월엔 고성 반려문화예술축제를 열었어요. 기업이 성장하면서 로컬에 더 깊숙이 뿌리내리는 느낌입니다.
"2023년에 고성문화재단에서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하는 반려동물관광도시 공모를 함께 준비해보자고 제안해왔어요. 저는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 플레이어들이 많아지고 반려문화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준비하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그 일환으로 지역에 있는 반려동물 친화적인 카페, 숙박시설, 산책로 등을 조사해서 고성 반려동물 동반 여행지도(
형씨태그)를 제작했어요. 민·관이 만나 이렇게 재밌게 일할 수 있구나, 하며 신나게 준비했는데 아쉽게도 공모에선 떨어졌어요. 그런데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운 거예요. 고성에서 반려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어렵게 모였는데 이대로 흩어질 순 없다, 뭐라도 하자, 그래서 추진위원회를 만들었고 올해 4월 고성군 반려친화도시 선언도 하게 됐죠.
이 흐름이 6월 21일부터 2박3일간 열린 고성 반려문화예술축제 'becoming a companion'으로 이어진 거예요. 축제는 고성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동해형씨와 문화예술 최전방에서 활약 중인 무소속연구소가 기획을 맡아, 고성과 인근 지역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만들었어요. 동해형씨 사옥과 인근 공현진 해변에서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국내 작가들의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반려견들이 반려, 바다, 지구 같은 단어가 쓰인 보물을 찾아오면 거기에 해당되는 선물을 주고, 공연과 강연도 했죠. 저희 사비까지 보탰는데도 축제 예산이 부족해서 SNS에 '우리의 컴패니언(companion)이 되어달라'고 했더니, 전국에서 온갖 힙한 반려동물 브랜드들이 협찬하면서 행사규모가 커졌어요. 아쉬운 건 정작 고성의 기업들이 올해 '컴패니언'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 거예요. 고성이 반려친화 관광도시가 되려면, 지역 주민과 기업들이 참여해서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해형씨가 축제로 큰돈을 번다고 오해하는 분들도 있어요. 사업하는 사람이 돈 안 되는 일을 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동해형씨는 원래 '수산물 펫푸드를 가지고 바다를 지키는 것에 대한 모든 일을 하는 기업'이에요. 바다를 지킨다는 건, 바다환경을 보존하는 일을 포함해서 바다를 지켜온 지역사회와의 협업, 그 안에 있는 다양한 기업들의 커뮤니티, 다른 세대와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지역의 삶을 지키고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 뜻이에요. 그게 동해형씨가 더욱 사랑받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우리가 성장할수록 지역에 깊이 뿌리내리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