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복무 대상자가 급감하는 상황이니 공익은 폐지하는 게 당연하죠."
"현실에서 현역 복무보다 공익이 담당하는 사회 복지 업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인들끼리 공익을 두고 난데없는 논쟁이 벌어졌다. 공익이란 흔히 사회복무요원을 가리키는 말로, 입영 대상 중 현역 복무 대신 사회 복지, 보건, 교육, 환경, 안전 등 공익 분야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뜻한다. 과거 '공익근무요원'으로 불리던 시절의 명칭이 그대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상반된 두 주장 모두 일리는 있다. 오래전 흔히 '방위'로 불리던 보충역은 넘쳐나던 현역 입영 대상자를 걸러내기 위한 방편이었다. 전투병 양성과 유지를 위한 막대한 국방비를 줄이는 효과까지, 말 그대로 일거양득의 대책이었다.
그러나 현역과 보충역의 복무 강도의 격차에 따른 부조리가 잇따르는 등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현역의 복무 기간을 대폭 축소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이어졌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보충역에 대한 관리 소홀까지 지적되며 한때 폐지가 검토되었으나 여전히 잉여 병역 자원이 넘쳐 울며 겨자 먹기로 공익근무요원으로 이름만 바꿔 그대로 존속되었다.
지금은 잉여는커녕 현역 입영 대상조차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회복무요원 제도의 즉각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지난 2023년에 사라진 의무 경찰제를 근거로 제시한다. 당시 의무 경찰제 폐지의 가장 중요한 이유 역시 인구 절벽으로 인한 현역 입영 대상자의 부족이었다. 어차피 잉여 병역 자원을 위한 임시방편의 조치였으니 목적이 사라지면 폐지하는 게 옳다는 단순명료한 논지다.
'공무원' 한 사람의 몫 담당
문제는 이 임시방편의 제도가 시행된 지 30년이나 지나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점이다. 아무런 후속 대책도 없이 과거로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많다. 일정 기간 현역 복무를 대체하는 일이지만, 지금 그들을 배정받은 각 기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공무원'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사회복무요원이 근무하는 기관의 절반 가까이가 사회복지시설로, 지역을 넘어 그들의 일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2022년 기준,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의 비율은 45%에 이른다. 사회복무요원이라는 명칭을 '사회복지요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복지 업무의 일손이 워낙 달리는 데다 성격상 공익에 부합하는 일이다 보니, 사회복무요원이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시설로 파견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소집이 해제되고 난 뒤, 그제야 자신이 근무했던 곳이 사립 복지 시설인 줄 알았다는 한 지인은 당시 자신의 업무를 '시다'라고 표현했다. 시설 운영자에겐 공짜 노동력이라는 뜻이다.
"서로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볼까요? 우리끼리 아웅다웅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잖아요."
조심스럽게 논쟁에 끼어들었고, 변곡점을 맞는 계기가 됐다. 놀랍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찬반이 뒤바뀌었다. 평행선을 달리던 두 주장이 '공수 교대'가 일어난 것이다. 이 와중에 사회복무요원 제도의 폐지 여부가 본질적인 문제도 아닐뿐더러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의견이 모였다.
현역 입영 대상이 급감하는 현실을 사회복무요원 제도의 책임인 양 떠넘기는 건 잘못된 접근이라고 입을 모았다. 방위 체계를 첨단화하여 병력 충원을 대체하도록 하고, 종국에는 일상에서 전쟁의 공포를 안고 사는 분단 상황을 해소하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남과 북이 서로 '제1의 적대국' 운운하고 '흡수통일'을 부르대는 지금이야 꿈같은 말이지만, 평화 체제의 실현만이 군비 축소와 병력 감축을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세계 최저의 역대급 출생률이 본질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는 학령 인구의 격감으로 이어져 전국 초중고의 순차적인 통합과 폐교를 불러올 게 확실하다. 도미노처럼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어 노령 인구의 부양비를 폭증하는 등 국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직접적 요인이 된다. 그깟 현역 입영 대상의 부족을 걱정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거다.
사회복무요원의 근무 조건 천차만별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건, 사회복무요원 제도의 개선에 관한 이야기였다. 현역 복무와 마찬가지로 사회 복지 업무도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영역이라는 데에 공감했다. 나라를 총칼로만 지킬 수 없다며, 사회 복지 체계가 잘 갖춰진 곳이야말로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맞장구쳤다.
이는 현행 사회복무요원 제도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꼬집는 것이기도 했다. 획일적인 현역 복무조차 가급적 개인별 전공을 고려해 특기병을 뽑아 자대에 배치하는 추세인데, 아무리 오랜 관행이라고 해도 공익을 위한 다양한 업무에 무작위로 배정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거다. 비용은 줄이고, 책임은 떠넘기려는 국가의 횡포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현재 사회복무요원은 주소지를 기준으로 가까운 기관에 배정되는 게 보통이다. 집에서 출퇴근하며, 소속된 기관장의 지시에 따라 근무한다. 급여는 현역 입영자와 동일하지만, 업무 및 근태 관리는 소속 기관이 책임지고, 병무청은 감사 기능만 수행한다. 복무 기간은 21개월로, 현역 입영자보다 3개월이 더 길다.
주소지를 고려한 무작위 배정이다 보니, 사회복무요원의 근무 조건이 천차만별이다. 그들은 이런 격차를 두고, 속칭 '헬무지'와 '꿀무지'로 구별해 부른다. '헬무지'란 근무 여건이 열악하고 업무 강도가 센 곳을 가리키며, '꿀무지'는 그 반대의 경우다. 근무 지역과 업무의 종류, 심지어 기관장의 성향에 따라 '복불복'이라고 한다.
특수교사 늘리지 않고 공익에게 맡긴다?
논쟁에 끼어든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봄부터 큰아이가 가까운 초등학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어서다. 그는 특수학급에서 담당 교사를 보조하는 일을 맡고 있다. 특수 교사의 업무 보조라고는 하지만, 종일 장애우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게 주업무다. 화장실에 함께 가고, 점심시간 밥을 먹이는 일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고 한다.
자폐증부터 뇌전증,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해 적절하게 대응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한다. 담당 교사로부터 기본적인 요령은 교육받았지만, 돌발 상황이 벌어져 식은땀을 흘린 적이 여러 번이었다고 토로했다. 퇴근 후 장애의 종류와 증상에 관한 책을 찾아 읽어야 하니, 종일 근무하는 셈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아이는 근무하는 곳이 '헬무지'는 아닐 거라면서도,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곳이었다면 좋았겠다는 바람을 입버릇처럼 들먹였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그에게 특수 교사 보조는 생뚱맞은 업무가 아닐 수 없다. 각자 관심이 있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사전 조사하여 배정한다면, 지역 사회에 훨씬 더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몇 개월 간의 경험을 들어 장애우 아이들을 교육하는 업무는 온전히 특수 교사의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명토 박았다. 교사의 업무가 과중하다면, 교사를 더 충원해서 해결할 일이라는 거다. 천차만별 장애우 아이들은 시나브로 늘어만 가는데, 이를 어쭙잖은 사회복무요원에게 맡기는 건 반교육적일뿐더러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결국은 비용 문제로 귀착된다. 특수 교사를 충원하는 대신, 사회복무요원의 의무적 노동에 기대는 건 비용 절감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려는 얄팍한 대책으로는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사회 복지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걸로 매조지던 논쟁의 끝은 의외로 허무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천문학적 세수 감소로 사회 복지 예산을 늘리기는커녕 대폭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다. 듣자니까, 사회복무요원의 배정을 요구하는 기관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데, 부디 '공짜 노동'을 바라는 꼼수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