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체코 원전사업 수주가 확정될 수 있게 세일즈 외교를 펼치겠다며 9월 19~22일 체코를 국빈 방문했습니다. 한국 공동수주팀은 7월 17일 체코 두코바니 원전 신규건설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언론은 당시 한국이 24조원 '잭팟'을 터트렸다며 원전 본산 유럽에 수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등 장밋빛 보도를 쏟아냈는데요. 이번에도 양국 협력관계가 더 굳건해졌다는 평가와 함께 내년 3월로 예정된 본 계약 체결에 대한 희망적 보도를 내놨습니다.
그러나 체코 원전 건설 관련한 사업비용이나 계약 조건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 없습니다. 비밀유지 계약에 따라 사업내용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검증 소재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언론은 체코 원전 수주를 확정한 듯 낙관적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덤핑수주 의혹과 대규모 손실 우려 등 비판 의견에는 대통령실의 '가짜뉴스' 발언을 대대적으로 받아쓰면서 '국익 우선론'으로 반박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미 계약 끝난 듯 "사실상 수주·마침표 찍은 것"
언론은 지난 7월과 마찬가지로 양국이 마치 최종 계약서에 도장이라도 찍은 듯 긍정적 보도를 쏟아내며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성과를 부풀렸습니다. 머니투데이
<윤 대통령, 체코 출장서 원전 수주 사실상 매듭…'원전 10기 수출' 탄력?>(9월 23일 민동훈 기자)은 "윤석열 대통령이 2박4일의 체코 공식 방문을 통해 총사업비 24조원 규모의 '두코바니 원전 수주'를 사실상 확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경제
<윤 "체코, 핵심 우방국"…SMR 등 원전 첨단산업도 협력>(9월 20일 도병욱·양길성 기자)도 "원전 사업의 최종 계약 성사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것"이며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호평했는데요.
중앙일보·
뉴스핌·
뉴스1 등도 체코 원전 건설 사업을 '사실상 수주'라 보도했습니다.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의 '낙관적'이란 발언을 비중 있게 다루며 원전 수주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보도도 줄을 이었습니다. 조선일보
<윤 "체코와 원자력 동맹 구축" 파벨 "한국 원전 최종 수주 낙관">(9월 20일 양승식 기자), 이투데이
<파벨 체코 대통령 "한수원, 원전 최종 수주 낙관적">(9월 20일 김동효 기자) 등이 대표적인데요. 파벨 대통령의 우려 섞인 발언이 인용되긴 했지만, 긍정적인 부분을 제목으로 뽑으며 원전 수주를 낙관적으로 전망했습니다.
TV조선
<"원자력 동맹 구축"…추가 수주 가능성>(9월 20일 김정우 기자)은 파벨 대통령이 "한수원의 최종 수주에 낙관적"이며 "한국과 협력할 잠재력이 크다"고 발언했고, 이는 "테믈린 3·4호기 추가 수주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고까지 보도했는데요. '두코바니 원전' 최종 본 계약이 성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테믈린' 추가 사업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입니다.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도 추가 원전 수주 가능성을 제시하며 성과를 강조했습니다.
체코 대통령 '최종 계약 전 확실한 것 없다'
하지만 체코는 역사상 가장 큰 국책사업의 하나인 원전 계약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9월 20일 김경년 기자)는 체코 대통령궁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체코 기자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법적 분쟁이 어떻게 협의되고 있는지'를 묻자 파벨 대통령은 "제가 추가하고 싶은 것은 최종 계약서가 체결되기 전에는 확실한 것이 없다"고 발언하며 "윤 대통령의 장밋빛 전망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전했습니다. 파벨 대통령은 "그 문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되리라고 믿지만 어떤 나쁜 시나리오도 물론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파벨 대통령은 아리랑TV와 인터뷰에서도 "한국은 여러 평가 기준에 따라 최고의 선택으로 선정됐으며 여전히 그렇다"면서도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우려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한겨레
<윤 '체코 원전 수주' 장담했지만…'지재권' 걸림돌 못 치운 듯>(9월 21일 박기용 기자)도 "양국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선 이런 낙관론과는 결이 다른 '협의가 아직 진행 중'이란 분위기가 엿보였다"고 분석했는데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갈등이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웨스팅하우스 소송, 윤 대통령 호언장담만 받아쓰는 언론
웨스팅하우스는 한국 첫 원전인 고리 1호기 건설부터 각종 원전 기술을 국내에 전수한 기업으로, 한국은 1978년 결성된 원자력공급국그룹(NSG) 지침에 따라 원전 수출 시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를 근거로 웨스팅하우스는
2022년 10월 21일 한수원의 최신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올해 8월 26일에는 한수원이 체코 원전을 수주하면, 미국과 체코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체코 반독점사무소에 진정을 제기했는데요. 미국 일자리 감소 지역으로 대선 핵심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를 언급해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반면, 한수원은 현재 원전 모델은 독자 개발한 만큼 수출통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인데요. 원만한 합의를 위해 한수원은 8월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방문했습니다. 조선일보
<단독/미국 태클에 걸린 K원전 체코 수출>(8월 27일 조재희 기자)은 "미국의 몽니가 본 계약 때까지 이어진다면 체코나 우리 양측 다 부담이 커진다"고 전했는데요. 체코는 "미국 정부의 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은 한국형 원전을 계약하기엔 지정학적인 우려가 크고, NSG에 가입된 우리나라도 핵 확산을 막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국제사회 절차를 무시하고 해외에 원전 수출하는 선례를 만들기 어렵다"고 짚었습니다. 한국일보
<"허락 없이 K원전 수출 불가" 미 웨스팅하우스, 체코에 진정>(8월 28일 이상무 기자)도 "수출 및 통상 전문가들은 웨스팅하우스의 문제 제기가 체코 원전 본 계약 성사에 위험 요소가 됐다고 분석"한다며 "체코가 아무리 한국 원전을 쓰고 싶어도 미국의 결정을 애써 무시하면서까지 진행시키긴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언론은 웨스팅하우스와 분쟁이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와
매일경제 등은 "양국 기업 간 분쟁도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는 윤 대통령의 호언장담을 전하며 "지식재산권 분쟁 해결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고", "우려를 불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
<탈원전 야당들 이젠 원전 수출 훼방, 정쟁에도 정도가 있어야>(9월 21일)도 웨스팅하우스 이의 제기는 "결국 돈을 더 달라는 요구로 종내 해소될 것"이라 주장했는데요.
