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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인문학을 결합한 미디어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수산봉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제주인과 나의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기자말]
한국 영화와 문학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에미상을 받은 데 이어 한강이 노벨문학상, 김주혜가 톨스토이문학상을 받은 것은 너무나 자랑스럽지만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 근현대사와 현실을 소재로 삼아 작품을 만들면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는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가 그만큼 처절했고 우리 현실이 그만큼 각박하다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 포스터.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

<기생충>은 망국적 부동산 투기가 빈부 격차를 벌리면서 '반지하'로 내몰린 주거 양극화의 실상을 보여준다. 2022년 여름 서울에 수재가 났을 때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탈출하지 못하고 익사하자, 영국 BBC는 'banjiha'(반지하)란 말을 그대로 사용하며 <기생충>에 나오는 지하실에 진짜로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심층보도했다.

유럽 언론들은 그런 주거 형태를 본 적이 없으니 'banjiha'란 말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으리라.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업 형태인 'chaebol'(재벌)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것처럼 'banjiha'도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념갈등과 무한경쟁이 빚은 문학과 예술의 토양

<오징어게임>은 '무한경쟁'을 최고의 이념으로 떠받드는 한국에서라면 비교적 쉽게 착상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게임은 공정한 듯하지만 공정이란 개념은 경쟁지상주의에 이의를 달지 못하게 하는 역기능도 있다. 공정 이데올로기는 불평등과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데도 활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기회가 전혀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과정이 아무리 공정해도 결과가 정의로울 수 없다.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심리에도 '억울하면 공정하게 시험 쳐서 들어오라'는 경쟁지상주의가 깔려 있다.

 한강이 처절한 한국 현대사를 다룬 두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 표지.
한강이 처절한 한국 현대사를 다룬 두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 표지. ⓒ 문학동네, 창비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맞서는 가장 섬세한 문체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는 노벨상을 받음으로써 제주4.3과 광주5.18 때 가해진 국가폭력과 동서냉전의 비극적 귀결을 전세계에 증언했다. 서북청년회나 군경에 포위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수만의 제주민과 수백의 광주민이 끔찍한 최후를 맞았고, 그 수많은 개인 서사 중 하나씩을 한강이 부각했는데도 세계인의 연민과 공감을 산 것이다. 한강은 가장 섬세한 문체가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입증했다.

제주4.3 때 초토화 작전은 미군정이 지휘했고 미군 함정이 제주도를 포위하고 있었다. 광주5.18의 비극도 미국이 사실상 강제진압작전을 승인한 결과였다고 보면, 두 비극은 전후 세계체제의 모순이 우리나라에서 폭발지점을 찾은 것이다.

한강 이전에도 4.3과 5.18을 다룬 소설과 영화는 많았지만 그 진상을 세상에 알리는 데 노벨 문학상의 위력을 덮을 수는 없었다. 나는 사실 여든이 넘어서도 대작을 내고 있는 현기영이나 황석영이 먼저 노벨상의 길을 열고 다음에 한강이 받기를 고대했다.

노 작가들이 닦아온 노벨상의 길

현기영의 경우 최근에 쓴 3권짜리 <제주도우다>까지, 황석영은 <철도원 삼대>까지, 거의 모든 소설을 탐독했고,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만 읽었지만, 내 눈에는 셋 다 노벨상 자격이 있어 보였다. 세 작가는 일본과 미국 등 제국주의국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불평등한 세계질서에 도전해 아직도 분단체제는 물론 식민지 잔재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모국의 현실을 구술채록 등 문헌탐구와 현장취재로 구현해냈다.

