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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뛰노는 16살 노령견 바둑이(중간 갈색 강아지). 눈이 불편하지만, 늘 멀리 가지 않고 잔디에서 뛰놀며 자율배식(?)을 만끽하던 시간.
마당에서 뛰노는 16살 노령견 바둑이(중간 갈색 강아지).눈이 불편하지만, 늘 멀리 가지 않고 잔디에서 뛰놀며 자율배식(?)을 만끽하던 시간. ⓒ 김관식

처가에는 16살된 노령견 한 마리가 있습니다. 갈색의 긴 털과 윤기가 제법 오묘한 조화를 이뤄, 가끔씩 저를 빤히 쳐다볼 때면 귀여워서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제 아내와 저는, 이 강아지를 '바둑이'라 부릅니다. 너무 교과서적이죠.

반면, 장모님은 "방실아~ 이거 먹어봐라" 하시고, 큰처형은 "복실이, 잘 지냈니?" 하고 부르죠. 이름은 모두 달리 불러도 대화는 이어지니 이름값이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베트남에서 처남이 귀국했습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기 위함인데요, 처남이 마침 장모님 댁에 들렀습니다. 아내는 얼마 전부터 기침에 몸이 좋지 않았고, 이럴 때는 저는 '흑백요리사'가 되어 느즈막히 아이 밥을 챙기니 오후가 훨씬 지나 있었습니다.

잠시 밖에 볼일을 보고 온 아내가 "엄마와 동생 보러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같이 가자"며 차를 몰고 오후 늦게 처가로 달렸습니다. 저는 장모님께 가기 전에 습관적으로 챙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강아지 간식이죠. '작은 100g짜리 닭고기 캔'을 하나 가져갑니다.

이거 하나 가져가면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어요. 언제부턴가 늘 올 때마다 반기는 바둑이를 주려고 사가지고 갔던 게 십수년이 됐습니다. 계산해보니 벌써 바둑이는 16살이 됐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 제 아이보다 1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이 녀석 청력도좋고, 똑똑해서, 자동차 엔진 소리만 멀리서 들어도 "컹컹" 하고 짖는 게 아니라 "낑~낑"대며 두 발로 섭니다. 한 번은 제가 차 안에서 얼굴을 가리고 다가갔는데도, 용케 알아보더라고요. 한번은 처제가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형부가 오면 바둑이 짖는 게 달라요. 낑낑대면 '아, 형부나 언니가 왔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어느 새 16살이 된 바둑이, 그리 시간 지났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반겨주니 어찌 제가 빈손으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추운 겨울에 곰탕을 사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준 적도 있습니다. 강아지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누가 자기 예뻐하는지, 누가 수상한지 단박에 알아본다는 말, 이제는 믿습니다. 이제는 저를 기다리기보다 간식을 기다리는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강아지도 기다림이 있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것이지요.

 지난 여름, 눈 결막염으로 고생하는 시골개 바둑이를 위해 동물병원서 처방 받은 조제약
지난 여름, 눈 결막염으로 고생하는 시골개 바둑이를 위해 동물병원서 처방 받은 조제약 ⓒ 김관식

바둑이가 올 여름부터 눈이 좋질 않았습니다. 동물병원에서는 바둑이가 노령견이고, 결막염도 왔다며 약을 조제해줬습니다. 안약도 부지런히 넣어 조금 차도가 있나 생각했는데, 16살이라는 나이가 의미하듯 쉽게 낫질 않았습니다.

장모님도 바둑이가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신지, 근처에 먹이를 줘도 예전과 달리 앞이 보이지 않으니 찾질 못하고, 자기 집에 들어갈 때도 살짝씩 부딪친다는 겁니다. 처가 식구들도 모두 걱정하고 있던 무렵이었습니다.

"얘, 어디 갔지?"
"멀리 가진 않았을 텐데."

