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여행을 떠날까?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지친 몸을 휴식하기 위해서?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너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기 위해서'이다.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흘렀던 중국 동북 3성을 돌아보았다. 2천 킬로미터를 돌아보면서, 몸은 힘들었지만 그 어떤 여행보다 값진 경험을 했다. 나를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 동북 3성 답사 여행을 떠나는 일행 7명이 인천공항 출국장에 모인 날은 10월 10일 오전 8시. 전북 장수와 전주, 여수에서 새벽에 이동했기 때문에 피곤할 것 같지만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여행이 주는 기쁨으로 약간 들떠 있기 때문이다.
일행을 안내하는 리더는 고조선유적답사단 안동립 단장이다. 동아지도 대표이기도 한 안동립 단장은 우리 조상의 뿌리를 찾아서 중국과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20여년 동안 고조선유적답사단을 리드한 실적이 올해로 47회에 이른다.
'조선족' 아닌 '중국동포'로
일행이 중국을 향해 떠난 시기는 여행하기 좋은 날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남북통일이 됐더라면 한 시간도 안 걸릴 거리인데 서해를 거쳐 중국 동북 지방을 돌아 연길 공항까지 가는데 2시간여가 걸렸다.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기 전 승무원들로부터 안내방송이 나왔다.
"군사 공항을 민간 여행기가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창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항 통과도 까다롭다. 한국인은 여행 일정표를 제출해야 한다. 아마도 남북 관계를 의식한 것 같아 씁쓸하다.
그래도 반가운 게 있었다. 통관절차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延吉 연길'이라는 공항 표지판이 보였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를 다녀 봤지만 한글 간판이 버젓이 서있는 곳은 연길 공항뿐이다. 비록 한문 글자 다음에 나오는 한글이지만 반가웠다.
가이드는 역사를 전공한 조선족이어서인지 우리 역사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대화 중 안동립 대표가 '조선족'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중국동포가 맞지 않냐는 말이다.
"미국에 사는 동포는 재미교포, 일본에 사는 교포는 재일교포라고 부르는데 중국에 사는 동포만 중국인들이 부르는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건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제 생각이기도 하고, 일전에 어떤 중국 동포가 이의를 제기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일리 있는 얘기다. 중국에는 한족 포함 55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55개 소수민족 중 신강, 내몽골, 조선족, 서장(티벳)에 사는 소수민족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소위 '조선족'은 240만명으로 동북 3성에 180만명이 살고 연변에는 90만명이 산다.
점심을 먹기 위해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식당은 '열군속(렬군속)'이라는 간판을 단 냉면집이다. 가이드의 설명이다.
"'열군속(烈軍屬)'은 '열사의 가족이 만드는 음식점'이라는 뜻으로 조상이 독립운동을 했던 식당이라는 뜻입니다. 연변 음식점 중에 왼쪽 한문 글씨가 크고 옆에 쓴 한글 글씨가 작은 식당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입니다. 반면에 한글이 크고 한문 글씨가 작은 간판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보면 됩니다"
푸짐하게 차려진 냉면을 먹은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백초구령에 있는 고성촌과 려성촌. 이곳은 고려 예종 때 윤관 장군이 17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여진족을 물리친 후 9성을 쌓아 공험진 이남을 조선의 경계로 세운 비가 있다는 곳이다.
윤관이 9성을 쌓았다는 학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고려사 등에서는 9성의 위치를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에서부터 두만강 유역 일대까지로 비정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일부 학자나 일본인 학자들은 9성의 위치를 길주 이남 함흥평야 일대로 국한했다.
이상태 교수의 논문과 옛 고지도를 보면 9성 위치를 두만강 이북으로 그려놓았고 현재 연길시 왕청현 부근 백초구령 부근의 고려촌(고성촌, 려성촌)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행은 고성촌 고려마을에 들러 옛 촌로들로부터 전해오는 9성의 위치에 대해 청취했다.