황석영 작가는 우리 가족이 6년간 영국 케임브리지에 살 때 우리 집을 방문해 <손님> 등을 선물했는데, 한국 책이 귀한 터라 우리 아이들도 그 소설들을 읽게 했다. 그는 북한에도 다녀왔지만 <손님>에서 북한이 미군의 만행이라 단정짓는 1950년 신천학살사건을 균형되게 보려고 노력했다. 개화기에 '손님'처럼 들이닥친 게 보수 기독교와 사회주의였고 그 둘이 충돌하면서 비극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현기영의 <제주도우다>와 황석영의 <손님> 표지.
현기영의 <제주도우다>와 황석영의 <손님> 표지. ⓒ 창비

한라산·지리산 도피자들이 본 민가의 불빛

현기영은 제주4.3에 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하던 시절, 소설 <순이삼촌>으로 4.3을 소리높이 외쳤다가 공안당국에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4.3 때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내 <제주도우다>의 현장이 된 조천읍 일대를 현기영 작가와 동행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올 여름에는 그에게 연락할 일이 있어 보낸 이메일에 이런 내용도 적었다.

'선생님과 오성찬 현길언 김석범 작가 등이 선구적으로 제주4.3을 많이 알렸지만, 소설 책마저 읽지 않는 사람들도 상대하는 언론의 경우 4.3은 여전히 보도 기피 대상이 되고 있는 듯합니다. 언론인이자 선생인 제 자신조차 제주에 와서 책과 보고서들을 섭렵하고 어르신들을 만나 취재하면서 내가 4.3에 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반성하고 있으니까요. 간혹 제주 MBC나 KBS에서 4.3 관련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해도 서울 본사에서 거의 걸어주지 않잖아요. 4.3은 제주민만 공감하고 육지인은 대개 '물 건너 고을' 얘기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38화를 내보냈지만 제가 [수산봉수 제주살이]를 연재하는 목적 중 하나도 반향실(에코 체임버)에 갇혀 있는 듯한 제주민만의 공감대를 전국으로 확산하려는 겁니다. '4.3항쟁'이 정명과 역사적 의미를 되찾을 때 극우세력의 준동도 멈추고 통일도 가까워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소설은 이념 문제를 보편적 인권 문제로 승화했다. 그 점은 이태의 <남부군>, 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마찬가지다. <태백산맥>의 배경은 지리산이고, 한강도 언젠가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거라 기대한다.

겨울 지리산이나 한라산 중턱에 도피한 이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스라이 내려다보는 민가의 불빛은 무엇이었을까? 혁명의 불꽃?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대다수는 군경의 의구심을 피해, 살기 위해 '산사람'이 되었을 터. 그러다가 내려갈 수도, 더 이상 버틸 수도 없는 처지로 몰렸을 것이다.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는 거라면 개인이든 민족이든 운명이 아니다.

인권 말살의 또 다른 현장, 학교

그러면 지금 시점에서 한국인이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인권 말살의 현장은 어디일까? 바로 학교다. 학교는 경쟁적이어야 하며 경쟁이야말로 학습동기를 유발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교도소처럼 생긴 학교에 갇혀 새벽부터 밤까지 청소년기를 보내고 초등학생들마저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이감'된다.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는, 1970년 독일 교육개혁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철학자 아도르노의 명제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를 제목 삼아 쓴 책에서, 경쟁 교육이 한국 학생뿐 아니라 한국사회를 얼마나 불행한 사회로 만들고 있는지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초중고 학생 넷 중 하나가 학업과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며, 실제로 매년 청소년 자살자 300여 명 중 절반에 가까운 이가 같은 이유로 목숨을 끊는다. 잔혹한 석차 경쟁을 하면서 교우관계는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적대관계로 바뀌고, 극소수 승자는 그 대가로 누리면서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긴다. 패자도 불행의 원인을 자신의 무능에서 찾기에 불평등 사회에 저항하지 못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독일 공영방송은 한국의 교육을 취재하러 왔다가, 학생에 대한 일상적인 인권 유린과 학대에 너무도 충격을 받은 나머지 프로그램의 성격을 '교육 프로'에서 '인권 프로'로 바꿔 내보냈다고 한다. 프랑스 <르몽드>는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라며 "한국의 교육은 가장 경쟁적이고 가장 고통을 주는 교육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영국에선 좋아하는 과목만 공부하고 체육 중시

