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말하기 대회 '분노의 불길'이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6주째 이어지고 있다.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가 주관하고 72개 시민사회단체 및 대학 내 단체와 200여 명의 개인 참여자들로 구성된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은 10월 4일 오후 7시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말하기 대회 '분노의 불길'을 열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텔레그램이 전부가 아니다"
정영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아래 서페대연) 대표는 이 날 여는 발언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 사이트들의 현실이 우후죽순 보도되면서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사이트, 실제라는 감각이 들지 않는 가입자 수, 영상 수 등을 들으며, 우리의 일상이 불안으로, 분노로 채워지고 있다"면서 "가해자들의 범죄는 파도 파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국회는, 정부는,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 대표는 이어 "최근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법적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은 통과되었지만, 실제 삭제 지원 인력은 2명 증원한 데 그치기도 했다"면서 "시민들의 국민들의 성화에 못 이겨 벼락치기로 법안을 만들 것이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날 발언에서 모든 발언자가 공통으로 언급한 기사가 있다. 지난 3일 <프레시안>의 단독 보도다. 해당 매체는 "불법 촬영 영상을 공유하고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연구하는' 불법 음란물 사이트의 월 이용자 수가 5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최근 성착취 범죄의 온상으로 지적되고 있는 텔레그램 성착취방 이용자 수의 130배로, 국내 최대 불법 음란물 사이트였던 성착취 사이트 '소라넷'에 비견될 만한 규모"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사이트) 운영진은 처벌을 피하고 이용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취하고 있"었는데, "금전거래로 추적당하지 않도록 가상화폐를 이용하며, 실상은 성착취물 대다수를 방치하면서도 공지사항에는 딥페이크·지인능욕, 아동성착취물 등을 금지한다고 적어 문제의 책임을 이용자에게 돌"리고 있었다.
이에 김정은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성평등위원장은 "이용자들은 피해자의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성적인 모욕을 가하며 피해자의 신상을 유추할 만한 단서를 유포해서 피해자 SNS에 찾아 가게 만든다. 게시물을 올리거나 유료결제 등을 하며 포인트와 경험치를 얻으면 더 다양한 성착취물을 소비할 수 있다"며 이용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하게 만드는 플랫폼의 현 구조를 비판했다.
정의당 서울시당 안숙현 사무처장 역시 "지난 2016년 소라넷 폐쇄 후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제N의 소라넷'이 계속 생성되고 있는 만큼 디지털 성범죄 대응을 위한 수사기관의 수사 기법 강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늘 가해자가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주는 국회
이어 안숙현 사무처장은 "정치권과 언론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법을 바꾸거나 제정했지만 가해자를 동정하고, 피해범위를 축소하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었다"며 규탄을 이어갔다.
그는 "2020년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 제정 당시 딥페이크를 성범죄물로 규정하고도 '유포 목적이 입증된 제작행위'만 처벌하도록 사각지대를 만들면서 성범죄를 방치할 결과를 낳았다. 여성들이 거리로 나가 투쟁을 통해 소라넷을 폐쇄시키고 N번방 방지법도 만들었지만 강력한 방지책, 사각지대 없는 처벌을 규정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이 허점을 이용해 진화하는 범죄를 양산해왔다"며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20대 여성으로서 발언에 참여한 이다경씨 역시 최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소위 '딥페이크 방지법'에서 플랫폼에 책임을 부과하겠다는 항목을 플랫폼 운영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삭제한 점을 언급하며 늘 가해자 입장에 대한 숙고가 먼저인 국가를 비판했다.
그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성착취 피해를 양산한 '웰컴투비디오'의 손정우가 아동성착취의 판을 깔았을 뿐 직접 영상을 제작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징역 1년 6개월에 그친 선고를 받았던 사례를 언급하며, "국가는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다. 텔레그램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소라넷, 텔레그램 N번방, 웰컴투비디오, 야동코리아, 놀X, 이 다음에 올 또 다른 대규모 성착취를 막아내기 위해 국가는 플랫폼의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날 현장 발언을 신청한 김서정 웹소설 작가는 플랫폼에 게시물 검열 및 규제 권한을 일임하고 있는 상황을 꼬집으며, "선출직이 아닌 민간 플랫폼 의사결정자에게 심의 권한을 준다는 것은 결정권자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 말하며 플랫폼 검수에의 공적 개입의 필요성을 덧붙였다.
가해자 처벌은 끝이 아닌 시작, 성차별 구조를 바꿔라
또한 발언자들은 계속해서 가해자 처벌에만 집중하고 구조를 보지 못하는 국가의 모습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를 제대로 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점점 무력해지는 여성들의 모습을 언급하며 이다경씨는 "N번방은 조주빈과 일부 가해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결국은 여성의 성이 대상화되어 판매되고 유통되는 성차별 사회의 책임이다. 그런데 국가는 계속해서 나쁜 가해자 일부의 책임인 양, 그들을 엄벌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한다. 성평등 예산을 줄이고, 성차별 사회를 그대로 두면서 가해자들만 처벌하면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사라지냐"고 반문했다.
10대 남아와 여아를 양육 중인 40대 여성 함송화씨 역시 "범죄가 발생하는 구조와 배경에 대한 해결 없이 피해자 지원만 해서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범죄 수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고, 교육 당국은 '피해자를 단속하는 교육'이 아닌 '가해자가 되지 않는 교육'을 주도해야 한다"며 현 딥페이크 사태에 대해 학부모로서의 참담함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은 '공동행동'이란 이름의 시민의 횃불을 모아 "삭제 인력 고작 두 명 증원", "규제 의지 없는 경찰", "무책임한 교육당국", "성차별 사회구조"를 불태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참가자들은 집회 중간 중간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다 함께 부르고 아래 구호를 외치며 10월 초 금요일 밤을 물들였다.
"딥페이크 성범죄 대책마련 한다더니 고작 삭제 인력 두 명 늘린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불법촬영물 규제 의지 없는 경찰 규탄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성차별 사회구조 지금 당장 바꿔라!"
"교육 당국은 딥페이크 성범죄 심각성 인지하고 제대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
공동행동은 다음 주 금요일, 10월 11일에도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말하기 대회를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