"만성천 개발지구에서 토성과 비석 등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이곳을 고려촌이라고 부릅니다. 만주족들은 유목민들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옥수수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고려인들은 물을 다스릴 줄 알아 벼농사를 지었습니다. 길을 가다 도로변 가옥 중에 팔작지붕을 하고 벼농사를 짓고 있는 곳에는 중국 동포들이 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중국동포들은 '연변'이라고 부르는 데 정작 한국에서는 '옌지'라고 부르는 게 기분이 상한다"는 그들. 그들은 중국에 사는 55개 소수민족 중 중국동포가 가장 잘 살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도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부부가 사과를 꺼내오며 집안 살림살이 현장을 구경시켜 줬다. 방에 들어가니 아예 부엌이 방 안에 설치되어 있었다. 겨울이면 너무나 춥기 때문에, 거기서 밥도 지을 뿐만 아니라 난방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동포들은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발전된 한국의 영향을 받아 잘 살고 있어요.
특히 뛰어난 교육열, 깨끗한 환경, 노인 공경 사상이 우수한 전통이죠.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7년간 살다 왔어요. 솔직히 말해서 중국 동북 3성 동포들은 잘살고 있는 한국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어요"
사돈(査頓)의 유래
윤관의 9성 개척사를 조사하다가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사돈(査頓)'이라는 말은 고려 예종 때 여진을 물리친 도원수 윤관과 부원수 오연총 장군 사이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사돈'이라는 한자 뜻은 '나무등걸에서 머리를 조아리다'라는 뜻으로, 혼인한 두 집안 부모들 사이 또는 그 집안의 같은 항렬이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편을 일컫는 말이다.
"평생을 전우로 지낸 돈독한 사이인 두 장군은 여진 정벌 후에도 자녀를 결혼시켰다. 둘은 개천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살았기에 자주 만나 술로 회포 푸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어느 봄날 술이 잘 익은 것을 본 윤관은 오연총 생각이 나서 하인에게 술동이를 지게하고 오연총 집으로 향했다.
개울을 건너려는 데 저편에 오연총이 서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간밤 소나기로 개울물이 불어 건너갈 수가 없었다. 이에 윤관이 말하기를 '서로가 가져온 술을 상대가 가져온 술이라고 생각하고 마시세!'라고 했다.
둘은 서로 산사나무(査) 등걸에 걸터앉아 서로 머리를 숙이며(頓) '한 잔 하시오' 하면서 저쪽에서 한 잔하고 ,또 저쪽에서 '한 잔 하시오'하면 이쪽에서 한 잔 하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후 서로 자녀를 결혼시킬 때 '우리도 사돈(서로 나무등걸에 걸터앉아 머리를 조아린다)을 해볼까?' 했던 데에서 '사돈'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한복가게가 많은 '조선족 민속원'
북위 43도까지 올라와서 인지 해가 일찍 져 주변이 캄캄해진 밤. 일행이 들른 곳은 '조선족민속원'이다. 중국 조선족민속원은 연길시 소영진 리화촌에 위치해 있다.
총 투자액은 2.5억원이고 토지 면적은 9.4h㎡이며 건축면적은 6145㎡이다. 총 40채의 조선 민족 특색의 건축물로 구성되었고 그 중에는 9채의 백년 고택이 있다.
중국조선족민속원은 중국조선족 민속문화를 핵심으로 중국조선족의 풍부하고 유구한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또한 대중 유람객을 위한 문화체험, 오락, 휴가 등 다양한 놀이시설도 구비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한복대여점이 100여개 이상이나 된다. 어쩌면 세계 최대의 한복대여점이 있는 곳이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한국과 한국 음식을 체험하고 싶은 상하이, 광저우, 항저우 출신 젊은이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10월 1일부터 10월 7일까지 중국국경절 연휴에는 93만명이 방문해 사람들이 떠밀려 다녔다고 하니 조선족민속원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