영국은 어떤가? 47살에 시작한 유학시절 여섯·다섯 살 터울인 아이들 셋을 각급 학교에 보내 전교육과정을 섭렵했는데, 자기 생각을 중시하지 암기 위주 교육을 하는 데는 없었다.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해당하는 A-레벨 시험은 자신이 좋아하는 서너 과목만 공부하면 된다. 체육은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 교과목이어서 축구장, 럭비장, 수영장 등을 갖춘 학교가 많고, 중고교 모든 정규수업은 3시 20분에 끝나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재학한 중고등학교인 임핑턴 빌리지 칼리지 전경. 축구장과 럭비장이 다섯 개쯤 들어갈 만한 잔디운동장과 체육관, 수영장 등을 갖추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재학한 중고등학교인 임핑턴 빌리지 칼리지 전경. 축구장과 럭비장이 다섯 개쯤 들어갈 만한 잔디운동장과 체육관, 수영장 등을 갖추고 있다. ⓒ IVCMAC

공정성 시비가 일지 않도록 객관식 문제만 출제해서 기계로 채점하는 나라는 내가 아는 한 유럽에는 없다. 우리처럼 거의 전과목 시험으로 전국의 같은 또래 아이들을 줄 세우고 그게 평생 출세를 보장하는 나라는 더구나 없다. 사법시험과 '언론고시'를 통과한 '시험선수'들이 포진한 법조계와 언론계가 개혁에 저항하며 국민의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은 잘못된 우리 교육의 귀결이다.

학창시절을 불행하게 보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행복할 수는 없다. 저출산 풍조는 패배자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역전현상에서도 감지된다. 불행한 삶의 출발점인 교육체제를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저출산 대책은 백약이 무효라고 생각한다. 짧아도 '몇 십년전쟁', 길면 '100년전쟁'을 치르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그런데도 기득권세력의 일부인 대부분 언론은 교육을 인권의 문제로 부각하기는커녕 기득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는 데 기여한다. 경쟁지상주의가 휩쓸고 있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마저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는 얼빠진 소리를 했다.

'불행한 학교'를 바꾸려는 영화 <괜찮아, 앨리스>

우리 주위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불행한 학교의 풍경을 바꾸려는 노력이 한 영화로 결실을 맺었다. <오마이뉴스>가 강화도에 설립한 꿈틀리인생학교의 색다른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괜찮아, 앨리스>가 그것이다. 이 학교는 일반 학교 생활을 힘들어하던 25명 안팎 학생들이 즐겁게 놀고 일하고 배우며 저마다 자기 인생을 설계하는 1년짜리 기숙학교다. 틀려도 괜찮고 잘못해도 괜찮다고 격려를 받는다.

 전국을 돌며 ‘100개의 극장’을 열고 있는 <괜찮아, 앨리스> 시사회.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오연호 제작자, 세 번째가 양지혜 감독.
전국을 돌며 ‘100개의 극장’을 열고 있는 <괜찮아, 앨리스> 시사회.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오연호 제작자, 세 번째가 양지혜 감독. ⓒ 오마이뉴스

영화 제작사는 '시민이 여는 시사회'를 전국을 돌며 주최하고 있는데, 제주도는 아직 일정이 안 잡혀 양지혜 감독에게 영화 파일을 좀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양 감독은 2007년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포커스>의 구성작가였는데, 당시 자문교수로 출연도 하고 있어서 친분을 쌓아왔다. 나는 그때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는 작가가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중에 KBS 경영평가위원을 하면서 유럽의 예를 들어 작가와 기상캐스터 등을 정규직으로 바꾸거나 처우를 대폭 개선하라고 제안했으나 바뀐 건 거의 없다.

학생들 표정이 밝은데 나는 왜 눈물이 나지?

<괜찮아, 앨리스>를 보면서 받은 첫 인상은 '학생들 표정이 저렇게 밝은데도 나는 왜 슬퍼지는 거지' 하는 상반된 감정이었다. 김동춘 교수의 책 제목이 <시험능력주의>인데, 그런 풍조가 만연한 사회의 학교에서 획일화 교육을 받으며 심신이 피폐해지고 있는 학생들과 비교하면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는 꿈틀리인생학교 학생들은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입학을 결정하기 이전의 학교 생활은 지옥 같았다고 얘기할 때, 절대다수 학생은 여전히 그런 지옥에 머물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울적하게 만든다.

