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O'라는 동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다닌 지가 벌써 15년이 되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원어민 교사 댄이 내게 알려 주면서 자신이 맛본 스파게티 중 최고였다고 어떻게 이곳에 살면서 자신보다 모르냐고 의아해 한다.
여기의 가장 큰 장점은 뒷맛이 개운하다는 점이다. 조미료로 맛을 덮은 겉만 번지르르한 가게들은 재료보다 인테리어에 더 신경을 써도 손님이 줄을 잇는다. 자본으로 무장한 가게들이 자영업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다 잡아 먹는 형국이다.
마르티O는 다섯 개의 테이블을 갖고도 단골손님으로 북적댔다. 그러나 무리해서 분양받은 매장의 대출금이 부담되어 더 작은 매장으로 옮기고서 사장님의 고충은 악화일로였다.
아무것도 없는 매장을 식당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들인 초기 자금을 회수도 못했는데, 배달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이것 떼고 저것 떼면 손에 쥐는 게 없단다. 결국 어쩔 도리 없이 저녁 8시에 영업이 끝나면 밤을 새워 알바를 하여 가게의 적자를 메우고 있다.
"내가 좋아하던 일을 해 왔으니 후회는 없어요. 다만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계속 더 어려워지니 억울하다는 생각만 들어요. 무한경쟁이 되니 돈 있는 사람이 우리 같은 자영업자를 다 잡아먹는 거지요. 나보고 능력 없다고 그러겠지만요."
여가 생활도 없이 오로지 가게에만 매달렸던 당신의 삶이 이런 결과를 얻으니 억울하다는 그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썰렁한 가게에 앉아 묵묵히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나만 등 따듯한 방에 앉아 외풍을 모르고 사는가' 싶어 죄송하다.
작품 '만무방(김유정)'에서 주인공 응오는 추수를 하지 않는다. 마름은 자꾸 수확을 하라고 채근한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 응오네 벼를 베어간다. 마침 나타난 형 응칠을 의심한다. 제멋대로 떠돌고 누구네 닭이라도 없어지면 응칠이 소행이니 만무방, 즉 이렇게 염치 없이 못된 사람이 따로 없다.
전과자인 응칠은 몹시 억울해하다. 아무리 자기가 막 돼먹어도 계수씨가 병상에 있는 동생의 벼를 훔치겠는가? 기어이 자신의 손으로 도둑을 잡겠다고 잠복했다가 뜻밖에 응오가 자신의 벼를 베어가는 것을 목도한다.
어둠 속에서 다투다가 응오는 말한다. 형까지 왜 그러냐고. 어차피 공들여 추수해봐야 지주에게 주고 나면 빚밖에 없다고. 누가 만무방이 되고 싶어 되느냐고, 도리어 당신네가 만무방이 아니냐고 묻는 소설이다.
지금은 일제강점기도 아니고 농사를 짓는 시대도 아닌데, 사장님을 끝 간 곳까지 밀어붙이는 자본주의 앞에 무력해진다.
"그런데 너무 배고프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에서 온조와 비류 자매가 도둑고양이를 보고 하는 말이다. 자영업자들은 지금 너무 배가 고프다. 도둑이 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시대다 AI시대다 아무리 청사진을 보여도 입술 같은 자영업자들을 사지로 내몰면 이가 시리게 되는 일은 자명하다(순망치한). 정치는 스스로가 만무방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