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은 대선의 열기로 뜨겁다. 트럼프의 총격 사건부터, 해리스의 대통령 후보 선출까지 미국의 정치 상황은 한국만큼 다사다난하다. 게다가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만큼 선거 결과는 우리나라에도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미국인에게 미국사를 가르쳤던 교수'로 알려진 김봉중 교수는 최근 출간한 <미국을 안다는 착각>을 통해 우리가 표상적으로 보는 미국이 진짜 미국이 아니며, 이럴 때 일수록 미국의 실체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미국을 안다는 착각>은 미국의 뿌리부터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문화까지 이 거대한 나라의 빛과 그림자를 낱낱이 파헤친다. 저자의 말처럼 미국을 보면, 우리가 보이고 세계가 보인다. 그래서 <미국을 안다는 착각>은 미국을 통해 우리나라의 방향과 미래를 가늠하고 통찰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관련하여 지난 9월 27일 <미국을 안다는 착각>의 저자 김봉중 교수를 만났다.
- 미국 샌디에이고 시립대학에서 미국사를 가르치셨지요. '미국인에게 미국사를 가르친 한국인 교수'인 셈인데, 미국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창 시절 내내 미국이란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대학가에선 민주화의 열기와 함께 반미 정서가 팽배했는데,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미국이란 나라를 잘 알지 못하는데, 무작정 그 나라를 어떤 특정한 감정이나 편견으로 재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겼고, 그것이 미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습니다. 결국 대학 마지막 학기에 미국인 객원교수의 미국사 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분의 수업을 통역하면서 미국 유학의 기회를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사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 최근 <미국을 안다는 착각>을 출간하셨습니다. 어떤 책인지 교수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신다면요?
"이 책은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미국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크게 두 가지 면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는데요, 하나는 '우리가 잘 안다는 미국'이란 전제에 대한 확인입니다. 미국은 분명 우리의 일상과 생각 속에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운 미국이지만 그 미국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피상적으로 미국을 보기보다 미국의 속살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야 말로 미국의 뿌리를 들춰보는 것입니다. 미국의 뿌리 혹은 역사적 DNA를 이해하지 않고는 착각과 고정관념에 휩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미국은 크고, 다양하며, 복잡한 나라입니다. 미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외교, 문화, 지역 등 복잡다단한 미국의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물론 한 권의 책으로 미국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지만, 역사적 뿌리에 근거해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봅니다."
"미국의 경험은 곧 우리의 경험이 될 것"
- 교수님께서는 이 책을 출간한 이유로 '미국을 보면 우리가 보이고, 세계가 보인다'라고 하셨는데요, 이에 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글로벌화의 주축은 미국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글로벌 공동체의 일원으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우리에게 미국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문화 등 미국의 빛과 어두움은 우리가 유념해야 할 모델이자 반면교사입니다. 미국의 과거를 보는 것은 우리의 현재를 보는 것이며, 미국의 현재를 보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이런 부분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사회와 문화 등 여러 면에서도 미국의 경험은 곧 우리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예컨대, 다문화주의는 오랫동안 미국의 특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에 우리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현상이 되었죠. 동성 결혼, 마약, 여성의 권익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밖에 이 책에서 할리우드, 패스트 푸드, 미식축구와 같은 지극히 미국적인 문화를 다루기도 했지만, 그것조차도 세계화의 첨단에 서 있는 우리가 새겨볼 것들이 있습니다. 해 아래 새것은 없습니다. 급속히 세계 속의 강국으로 우뚝 솟고 있는 우리에게 미국의 자부심과 아픔은 우리에게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 이 책은 미국의 뿌리에서 출발해 현재까지 250년의 여정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현재의 최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사건을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미국 남북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의외의 선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국 문명의 큰 흐름에서 남북 전쟁은 새로운 미국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 역사는 남북 전쟁 전과 그 후로 나뉘어집니다. 건국 시작부터 미합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남과 북의 지역갈등은 노예제도라는 도덕적 문제를 포함해서 정치, 경제, 정서, 문화적 갈등이 더해져 연방의 심각한 분열을 가속화시켰습니다.
내전은 어느 나라고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모든 나라가 그 내전을 극복하고 강한 나라를 건설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근대사 최악의 동족상잔의 비극을 극복하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거듭났습니다. 결과적으로는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만약 미국이 남북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면 지금의 미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을 안다는 착각>에서 남북 전쟁이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 "한국은 미국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한국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특별한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 주신다면요?
"한미 간 150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국은 미국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1882년에 체결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미국이 방기했기에 우리는 러일전쟁 이후 나라를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한국전쟁 때에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지만, 그 이유는 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도래와 그에 따른 미국 내 갈등과 혼란 때문이었습니다. 6.25가 5년 전에 발발했거나,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에 발발했거나, 베트남 전쟁 이후에 발발했다면 과연 미국이 개입했을지 의문입니다.