"수업시간에도 항상 긴장해 있어야 하고, 저 선생님께 수업시간에 내가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서 잘 보여야 하고, 또 시험도 잘 봐야 하고 그렇게 평가하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이주연(17) 학생은 초등학생 때 전교어린이회장을 하고 중학교 교내 사생대회와 백일장에서 최우수상 등을 탈 정도로 다재다능하고 시험기간에는 하루 13시간을 공부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수학 문제를 풀다가 딱 막히는 순간 갑자기 아무것도 못하는 학생이 되고 말았다. 책상에 앉거나 공부를 하려고 하면 가슴이 뛰고 머리가 하얘지고 너무 불안해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여서 병원 상담 끝에 꿈틀리인생학교에 입학했다. 김혜일 교장은 말한다.

"여기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새가 지저대고요. 또 바람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 빗소리. 이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자연의 에너지가 1년을 함께 사는 친구들에게 주는 편안함이 있거든요."

꿈틀리인생학교에서 연극 쪽으로 방향을 정한 황하름씨는 역시 공립대안학교인 거창연극고등학교로 진학해 3학년에 다닌다.

"나도 (드라마의) 앨리스처럼 우당탕거리면서 여기저기 경험해보면서 살아가 보려고요. 솔직히 아예 후회한 적이 없다 그러면 그건 거짓말인 것 같고요. (…) 그런데 이 길을 걷다가 문득 돌아봤을 때 '아, 내가 참 잘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훨씬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이 짧은 다큐가 관객을 울리는 이유

꿈틀리인생학교 학생들은 스스로 작사·작곡한 노래를 발표하고, 춤추고, 모내기를 한다. '학부모 초청의 날'에 성의준 학생은 아버지가 "감정적인 행동이 얼마나 너를 힘들게 했는지 알게 됐다"며 편지를 읽어 내려가자 오열을 터뜨리며 감정의 벽을 허문다.

75분의 길지 않은 영화인데도 관객들을 울리는 이유는 뭘까? 슬픈 영화는 대개 주인공의 남다른 비극적 서사를 부각시킴으로써 연민을 이끌어내는데, 이 영화는 지금 우리 사회 공통의 문제를 다뤄서 공감을 자아낸다. 섬세한 구성작가가 직접 감독을 맡아서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괜찮아, 앨리스> 포스터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표지. 오연호 대표는 덴마크 교육현장을 취재해 이 책을 쓰고 꿈틀리인생학교를 구상했다.
<괜찮아, 앨리스> 포스터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표지. 오연호 대표는 덴마크 교육현장을 취재해 이 책을 쓰고 꿈틀리인생학교를 구상했다. ⓒ 미디어나무, 오마이북

꿈틀리인생학교의 도전은 멈추지만…

꿈틀리인생학교의 전신은 2007년에 설립된 시민기자학교 오마이스쿨이었는데, 나는 개교식에 초대받고 여러 번 강연을 한 적도 있다. 꿈틀리인생학교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세계에서 국민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덴마크의 교육현장을 오랜 기간 관찰하면서 구상한 학교다.

그는 2014년에 쓴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행복사회를 이해하는 6개 키워드를 뽑아냈다.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 사회가 나를 보호해주는 '안정', 남이 부럽지 않은 '평등', 세금이 아깝지 않은 '신뢰', 의지할 친구가 있는 '이웃', 자전거로 출근하는 '환경' 등이 그것이다.

그는 시험도 등수도 왕따도 없는 행복한 학교들을 방문하면서, 특히 고등학교 진학 전에 1년을 보내며 진로를 모색하는 에프터스콜레에 꽂혔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다가 2016년에 개교한 꿈틀리인생학교가 잠시 쉬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덴마크에는 250여 개 에프터스콜레에 3만 명이 재학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시도가 쭉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리 사회가 학벌과 경쟁 지상주의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고, 대안학교를 대하는 사회의 시선이 차갑고 정부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덴마크는 학벌주의가 발붙일 데가 없는 사회이고, 에프터스콜레의 경우 정부가 운영비의 70%를 댄다.

