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4일, '영미시와 사랑을 시작하는 가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대구 라일락뜨락1956을 찾았다. 환한 미소로 맞이해주신 여국현 시인님께 정갈하고 겸손한 사람의 품격을 느꼈다. 이날 나는 <들리나요> 시집을 선물받았다. 영문학자이자 대한민국의 시인, 여국현 교수님의 작품을 어서 들어보고 싶어, 서둘러 펼쳐 들었다.
시집을 읽는데 바람 소리를 계속 들었다면 믿어지겠는가. 여국현 시인의 시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키 작은 풀, 갈대, 꽃과 구름을 바라보며 천변에 서 있는 그의 뒷모습이 보인다. 프롤로그에 적혀 있듯이 그는 천변을 자주 걷는다. 천변의 바람이 시인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것 같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두이노의 성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따라 시를 받아 적었다는 데, 시인과 바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것 같다.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가 다시 중심 잡는 소리, 시집 속에 가득하다.
그 소리가 왜인지 모르게 웬델 베리, '최고의 노래'처럼 들린다. 모든 노래 중에서도 최고의 노래는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지만, 웬델베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고요를 들어야 한다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여국현 시인은 분명 그 고요의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식물들이 저마다 제 마땅한 방향으로 넝쿨을 뻗고, 가지를 뻗고 자라나는 소리에도 귀 기울였을 것 같다.
"새벽마다 산 위로 해 뜨는 곳
저녁마다 천 위로 달 뜨는 곳
갈대들은 한결같이 동쪽으로 나란했다
사방 불어오는 바람에 무람없이 흔들려도
마땅한 제 방향으로 고개 숙이며 서있는
겨울바람 속 천변 갈대들에게 배운다
우리 사는 일
우리 사랑하는 일 다름 아님을
흔들리고 비틀거려도
마땅한 제 방향으로 고개 두는 것임을"
- 갈대에게 배우다, 중에서
시인에게 동쪽은 마땅한 제 방향이다. 한없이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 흔들림도 마땅한 것이며, 그 흔들림 끝에 바라보고 선 동쪽도 마땅한 것이다. 활자중독자이자 독서선동가 김미옥 선생님은 여국현 시인을 '연민의 시인'이라 부른다. 아니나 다를까, 시편을 읽다 보면 "마땅함"으로 표현된 방향이 곧 "사랑"이고 "연민"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을 바라보고 꽃과 풀, 나무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 따뜻한 눈물이 있다.
"천변 텃밭 모종과 모종 사이
기다랗고 가는 곧은 작대기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위로 크는 족속들 옆으로 눕지 말라고
모진 바람 불어도 꺾이지 말고 삐뚤어 크지 말라고
제 길 제 시간 따라 꼿꼿하게 크라고
가늘고 곧은 작대기들이 제 몸 내어 길 받쳐주고 있다
나는 누구의 모종이었으며
나는 누구의 곧은 작대기일 수 있을까"
- 모종과 작대기, 전문
'선생님의 가방'에 나오는 시인의 스승처럼, 시인에게는 그를 지탱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그가 해를 보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온몸으로 작대기가 되어준 사람은 어머니다. '모종과 작대기'는 스스로도 작대기가 되어 누군가의 삶을 해의 방향으로 지지하겠다는 진실된 소망이 적혀있다. "엄마 없이 그 시집 나왔겠는가 / 고마워요 (엄마와 시, 중에서)"라고 말하는 사랑으로, 그는 넘치게 받은 사랑을 지금도 시로 흘려보내고 있다.
"영어는 까막눈에 상 까막눈이고
내사 마 뜻도 하나도 모르지만
한글은 띄엄띄엄 읽을 줄 아니 한글만 안 읽나
그러더니 돋보기를 고쳐 쓰고
내 석사논문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는 엄마
아들 이름 박힌 종이뭉치 아들인양
머리맡에 두고 읽는 그 마음 아득하여
우리 엄마 다음엔 박사논문 읽으시겠네
안 하던 너스레를 떠는 명치끝이 아릿하다"
- 엄마와 시, 중에서
누구에게나 치열하게 싸워온 자기 자신만의 전쟁터가 있지 않겠는가. 고군분투하며 걸어온 발자국 속에서 다른 이들의 발자국까지 헤아리는 연민의 마음이 시편 곳곳에서 읽힌다. "엄마 그때 기억나?(그때, 중에서)"라고 묻지만 이제는 답하지 않아도 되는 그때의 포한들이 아리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선 시의 소리가 곡哭소리를 내면서도 아름답게 곡曲을 부르고 있다.
"자유로운 그대를 사랑으로 옥죌 수 없어요
그대를 사랑하는 것
내가 사랑이 되는 길뿐이지요
바람의 노래 시를 마음만 뻗쳐 품을 수 없어요
시를 품는다는 것
내 삶이 시가 되는 길뿐이지요"
- 사소한 진리, 중에서
시인은 세상을 마냥 낭만적으로 포장하지는 않는다. 약육강식의 세상 속에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순간도 있음을 "호박넝쿨" "포식자들" "세 마리 비둘기가 전하는 우화" 시편들을 통해 분명히 직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쪽을 향해, 해를 향해, 마땅한 제 방향을 향해, 차가운 눈 속에서도 노랗게 꽃피는 복수초처럼 온몸으로 새 길을 여는 역성逆性을 노래한다.
에필로그에서 시인은 "서둘지도 조급하지도 않을 터이다. 가끔 그 길 위에서 나란히 앉아 저녁노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분들 만난다면 그로 족하다"라고 말한다. 인생을 잘 살아가는 방법은 의외로 힘을 다 빼고, 저녁 때 되면 물드는 노을같이 물흐르듯 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저녁을 따라 노을이 오듯, 가을을 따라 낙엽이 물든다. 나 스스로가 사랑의 길이 되면 사랑이 따라 걷는다. 이토록 사소한 진리를 우리는 자주 잊는다. 당연한 사실대로 살면 손해 보는 것만 같아서, 상대방이 먼저 사랑해 주길 바랄 때가 많아서 그렇다. 그래도 우리, 조금만 더 당연해지고, 조금만 더 마땅해져 보자.
들리나요. 사랑이 나를 따라걷는 소리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양시인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