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중 작가(1960년생)가 매년 열리는 이집트 국제미술제인 '영원은 지금(Forever Is Now)' 전에 특별전에 초대받아 참가했다. 4000년이 넘은 서양미술의 발원지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피라미드에서 전시라 특별하다.
이번 전시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문명'이 주제다. 강익중은 '피라미드'의 과거와 미래세상 꿈을 잇는 '네 개의 신전(Four Temples)'를 형상화해 선보였다.
강 작가는 언어를 중요한 매체로 작업하는 작가다. 이번에도 과거와 미래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관점에서 한글만 아니라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도 도입했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는 것은 결국은 현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작가는 여기에 그에게 뺄 수 없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 공존이라는 주제도 추가했다.
강익중이 즐겨 쓰는 한글은 입의 발음 모양을 따 자음을 만들고, 우주의 원리인 천지인으로 만든 모음이 결합된 언어다. 그래서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라 불린다. 자음과 모음이 합쳐진 언어에서 동양철학의 근간이 되는 음양의 조화를 엿볼 수 있다. 이런 한글로 만든 조형예술이 이집트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1984년부터 40년간 강익중은 뉴욕에서 활동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설치미술가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초인이나 된 듯 왕성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지난 7월 고향 청주에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 9월엔 뉴욕한국문화원 신청사에 가로 8m, 높이 22m의 거대한 한글벽화를 백남준의 다다익선처럼 세웠다. 이번 10월에 들어서도 이집트 피라미드 특별전까지 그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올해가 4회가 되는 이번 특별전 제목은 '영원은 지금(Forever is Now)'이다. 2024년 11월 16일까지 열린다. 이집트의 대표적 미술전시다. 이집트 문화부, 관광유물부, 외무부도 참여했고 UNESCO의 후원했고, 이집트의 문화예술기획사인 '이집트 예술'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르데집트(Art D'Égypte/Art of Egypt)'가 주관했다.
'아르데집트'는 '나딘 압델 가파르'가 설립한 이집트의 예술 문화 기획사다. 다양한 창작 예술에서 민간 및 공공기관과 협력하며, 이집트 문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집트 문화예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청중을 위한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2017년엔, 이집트 박물관에서 '영원한 빛(Eternal Light)'을, 2018년엔, 마니엘 궁전에서 '사라지는 건 없고 단지 변형일 뿐(Nothing Vanished, Everything Transformed)'을 그리고 2019년엔, 세계문화유산인 카이로의 알-무이즈 거리에서 '다시 상상된 서사(Reimagined Narratives)' 등의 전시를 열어왔다.
오프닝 행사는 2024년 10월 24일 오후 1시부터 열렸다. 여기에는 카이로의 '아인샴스(Ain Shams/태양의 눈)'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 30명이 참여해 '현대로템과 함께 하는 아리랑 배우기(Learn Arirang with Hyundai Rotem)' 등을 워크숍으로 작업했다.
강익중 작가는 1년 전 2023년에 이미 '아인샴스' 대학에서 이집트 학생들이 직접 한글로 적어보는 '내가 아는 것'을 쓰는 프로젝트를 펼쳤다. 당시 이집트 방문에서 영감을 받아, 이번 작품을 착안했다. 이집트 신전 건축형식에서 온 것이다.
신전 작품 외벽에는 앞에서 언급했듯 한글,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 4개국어로 '아리랑'이 새겨져 있다. 이 작품의 내벽에는 전 세계 어린이를 비롯해 여러 나라 사람들이 그린 5016개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과 이집트 여러 문화기관과 대학교가 협력했다. 특히 어린이의 순수한 꿈과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난민들의 고통도 담았다.
예술은 해독제
이번 행사에는 특별 코너가 많다. KBS '정용실'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이곳 학생들이 '아리랑' 가사를 배우고, 이 작품 제작에 함께 하기 위해 제출했다. 또 자신들이 직접 그린 소묘 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의 꿈을 한국어로 얘기하는, 행사도 열렸다.
여기에도 한국 전쟁 실향민의 그림이 들어갔다. 이 작품은 전 세계 아픔을 간직한 사람의 꿈, 도전을 대신한다. 그림 하나의 크기는 가로 20cm×세로 20cm다. PVC 소재로 단단하고 외부 충격에 강한 '포맥스' 판에 인쇄됐고, 철제 구조로 되어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이 지구인 마음을 치유하고 세계를 화해시키고 해독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말에서 작가는 다양한 시민이 참여해 예술을 통해 전 세계가 시공간을 넘어 하나로 이어지기를 바랐고, 또한 관객도 마치 고고학자가 된 듯 작은 유물 속에 숨겨진 인류의 발자취를 창의적으로 찾아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강익중은 관객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관객이 작품 안에 들어와 바닥의 모래를 파내면 전시 작품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북마크를 찾아낼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가 기획했다. 그리고, YS Kim 재단(YS Kim Foundation), 피터 매그논 재단(The Peter Magnone Foundation), 리 인터내셔널(Lee International), 마가렛 리(Margarette Lee), 현대로템(Hyundai Rotem)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작품을 제작 및 진행했다.
이 전시에는 강익중 외에도 크리스 레빈(Chris Levine, 영국), 페데리카 디 카를로(Federica Di Carlo, 이탈리아), 제이크 마이클 싱어(Jake Michael Singer, 남아프리카 공화국), 장 보고시안(Jean Boghossian, 벨기에/레바논), 장-마리 아프리우(Jean-Marie Appriou, 프랑스), 칼리드 자키(Khaled Zaki, 이집트)가 참가했다.
또 루카 보피(Luca Boffi, 이탈리아), 마리 후리(Marie Khouri, 캐나다/레바논), 샤일로 시브 술맨(Shilo Shiv Suleman, 인도), 나씨아 잉글레시스스튜디오 INI (Nassia Inglessis, 그리스), 자비에르 마스카로(Xavier Mascaro, 스페인/라틴 아메리카) 등 총 12명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독특한 설치작품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