이날, 처가에 거의 도착할 즈음, 쓰윽~하고 바둑이 줄 캔에 눈길을 한번 줍니다. 반겨줄 상상에 주차하고 그걸 손에 쥐고 내렸죠. 그런데, 여기저기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겁니다. 처제한테 물어보니 "마당에서 후추(작은 처형이 기르는 강아지)와 뛰어 놀라고 풀어줬는데, 잠깐 근처로 나갔나 보네" 하고 답하길래 "그래? 그럼 이따 이거 바둑이 줘" 하고 당부했죠.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요? 슬슬 장모님이 말을 꺼내십니다.

"방실이 어디 멀리 간 거 아니냐? 눈도 안 보이는데, 잘 찾아올는지 걱정된다."
"그래도, 멀리 가지 않았을 거예요. 좀 이따 찾아볼게요."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자리를 정리할 때, 잠깐 먼저 나와 근처를 돌며 이름을 불러 찾아봤습니다. 시골이라 바람도 금세 차가운데, 조금씩 걱정이 되더군요. 돌아가며 처남과 처제한테 당부 아닌 당부를 했습니다.

"혹시, 바둑이 찾으면 단톡방에 올려줘."

정오가 돼도 단톡방에 울림이 없길래, 속으로 '깜빡한 거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찾았을까?' 하는 걱정도 됐습니다. 다음 날 오전 8시가 넘어 단톡방이 울렸습니다.

"바둑이 찾았어요. 논두렁에 빠져 있는 걸, 동네 아주머니가 아침에 근처 운동하다 발견했대요."

아마,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시골집 틈으로 모르고 나갔다가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논두렁에 빠졌나 봅니다.

아궁이에서 털 말리고 있는 바둑이. 장모님께서 밤새 떨었을 바둑이를 위해 일부러 장작을 구해 불을 피워주셨다.
아궁이에서 털 말리고 있는 바둑이.장모님께서 밤새 떨었을 바둑이를 위해 일부러 장작을 구해 불을 피워주셨다. ⓒ 김관식

그러면서 아궁에서 털 말리는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장모님도 밤새 바둑이가 떨며 고생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사진 한 장에 모든 걱정이 싹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16년 가까이 키우고, 집을 잘 안다 해도 그러게 갑자기 없어질 줄은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식구 모두 그날 저녁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에 작은 처형은 "오후에 갈게"라고 톡도 남겼습니다.

강아지도 자신의 가족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

모두 내색은 하지 않지만, 머지 않아 16살 바둑이와 곧 작별을 해야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날, 나눴던 대화에서도 "올 추운 겨울만 잘 넘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 받았거든요. 지금껏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장모님을 잘 지켜준 바둑이. 장모님도 말씀은 그리 하지 않으셔도 내심 섭섭한 마음을 감추시지는 않습니다.

저는 마음 한 켠으로, 이제 바둑이도 '제 자리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세에 우리 가족과 만나 마음으로 소통하며 식구 곁을 변함없지 지켜줬던 바둑이. 비록 동물일지라도 좋고 나쁜 것, 맛 있는 것, 없는 것, 싫어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구분하고 추운 것, 따뜻한 것 모두 알고 있는데 어찌 식구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요.

 시골 처가에서 뛰도는 16살 바둑이(뒤)와 팔팔한 청년 후추(작은 처형네 강아지)
시골 처가에서 뛰도는 16살 바둑이(뒤)와 팔팔한 청년 후추(작은 처형네 강아지) ⓒ 김관식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저도 더 신경을 쓰겠지만, 그날까지 잘 먹고 잔병치레 말고 지냈으면 하는 바람 하나입니다. 다음 주도 바둑이가 좋아하는 닭고기 캔 여러 개 사가야겠습니다.

한편,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를 보니, 2022년 말 기준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가구'가 552만 가구라 합니다. 우리나라 인구 5175만여 명 중 1262만여 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거죠.

반려동물을 가족 일원이라 여기며 반려동물 양육에 만족하고 있는 이가 대부분이겠지만, 한편으론 버림 받는 동물 또한 매년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사람도, 동물도 한 번 만나면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바둑이'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생명과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을 제게 기회를 물어다 준 거죠. 그런 의미에서 딱 5년만 더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이니까요. 세상 모든 게 그렇겠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시골개#바둑이#동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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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교육원 전임교수. 겉촉속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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