현재 미국에게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우방은 일본이며, 가장 경계하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있는 동아시아 패권의 체스판에 한국은 우선순위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1945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100차례 이상의 내전이 발생했는데, 그중엔 미국이 직접 개입한 내전도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6.25였고요. 미국으로서는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인 셈이었습니다.
가장 실패한 전쟁으로 꼽히는 것은 역시 베트남 전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내전을 겪은 나라들 중에서, 경제와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내전의 아픔을 극복하고 세계 강국의 대열에 든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는 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탄탄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내전을 겪은 수많은 나라들과 그중에서 미국이 개입한 경우를 놓고 볼 때, '한강의 기적'은 세계사에서 이례적인 기적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특별한 나라로 만든 것입니다."
- 말씀하신 이유보다는 한국이 가진 지정학적인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닌가요?
"한 나라의 운명에 지정학적 요소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는가는 많은 관심사이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역시 그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한국이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지정학적 요소가 작용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지정학적 요소는 상당 부분 결과론적으로 의미부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가 좋을 때도 그렇지만 좋지 않을 때도 지정학적 이유가 붙게 됩니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내전을 겪었던 수많은 나라들 중에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들은 많습니다 내전을 겪지는 않았지만 내전에 준하는 극도의 정치적 혼란을 겪었던 국가들도 많았고, 미국의 패권을 위해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 중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여러 분야에서 세계 속의 강국으로 우뚝 솟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지정학적 결정론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요즘 이슈인 미국 대선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미국을 안다는 착각>의 초두에서 '우리가 미 대선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광범위한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큰 흔들림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부분은 외교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일까요? 다시 말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의미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미국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보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남북 전쟁이었고요.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외교 부분에서도 이런저런 위기는 많았지만 의외로 미국 외교의 원칙과 전통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고립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입니다. 냉전 시기를 빼놓고는 고립주의 정서가 대세였습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미국은 중립을 지키려고 했지만, 독일과 일본의 도발로 미국은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죠. 2001년 9.11 테러로 말미암아 미국은 탈냉전 고립주의 정서에서 이탈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일순간에 그쳤습니다.
고립주의를 정확히 정의하기란 쉽지 않지만, 미국 외교의 거울이라 할 수 있는 국내 문제와 국민의 정서를 놓고 볼 때, 미국은 지금도 고립주의 시대에 있습니다. 이런 흐름에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는가는 외교적으로 큰 변화가 따르지 않습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외교 문제는 큰 변수가 아닙니다. 지난번 해리스와 트럼프 TV 토론 이후에 언론 매체에서 각 분야에 대한 '채점표'를 내놓았는데, 외교 부분은 거의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이런 미국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입니다.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합심해서 우리의 외교적 원칙과 목표를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외교적 원칙과 목표를 세우느냐가 중요"
- 하지만 트럼프와 해리스가 정책적으로 너무 다른 것 같은데요, 이를테면 바이든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모양새였지만,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24시간 안에 담판을 지어 평화 협정을 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에 관해서도 해리스와 트럼프는 크게 차이가 있고요. 이런 부분을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국제 정세가 크게 변할 수 있다는 방증은 아닐까요?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1750억 달러(약 233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해리 트루만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마셜플랜으로 유럽에 대대적인 재건 복구 자금을 투여한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원조가 없었다면 전쟁은 이미 끝났을 것입니다. 대선 이후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트럼프의 호언장담 역시 선거용 공약이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트럼프가 마음대로 어떤 획기적인 변화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후보도 뚜렷한 정책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트럼프는 외교 시스템보다는 개인적인 능력을 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한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것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입니다. 트럼프가 재임 기간에 펼쳤던 '개인 플레이'가 긍정적인 결과보다는 부정적인 결과로 귀결된 경우가 더 많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어떤 외교적 원칙과 목표를 확고히 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한미동맹도 굳건히 유지해야 하고, 대중 무역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취할 수 있는 현명한 외교 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외교는 국가 이익을 위해서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국가 이익'과 '현명한 방법'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외교란 기본적으로 국가 간의 관계에 근거합니다. 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약속이죠. 그래서 한미동맹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 우선순위만 지켜진다면 다른 모든 것은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는 갈수록 복잡한 지구촌이 되어가고 그 지구촌에서 우리의 위치와 위상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내세웠던 미국 외교의 제1원칙을 우리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한 나라에 대한 특정한 감정이 관습화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특히, 어느 특정한 나라와 민족에 대한 습관적인 미움이나 증오는 국익을 위한 유연한 외교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안보, 경제, 문화는 가능하면 각각 구별해서 외교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의 국력은 6.25 때나 탈냉전 직후 때와는 많이 다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떤 외교적 원칙과 목표를 세웠다면 그것에 따라 관련 및 주변 국가들을 설득하며 평화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데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미국은 우리에게 든든한 이웃이면서 여러 면에서 우리의 모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웃이기도 합니다.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이지만, 그 미국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고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상적인 이해보다도 역사적 뿌리를 들춰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을 안다는 착각>을 통해 미국의 다양한 모습을 역사적 조명을 통해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서 신기루 같은 미국의 실체를 조금씩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