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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사 5층 석탑 뒤에는 금탑봉이 보인다.
청량사 5층 석탑 뒤에는 금탑봉이 보인다. ⓒ 문운주

경북 봉화군의 청량산은 해발 870m로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명산이다. 청량사를 비롯한 유적들이 자리해 역사적 가치도 높다.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청량산은 사계절 내내 탐방객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을 여러 차례 찾으며 학문과 사색의 장소로 삼았다. 그는 청량산의 수려한 자연을 유교적 덕목에 비유하며 여러 시를 남겼고, 청량산을 "내 마음의 고향"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고산정 퇴계 이황의 제자인 금난수(1530~1599)가 1564년(명종 19) 건립한 정자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고산정퇴계 이황의 제자인 금난수(1530~1599)가 1564년(명종 19) 건립한 정자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 문운주
고산정 낙동강과 강 건너 소나무 풍경
고산정낙동강과 강 건너 소나무 풍경 ⓒ 문운주

10월 11일, 고산정을 찾았다. 고산정은 안동에서 북쪽으로 40여 km 지점인 청량산 남쪽에 위치한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금난수(1530~1599)가 1564년(명종 19) 건립한 정자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가송리 마을 회관 전망대에 올랐다. 강 건너로 두리뭉실한 암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른쪽 산자락에는 작은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안동의 팔경 중 하나에 속한다는 고산정이다. 안개까지 끼어 무릉도원에 온 기분이다.

고산정은 주변 경관이 뛰어나 퇴계 이황을 비롯한 선비들이 자주 찾았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산골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가 느껴진다. 고향 같은 느낌이라 할까.

암벽에 뿌리내리고 오롯이 서 있는 소나무, 물결이 지나간 모래밭, 잔잔하게 멈춰있는 듯 흐르는 강물... 선비들은 이곳에서 수많은 시를 읊었다. 퇴계의 시 <서고삼벽>의 내용이다.

"일동이라 그 주인 금 씨라는 이가
지금 있나 강 건너로 소리쳐 물었더니
쟁기꾼은 손 저으며 내 말 못 들은 듯
구름 걸린 산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렸네"

고산정에 이어 농암종택을 둘러보고 청량산으로 향했다. 농암종택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 농암 이현보의 종택이다. 봉화청량산과 안동 도산을 잇는 퇴계 이황의 예던길에는 옛 선비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소금강이라 불리는 청량산

권성구 ( 1642~1708)의 <유청량산록>에 실려 있는 한시 5언절구
권성구( 1642~1708)의 <유청량산록>에 실려 있는 한시 5언절구 ⓒ 문운주

"금강산 좋단 말 듣기는 해도
여태껏 살면서도 가지를 못했네
청량산은 금강산에 버금가니
자그마한 금강이라 여길만 하지"

권성구( 1642~1708)의 <유청량산록>에 실려 있는 한시 5언절구다. 응진전으로 오르는 입구에 시비가 서 있다. 300여 년 전에 남겨놓은 한 선비의 예찬가가 청량산을 찾은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청량산은 작은 금강산이라고.

산의 초입은 경사가 심하다. 전날 무리한 탓에 피로가 겹쳤지만 데크 계단이 놓여 오르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길 주위에는 갈참 나무, 소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응진전을 지나면서는 평지길처럼 걷기가 편해졌다. 몸이 풀린 탓일까.

금탑봉 아래는 최치원의 유적들이 남아있다. 치원암, 총명수, 풍열대 등이다. 총명수는 최치원이 마신 뒤 총명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풍열대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이곳에서 최치원이 독서와 바둑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독서대라고도 불린다.

청량사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조선시대 때건물 한 동과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았다. 1986년퇴락한 사찰을 일구기 시작 현재에 이른다
청량사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조선시대 때건물 한 동과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았다. 1986년퇴락한 사찰을 일구기 시작 현재에 이른다 ⓒ 문운주
이황의 '김생굴'
이황의 '김생굴' ⓒ 문운주

총명수를 거쳐서 어풍대에 이르렀다.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와 연꽃 꽃술에 자리한 청량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풍대는 내청랑과 외청량의 요충지대다. 잠시 눈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하고 김생굴로 발길을 옮겼다.

경일봉 아래에 있는 김생굴은 통일신라 시대 명필가 김생이 글씨를 연마하던 장소다. 김생은 이 굴 앞에 암자를 짓고 10여 년 간 글씨 공부를 하여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인 김생필법을 완성했다.

김생굴에서 청량정사로 내려가는 길은 급 경사라 스릴도 느껴진다. 청량정사는 송재 이우(1469∼1517)가 조카인 온계와 퇴계, 조효연 등을 가르치던 건물이다. 그 뒤 퇴계 이황이 이곳에 머물며 성리학을 공부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황(1501∼1570)은 여기서 '도산십이곡'을 지었다. 건물은 전면 5칸·측면 1칸 반 규모다. 청량사와 청량정사는 불교와 유교 문화가 어우러진 현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불교의 깨달음과 유교의 학문적 사색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고 할까.

청량산의 거대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 봉우리 아래에 있는 청량사는 연화봉 기슭 한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자리에 위치한다. 쇠락한 사찰을 1986년 다시 일궜다. 좌 금탑봉, 우 연화봉과 5층석탑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낸다.

정상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이번 트레킹을 통해 김생, 최치원, 이황, 권성구 등 선인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이황의 '김생굴', 권성구의 '유청량산록' 등을 통해 알게 된 청량산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

#퇴계이황#청량산#유청량산록#청량사#권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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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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