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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삶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계속해 온 것은 책 읽기뿐이니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옳겠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것도 직업적 성공을 위한 책 읽기가 아닌 직업과 무관한 책 읽기입니다. 그것이 제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유일한 투자였으니까요."

9월 26일 오후 7시 창비X알라딘 인생독서 1차 특강이 창비서교빌딩 지하2층 50주년홀에서 열렸다. 특강을 연 주인공은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자 '김영란법'의 주역, 김영란씨였다.

김씨는 이날 75분간 '삶을 위한 유일한 투자, 독서'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이번 강연에서 자신의 최근 저서 <인생독서>를 바탕으로 독서의 중요성과 그 영향력을 심도 있게 이야기했다. 그는 법조인으로서의 풍부한 경험과 평생에 걸친 독서 경험을 결합해 청중들에게 독서의 가치를 전했다.

 김영란 '삶을 위한 유일한 투자, 독서' 강연 현장
김영란 '삶을 위한 유일한 투자, 독서' 강연 현장 ⓒ 이호정

자기 감정을 아는 것이 진정한 공부다

김씨는 독서가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을 회상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다양한 국적과 성별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독서 취향의 차이를 언급했다. 남성들은 특정 장르의 책에 국한되는 반면 여성들은 다양한 책을 통해 삶의 시각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어 "시사 정보도 좋지만 소설에 집중하는 것 또한 큰 의미"라며 "당장 실용적이지 않아 보여도 소설을 읽는 것은 삶의 커다란 구조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서가 단순한 지식 축적을 넘어 삶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는 "사람들이 연주회에 가면 깊은 사유 없이 '브라보'만 외친다"며 공통적 인상을 고민 없이 받아들이는 현대인을 비판한 바 있다.

김씨는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하며 "박식함에 가려 자기만의 독창성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공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남들이 주는 공통적 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끼는 진정한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란씨가 청소년 시절을 설명하며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영란씨가 청소년 시절을 설명하며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 김효원

독서 없는 인생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에서 숏폼이 유행하며 집중력을 도둑맞는 요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씨는 그 이유로 '통찰력'을 제시했다. 책은 독자가 오래된 지식을 깨우치게 하고 삶에 대한 풍부한 방향성을 알려준다. 그는 독서를 고급 취미라고 생각하지 말고 쉬운 것부터 천천히 읽으라고 조언했다.

김씨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예로 들며 독서의 즐거움을 설명했다. 이 SF 소설은 인간의 생각이 통제되는 사회를 경고하고 있다. 주인공 가이 몬태그는 다른 이들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뒤늦게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는다.

김씨는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아이들이 직접 깨우치는 독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가 깨달음 없이 나열된 글자만 읽어 내려간다면 책의 즐거움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책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프레임을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독서는 유년 시절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독서는 사회 문제와 자아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김씨는 이러한 독서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을 소개했다.

이 책은 1974년 출간됐으며 우라스와 아나레스라는 두 쌍둥이 행성을 그린 SF소설이다. 이야기에서 우라스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하는 별이고 아나레스는 권위와 지배에 반대하는 사상인 아나키즘 사회다. 그는 "소설 제목은 두 행성 모두가 다른 쪽의 장점을 얻을 기회를 잃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획일성이 지배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독서는 김씨의 직업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중장년 시절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를 읽었다. 이 책은 법률가도 문학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말하는 인문서다.

훌륭한 판사로 나아가기 위해선 사람들에게 공감할 줄 아는 '문학적 재판관'이 돼야 한다. 이는 소설 독자처럼 개별 사건의 맥락과 인물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김씨는 "이 책을 읽고 죄질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바벨탑' 작품이 화제 된 적 있다. 이 작품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육각형 방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서관을 형상화한 설치 예술이다.

김씨는 이 작품을 언급하며 "책을 읽으면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지식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깨우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박식함을 과시하며 살지 말라고 경고했다.

 김영란씨가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김영란씨가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 김효원

책의 길, 삶을 풍요롭게 하다

김씨는 독서의 힘과 가치를 재조명하며 책이 단순한 지식의 창고를 넘어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임을 강조했다. 그는 책이 시대의 아픔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주고 더 나은 미래로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독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독서는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독서의 본질은 의무나 과제가 아닌 삶의 기쁨을 재발견하는 여정이다. 독서는 우리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며 내면의 풍요로움을 채워가는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그의 통찰력 있는 메시지는 책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깊이 있고 의미 있는지 일깨우며 우리 마음에 오래도록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상상 그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효원, 이호정 기자가 공동 취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두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시됩니다.

김효원 https://blog.naver.com/sa__ppy
이호정 https://blog.naver.com/hojeonglee0925


인생독서

김영란 (지은이), 창비(2024)


#김영란#인생독서#창비#알라딘#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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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교육원 취재 기자 미디어 에디터 27기입니다. / az78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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