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국회 사무총장 비서로 일했다. 언론 인터뷰도 자주했고 나의 생각과 주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칼럼을 쓰기도 했다. 나는 대학교 시절부터 여러 진보정당들의 정책도 지지했다. 나는 다양한 정당이 의석을 갖고 원내에 진입해서 다양한 정책으로 의회에서 경쟁하는 것이 유권자들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정당이 의석을 골고루 확보하는 것이 더 나은 민주주의 토론과 그런 정치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북한과 달라야만 하는 점이 있다면 바로 다양성을 보장하는 다원주의인 민주주의 체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의회 정치의 발전은 향후 통일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북한 주민들이 주체성을 갖고 한국식 제도 속에서 목소리를 내고 정치력을 확보하려면 다당제가 되는 것이 선결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탈북했으면서 어떻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진보정당을 지지하니 어느 순간부터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탈북했으면서 어떻게 민주당을 지지하냐며, 북한을 추종한다고, 심지어 나를 간첩이 아니냐며 "북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모두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런 비난을 한다. 심지어 같은 탈북 출신들도 나를 '좌파'로, 때론 '종북'으로 지목하고 "그럴 거면 왜 탈북했느냐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대응할 가치가 없는 비난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일 또한 엄연하게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한 모습이기에 나는 가급적 토론에 응답해 주고자 한다.
한국 사회는 생각보다 '다름'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건 분단 체제가 만들어 낸 제2의 본성이다. 즉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며, 타인에 대해 검열하고 딱지를 붙이고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까지도 검열하며 상처를 내는 분단의 파편이다. 이를 학문 용어로는 '분단의 아비투스(habitus)'라고 한다.
문제는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한국 사회 주류 보수의 관점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탈북한 사람들에게 어떤 이유든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들이고, 일자리 소개나 현실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도 이들이다. 물론 가시적 현상만을 놓고 보면 더욱 뚜렷하다.
'소수자'일수록 대표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탈북 출신 국회의원이 총 4명이 나왔다. 모두 보수 정당에서 공천을 줬다. 조명철 전 의원은 차관급인 이북5도청 평안남도지사로, 지성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함경북도지사로 임명됐다. 태영호 전 의원은 역시 차관급인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으로 임명됐고, 현재 22대 국회에는 국민의힘에 탈북 출신 박충권 의원이 의정 활동을 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북향민의 한국 사회 입국 현황을 보면 3만 4천 명이 조금 넘는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후 결혼하거나 2세가 태어난 숫자까지 고려하면 '탈북' 정체성을 공유하는 인구는 더 많다. 북향민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 집단임을 감안할 때, 현재까지 네 명의 국회의원이 등장하고, 고위직 정치인으로 임명된 것은 이들의 업무와 정책 등 역량과는 별개로 대표성 하나만으로도 의미 있는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탈북 출신 정치인의 존재 자체가 주는 정치적 통합의 메시지가 크다. 북한 당국과 관료들에게는 탈남에 대한 유인을 주게 되며, 북한 주민들에게도 한국 사회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와 탈북 이후 신분 상승에 대한 기대를 줄 수 있다. 한국 사회에도 사회통합의 메시지를 충분히 주며 다양성을 포용하고 사회 통합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특정 정당에서만 정치적 계산에 따라 '시혜적'으로 공천을 준 것이라는 비판과 한계는 있다. 하지만 북향민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효과는 충분히 거두었다. 북향민들의 반응도 이와 일치한다. 결국 "우리에게 대표성을 준 정당이 보수당이 아니냐"는 대답이다.
현재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정당의 한계이자 실패는 여기에 있다. 보수 정당에서 북향민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들에게 필요한 건 정작 '정치적 대표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을 지지해 왔던 나도 아쉬움이 크다. '탈북'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진보와 보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북향민 대부분이 보수 정당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북향민들이 북한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대북 정책에서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들을 계속 불러주는 집단이 보수 정당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보수 정당의 북향민 호명(呼名)은 정치적 타산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 정당은 북향민을 정치적으로 앞세워 대북 강경 정책의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는 결국 이데올로기 체제 대결에서 자신들이 승자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작동된다. 북향민들 또한 보수 정당의 이런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익이 크다는 판단을 한다. 진보의 무관심 속에서 보수와 손을 잡는 것이 북향민들에게는 한국 사회에서 안전하게 정착하는 길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되어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처럼 진보 정당이나 민주당 정책과 후보를 지지하면 현실적 손해는 물론 인격적 비난까지 받게 되는 형국이다. 그래서 북향민들은 차라리 정치적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진보 정당을 지지하더라도 투표장에서 자신의 표를 행사할 뿐 일상에서 정치적 표현은 하지 않는다. 현재 북향민들 중에 보수당을 지지하는 목소리 이외에 공개적인 다른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게 북향민들의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기울어진 이념적 지형과 분단 이데올로기의 폭력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북향민들은 여기에 철저히 희생되고 이용당하는 존재들이다. 분단 체제의 폭력성은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피스아고라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