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지방소멸의 위기 한가운데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50%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지방소멸하면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단어인 세대간 불균형, 청년세대 유출, 출산율 감소, 전입인구 감소 등 함양군은 그 무엇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더 청년세대가 중요하다. 청년세대는 지역의 활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청년세대가 지역에서 재밌게 지내는 것은 청년인구 유출을 막고 청년세대 유입을 증가시킨다. 출산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년들은 함양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함양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함양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함양 청년을 만나본다.[기자말] |
"처음엔 그저 공부를 안 할 방법을 찾다가 축구를 시작했죠. 하지만 그 선택이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놨어요."
27살 정진영씨는 축구와 함께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결국 축구와 작별을 고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은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 현재 정씨는 함양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축구 선수로서의 과거, 인생의 새로운 전환, 그리고 지역에서의 삶을 중심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축구와의 첫 만남
정진영씨가 축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함양읍에 위치한 위성초등학교 5학년 재학시절이었다. 정진영씨는 함양에서 제일 빠른 육상부 선수였다. 운동신경이 좋던 그에게 그의 큰아버지는 축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정진영씨에게 축구는 특별한 꿈이나 목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공부를 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축구를 시작했어요. 공부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축구 선수 출신이었던 그의 큰아버지의 제안 덕분에 축구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지만, 당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분야였다.
정진영씨는 "그래서 거제도 장승포초등학교 축구부에서 후보로 시작했어요. 실력도 부족했고 축구에 대한 열정도 없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씨는 축구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특히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그는 축구에 대한 진지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중학교 때 경기도 수원으로 전학을 갔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축구에 빠졌어요. 초등학교 때는 축구장이 작았는데, 중학교에 가면서 더 큰 운동장에서 뛰게 되니까 축구가 진짜 재밌어졌어요."
하지만 축구부 생활은 외로움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타지 생활을 하며 기숙사에 머물던 그는 고향을 그리워했고, 가족과 친구들의 부재 속에서 주말마다 홀로 남겨지곤 했다.
"주말에는 기숙사를 나가야 했거든요. 그러면 집에 갈 수 없으니까 매번 후배, 형, 친구집에 얹혀 살면서 매주 눈칫밥을 먹어야만 했어요. 어린 나이에 그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어요."
축구와의 결별
정진영씨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축구 국가대표가 꿈이었다. 고등학생들과의 경기에서도 활약하며, 여러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그는 축구에 대한 현실을 깨닫게 됐다.
"고등학교에 가니, 내가 더 이상 빠르기만 해서 이기는 게 아니더라고요. 나보다 더 빠르고, 더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속도와 체력으로 버텼던 정씨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로 인해 그는 포지션을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바꾸게 됐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향했는데, 그게 너무 재미없었어요.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었죠."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는 축구를 그만두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축구를 아예 그만두게 됐다. 정진영씨는 자신이 꿈꾸던 축구 선수가 되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미련은 없어요. 축구가 내게 많은 걸 가르쳐줬지만, 그건 내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이었어요."
새로운 시작과 함양에서의 삶
축구를 그만둔 후, 정진영 씨는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으려 했다. 여러 분야에서 일했지만 만족하지 못한 그는 결국 함양으로 돌아와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게 됐다. 그가 선택한 직업은 바로 환경미화원. 젊은 나이에 환경미화원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처음엔 가족들도 반대했어요. 젊은 사람이 왜 쓰레기를 치우냐고 하더라고요. 특히 환경미화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안 좋다 보니 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정씨는 이 일에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 벌써 5년차다. 함양환경 회사에서 현재 과장으로 현장직과 운전직을 겸하고 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남들은 쉽게 하지 않는 일, 다들 꺼리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오히려 저한테는 자부심으로 다가왔죠. 특히 지역사회가 소멸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사회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함양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20대는 드물었다. 대부분 40대 이상의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이었고, 정 씨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유일한 20대였다.
"지금은 20대 동생들이 더 생기면서 3명이 더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지역사회에서는 경력이나 직급보다는 나이가 우선이 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젊은 청년들이 이 사회 여러 업종에 무사히 뿌리내리는 게 중요하다. 정진영씨도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불합리한 상황은 바로 개선하며 건강한 사내 문화를 만들고 있다.
"힘든 결정한 동생들이 어리다고 무시받는 상황, 저는 못 견뎌요."
환경미화원으로서 정씨는 함양군 전역을 돌며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한다.
"운전하면서 함양 곳곳을 다니는 게 재미있어요. 마천까지, 함양에서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정씨는 쓰레기 수거 업무 외에도 지역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 불법 투기에 대해 그는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함양군은 쓰레기 수거 시스템이 정말 잘 갖춰져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불법 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100원, 200원 아끼려고 불법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걸 보면 안타깝죠. 다른 사람은 정직하게 버리는데 그냥 봉투에 담아서 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심지어 늘어나는 추세예요."
그는 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버리는지 알 수 있으면 저희가 가서 말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누가 버리는지 몰라요. 저희야 그냥 수거하면 되는 거지만 이렇게 비양심적인 상황이 만연해지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일은 사소하더라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지켜가야 하는 일이에요."
지역사회를 잇는 청년축구팀 '누구나FC'
정씨는 환경미화원으로서의 역할 외에도,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스포츠인 축구를 통해 지역사회와의 연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3년 전, 함양에서 20대 청년 축구팀 '누구나FC'라는 조기축구팀을 결성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을 차고 싶었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팀을 만들었어요."
'누구나FC'는 처음에는 10명 정도의 소규모 모임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합류했다. 지금은 50명 가까운 회원이 함께 축구를 즐기고 있다.
"축구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에요. 특히 함양 같은 작은 지역에서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죠. 축구를 통해 지역 사람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어요."
그는 팀의 회장으로서 축구뿐만 아니라 팀원들 간의 친목과 협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축구는 물론이고, 서로의 경조사도 챙기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지역에서 그런 소통의 장을 만드는 게 제게는 큰 의미입니다."
정씨는 축구를 통해 다시 한번 자신만의 역할을 찾았다. 비록 축구선수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역사회에서 축구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당당하다.
"축구는 내 첫 번째 길이었고,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 (최학수PD)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