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 재활용회사인 에너지머티리얼즈 노동자가 일하던 중 황산 누출로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며 사측에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탱크 배관서 황산 분출돼 노동자 전신 화상
금속노조 포항지부는 28일 오전 경북 포항시 에너지머티리얼즈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운영을 비롯해 법적 의무를 다했다면 예방할 수 있는 사고였지만 회사는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회사는 재해자와 재해자 가족에게 즉각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지부의 설명 등을 종합하면, 지난 24일 오후 4시44분께 포항시 북구 에너지머티리얼즈 내 황산 탱크 펌프(배관)에서 황산이 분출돼 해당 설비를 점검하던 30대 노동자 ㄱ씨가 온몸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사고 발생 당시 현장에는 약 1.8ℓ(리터) 가량의 황산이 누출됐다. ㄱ씨는 현재까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유독성 물질인 황산은 무색의 맑은 액체로, 인체접촉 시 화상‧출혈 등을 일으킨다.
조호진 지부 에너지머티리얼즈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이날 <소리의숲>과의 통화에서 "노동자들은 못 쓰게 된 배터리들을 파쇄해 공정을 거쳐서 코발트‧니켈‧리튬을 비롯해 원재료를 뽑아내는 업무를 한다"며 "원재료를 뽑는 과정에서 황산‧염산을 비롯한 위험 액체를 펌프 등을 사용해 옮기는데, 이 과정에서 사고가 나곤 한다. 이전에도 종종 사고가 터졌는데 이번엔 좀 크게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 노동자는 생산반장이었는데, 황산 펌프에 문제가 생겨서 조치를 하려고 펌프를 만지다가, 그 안에 압이 좀 차 있었는지 펌프가 터져버리는 바람에 전신 화상을 입었다"고 덧붙였다.
에너지머티리얼즈는 GS건설이 설립한 업체로, 정부 지정 이차전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이자 기회발전특구 지역인 포항의 신항만에 위치해 있다. 사고가 난 공장은 완공 뒤 정식 가동에 앞서 시운전 상태다.
노조 "회사,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등 안전 규칙 미이행"
노동자들은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은 회사가 사고 예방 의무를 다 하지 않은 탓이라고 비판했다. 에너지머티리얼즈는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운영 의무가 있지만, 회사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부는 "회사는 사고 직후 재해자의 안전보호구 미착용을 (사고 원인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회사가 사고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의무도 다하지 않았던 것이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ㄱ씨는 사고 당시 안전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회사가 산안법에 명시된 위험성 평가, 작업환경측정 시행 의무를 지켰는지도 모호한 상황이라고 노조는 지적했다. 지부 관계자는 "이런 법적 평가와 조사에는 노동자 참여가 보장돼야 하며, 회사는 그 결과와 개선 대책도 노동자들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며 "하지만 노동자 중 누구도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노조는 이번 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발생해 왔지만, 회사는 그때마다 사고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과정에 노동자들을 참여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이번 사고는 회사의 불법경영이 만든 명백한 인재다. 회사는 재해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재해자의 치료비와 임금 보장 ▲재발방지 대책 마련 ▲사고 원인 조사 과정에 노조 참여 등을 회사에 요구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 <소리의숲>은 에너지머티리얼즈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사측 관계자는 "담당자가 회의 중"이라고만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회사 측은 노동자들이 지적한 사항에 대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근로자 대표를 뽑는 과정이고 그것을 기다리는 중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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