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 가지치기 논란이 해마다 끊이지 않는다. 지난 4월 강원도 원주시에서도 '완충녹지 수목 정비사업'이 단구·무실동, 흥업면 등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원주시의 정비가 "과도하다"며 수목 고사(枯死)를 우려했지만, 원주시는 "당연한 조치"라며 정비를 강행했다.
수개월이 지난 최근 과도하게 잘려나간 잣나무 십여 그루가 고사하고, 나머지 수십여 그루에서 고사가 진행 중이다.
나무 자랄 공간 필요해 '싹둑'
원주시는 지난 4월 단구·무실동, 흥업면 등에서 완충녹지 수목 정비작업을 했다. 시청로 남송사거리~귀론사거리 스트로브잣나무(아래 잣나무) 207그루를 비롯해 법조 사거리, 단구동 등 완충녹지의 잣나무 500그루 이상이 전지되거나 제거됐다. 빼곡이 식재된 잣나무를 정비해 생장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당시 수목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수목의 생장 지대와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반 가로수 수준의 획일적 정비로, 과도한 전지가 향후 수목에 고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원주투데이>도 지난 5월 보도를 통해 이를 지적했는데 당시 원주시는 "일부 구간이 과하게 전지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일반적인 가지치기라 문제는 없다"고 했다(관련 기사 :
녹지대 가로수까지 무참하게 '싹둑').
성장은커녕 수십 그루 '고사중'
지난 16일 단구·관설동 일대(1690번지·1664번지) 완충녹지에서는 고사 중인 잣나무 수십여 그루가 발견됐다.
전문가에 따르면 전정 작업이 이뤄진 일대 잣나무 중 해당 구간에서만 총 11그루가 고사했고 34그루는 고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사에 직면하자 수액주사를 투입한 나무도 24그루에 달했다. 지난 4월 원주시는 이 일대 잣나무 431그루의 가지를 전지하고 63그루를 밑동만 남긴 채 제거했다. 최근 고사했거나 고사가 진행 중인 수목은 당시 강전지(강한 가지치기)가 일어나 전문가들이 고사를 우려했던 나무들이다.
이승현 생태학교 지구공동의 집 대표는 "여러 전문가들의 모니터링 결과, 일대 잣나무 고사는 일반적인 병해충이나 기온 등 외부 요인이 아닌 과도한 가지치기가 원인"이라며 "가지를 과도하게 잘라낼 경우 나무가 잎을 통해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가지를 통해 나무에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않아 고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시 과도한 가지치기로 인한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 했지만 어떤 의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나무의 생장공간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멀쩡한 나무들만 죽인 꼴"이라고 했다. 이어 "죽어가는 수목들이 원주시의 수목 관리에 대한 행정 오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수목 정비' 개념부터 바꿔야
학계 및 지역 환경계에서는 원주시의 수목 정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수목 정비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조우 상지대 교수는 "잘못된 정비로 인해 수목의 훼손과 손실을 여러 차례 경험한 큰 도시들에서는 원주와 같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며 "최근 원주시가 보여주는 정비작업은 뚜렷한 기준없이 마치 강박에 사로잡혀 습관처럼 잘라내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가지치기는 수목에 대한 공무원들의 의식 수준이 전문화되고 향상돼야 해결될 일"이라고 덧붙였다.
매년 과도한 가지치기 논란이 반복되며 원주시는 '원주시 도시숲등의 조성 및 관리 조례', '원주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조례' 등을 제정했다. 조례에는 도시공원위원회를 설치, 수목 등 공원녹지 관련 사업의 자문 및 심의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도시공원위원회 소집은 연간 약 2회에 그친다. 이 또한 전문 자문이 아닌 기본 법령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고 있다.
조우 교수는 "원주시는 수목 정비 등 사업계획이 수립되면 도시공원위원회 전문가 자문을 통해 정비 범위 등을 사전에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러면 공무원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도시숲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시숲법)' 개정안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가로수 제거·가지치기 등의 계획을 매년 수립하고, 전문가 의견을 들어야 한다. 또 주민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가로수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저작권자 ©원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