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람이 한 일이라니 믿어지지 않네요."
드러난 유해와 유품에 수십 년 만에 가을 햇살이 스몄다. 현장을 지켜보던 유가족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끔직한 구덩이 속 모습에 대부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구덩이에 유해가 꽉 차 있다. 머리뼈와 다리뼈가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구덩이 경사면 위쪽에 수십 개 탄피가 몰려있다. 구덩이 안에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밀어 넣거나, 던져 놓고 위쪽에서 구덩이를 향해 사냥하듯 총을 쏜 흔적이다.
진실화해위원회와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대전 골령골 2 학살지에서 지난 7일부터 개토제를 시작으로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25일까지 드러난 유해는 20여 구에 이른다. 확인된 구덩이와 유해는 10m 정도다. 나머지 30미터는 농사를 짓거나 개발 과정에서 훼손돼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뼈와 뼈 사이 곳곳에 고무신, 구두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여성용 고무신도 있다. 칫솔, 허리띠, 버클 등 개인 소지품도 보인다. 살해된 사람들이 민간인 신분임을 말해준다.
이승만 정부는 1950년 6.25 전쟁이 시작되자 6월 말부터 7월 중순에 걸쳐 대전충청지역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정치범 등 수천 명을 이곳 골령골에 끌고 와 집단학살했다. 학살은 정부와 국군‧경찰에 의해 계획적이며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유품으로 볼 때 이번에 발굴된 희생자들은 국민보도연맹원으로 추정된다.
국민보도연맹은 과거 좌익에 몸 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다.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과거를 묻지 않고 정부가 나서 보호한다며 가입을 권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과 공무원들은 할당된 숫자를 채우고 실적을 올리려고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들까지 무리하게 가입시켰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보도연맹원들을 잡아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드러난 유해와 유품은 끔찍한 학살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해 발굴을 하는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는 " 당시 물이 흐르던 계곡을 이용해 구덩이를 파고 사람들을 몰아넣은 후 총을 쏴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며 "발굴된 유해와 유품만으로도 현장이 너무 끔찍하다"고 말했다.
골령골에서 희생된 사람만 제주 4.3, 여수·순천 사건 관련자 등을 포함해 최소 4000명에서 최대 7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2007년 발굴을 시작해 지난 2023년까지 1441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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