그러나 한국 교육의 야만성에 일찍 눈을 뜬 이들이 오랜 기간 희망의 싹을 가꾸어 왔다. 현재 대안학교는 학력인정을 받는 곳이 97개 있고, 학력인정을 못 받지만 더 자율적인 대안교육기관은 교육부에 등록된 것만도 256개나 된다. 등록도 하지 않은 대안학교는 파악도 안 된다.

제천간디학교 이병곤 교장은 "추산할 수 있는 자료가 하나 있다"며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정부에 의료물품 지원을 신청한 학교가 600여 개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대안교육기관의 교사는 2천 명에 이르지만 학생은 1만 명도 채 안 된다. 내가 제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일할 때 인근의 제천간디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교장과는 우리 교육과 관련한 문제의식을 공유해왔다. 이 학교는 교장도 학생들이 뽑는다.

'별꼴학교'에서 별스러운 꿈을 키운다

한미리스쿨이 있는 제주도 성산읍에도 '별꼴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다. 지난 여름 학교를 방문했다가 학생들의 일상이 너무나 기특해 보여 전교생과 선생님들을 초청해서 특강과 솥뚜껑 삼겹살구이 파티를 해준 적이 있다. 그들은 상차림과 설거지도 자신들이 하겠다고 나서는 등 여느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체득하고 있었다.

중1에서 고2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이 학교는 너무나 가족적이어서 형제자매들보다 더 친해 보인다. 아침 7시 30분에 기상하면 요가 등으로 몸을 깨운 뒤 마을을 한 바퀴 걷거나 뛴다. 그 후 학생들이 '파티'라고 부르는 회의를 열어 인문학, 영어, 독서, 밴드연주 등 활동계획을 짠다. 성산일출봉 등반이나 섭지코지 산책도 이 파티에서 즉흥적으로 정한다.

매주 일요일 오전을 빼고는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지만 식사와 빨래 같은 일도 스스로 하고 식사 당번이 세 끼 식사를 준비한다. 자기가 먹을 밥상을 자기가 차리는 데다 하루 활동량이 많으니 '반찬 투정'이란 있을 수 없다. 이영석 총괄디렉터는 "공부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배운다"고 말했다. 여름과 겨울에는 두 달씩 해외에 머무는데 지난 여름에는 에스토니아 등 발트3국을 다녀왔고, 이번 겨울에는 태국의 협력학교에 간다.



관심 영역이 다른 학생은 달리 키워야

별꼴학교 학생들을 위한 한미리스쿨 초청 강연의 제목은 '커뮤니케이션의 최초·최종병기: 문장, 엠블럼, 아이콘의 기호학'이었다. 지금까지 강연한 대상자들 가운데 별꼴학교 학생들만큼 몰입하고 재미있어 하는 집단은 처음 보았다. 유럽 역사를 상당히 많이 아는 학생도 있었고 지금까지 어떤 성인 학생도 맞춘 적 없는 덴마크령 그린란드 국기를 아는 학생도 나왔다.

꿈틀리인생학교와 별꼴학교는 교육부에 등록하지 않은 대안학교다. 이영석 디렉터는 "등록하려면 시설과 교사의 자격 등 기준을 맞춰야 하고 보고도 자주 해야 하는데 그런 걸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은 교육의 질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등록해봤자 지원도 별로 없다"고 비판했다.

규격에 관한 집착 등 행정편의주의가 자율을 생명으로 하는 대안학교의 장점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대안학교의 교육철학은 자연과 노동, 인문학을 통해 지혜를 가르치는 한미리스쿨 설립 취지와 맞닿아 있어 전국의 다른 대안학교들과도 무료 강연 등 연계활동을 늘려 나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괜찮아앨리스#꿈틀리인생학교#별꼴학교#한미리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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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주 키아오라리조트 공동대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 원장, MBC저널리즘스쿨 교수(초대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조선일보 기자, 한겨레 경제부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대원장(2008~2019), 한겨레/경향 시민편집인/칼럼니스트, KBS 미디어포커스/저널리즘토크쇼J 자문위원, 연합뉴스수용자권익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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