국민일보
<체코 원전, 미국 지식재산권이 걸림돌?…수출 권리 지금도 유효>(9월 25일 신준섭·김혜지 기자)와 문화일보
<학계·업계 "대미 협력 채널 총동원… 웨스팅하우스 분쟁 결국 해결될 것">(9월 20일 박수진 기자)은 "굳건한 한·미 동맹 기조와 글로벌 원전 시장 선점을 위한 한·미 협력 필요성 등을 고려하면 갈등 상황이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해당 의혹 제기가 '어불성설'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는 전문가 의견을 전했습니다.
총수출액 1%도 안 되는데 '잭팟'… 국익 따져보자는 주장조차 비난
이뿐만이 아닙니다. 언론은 덤핑 수주 의혹 제기 등 다른 목소리에 대해 '괴담', '자학', '폄훼' 표현으로 비난하고 나섰는데요. 한국일보
<사설/정상외교 중 야권의 '체코원전' 폄훼 온당치 않다>(9월 21일)는 야권 주장이 "근거와 논지가 난삽해 무리한 헐뜯기라는 비판을 살 만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민일보
<사설/원전 '덤핑 수주' 괴담, 누구에게 도움되나>(9월 21일)는 '악의적 가짜뉴스'에 '근거가 빈약한 음모론'이라며, 야당 의원들이 "국가안보와 국익 앞에서는 힘을 합친다는 기본조차 망각한 것"이라 일축했는데요. 매일경제
<사설/체코 원전 수출에 딴지거는 야, 원전 생태계 망쳐놓고 할 일인가>(9월 21일) 역시 "광우병,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후쿠시마 오염수에 이어 '아니면 말고'식 괴담의 수정본일 뿐"이라며 "해외는 우리 비용 경쟁력을 칭찬하는데 국내에선 헐값 수주라며 자학하는 꼴"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9월 20일 회담 직후 "한수원은 체코 기업과 70개 이상의 협력 MOU를 체결했고, 저희가 목표하는 체코 기업의 60% 참여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겨레
<미국·체코 '이중 청구서' 원전 수출 잭팟은 없다>(9월 23일 옥기원·이승준 기자)는 체코가 한국에 현지기업 참여율 60%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웨스팅하우스에 합의금(바라카 원전 기준 11%)까지 지급하면 결국 한국 몫으로 돌아올 게 많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고 짚었는데요. 체코 원전 건설비 24조 중 남는 것은 29%인 6조 6천억으로 지난해 한국 총수출액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설명입니다.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잭팟' 수준이 아니라는 것인데요.
시사IN
<'체코 원전 잭팟'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8월 13일 이오성 기자)은 "잭팟을 터뜨린 것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체코 정부라는 말도 나온다"며 한국수출입은행이 아랍에미리트 바카라 원전 건설에 31억 달러를 지원한 것과 같이 체코에도 재원의 상당부분을 지원할 경우 "체코 정부로서는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우려는 하나씩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데요.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서한을 근거로 9월 26일 한겨레
<체코 원전 금융지원 없다더니…정부 "돈 빌려주겠다" 약속>(옥기원 기자)과 한국일보
<"체코 원전 금융 지원 없다"던 한수원, 4월 입찰 때 "건설비 빌려주겠다" 제안했었다>(나주예 기자)는 "금융지원은 없다"고 강조해왔던 한수원과 안덕근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의 주장과 달리 입찰 당시부터 한수원이 정부기관을 통한 대출지원을 먼저 제안한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부산엑스포' 잊었나? 균형 있는 보도 내놔야
경향신문
<사설/'속빈 강정' 우려 나오는 체코 원전, 장밋빛 홍보만 할 땐가>(9월 24일)는 "윤 대통령의 나흘간 체코 방문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분명치 않다"며, 체코 대통령이 불확실한 발언을 내놓는 상황에서 "궁금증을 해소"하진 않고, "왜 못 믿느냐고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체코 원전 경제성 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두고 "어느 나라 정당, 언론이냐"며 불쾌감만 드러낼 뿐입니다.
과도하게 성과를 부풀리는 장밋빛 보도 일색 속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언론보도는 부산엑스포 유치 보도 사태를 떠오르게 합니다. 당시 한국은 165개국 중 29표를 받는 처참한 결과 속에 부산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데요. 유치 가능성을 희박하게 예상한 외신과 달리 국내 언론 대부분은 특집보도를 이어가며 결과 발표 직전까지 '접전', '백중세', '대역전극' 등 낙관적 전망을 내놨습니다. 국익을 위한 언론의 역할은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는 치적 홍보용 보도가 아니라 의혹 등 문제제기를 꼼꼼하게 따지고 검증하는 보도가 우선일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4년 7월 18일~9월 20일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체코 원전'으로 검색한 보도.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 채널A <뉴스A>, MBN <뉴스7>,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기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