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는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28일 저녁 창원마산 가톨릭문화원 강당에서 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에서 백남해 신부가 강론을 하며 소개한 마르틴 뇌밀러의 시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 국민들을 참회‧화해로 이끈 대변자로서 알려진 마르틴 뇌밀러의 유명한 시로, 백 신부는 이 시를 어느 누리꾼이 요즘 한국의 현실에 비춰 다음과 같이 대체했다고 함께 소개했다.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그들이 철거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눈물 흘릴 때 나는 못 본척했다/나는 참사를 당하지 않았으니까/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 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회적 참사는 방심하고 무관심할 때 터져 나온다"
백 신부는 "<신곡>의 저자 단테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에 중립을 지킨 이들에게 예약돼 있다'라고 일갈했다"라고, 또 "요한 묵시록 3장은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로 되어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백 신부는 "아직도 사회적 대참사가 남의 일이겠거니 생각한다면 안된다. 사회적 참사는 우리 생활 곳곳에, 우리 삶의 자리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언제라도, 우리가 방심하고 무관심할 때 터져 나온다"라고 했다.
백 신부는 "세상 끝까지, 세상 끝날까지,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 나라를 세울 의무가 있는 천주교 신자라면, 특히 천주교 성직자 수도자라면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사회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다"라고 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을 언급한 백남해 신부는 "159위 영령들이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누리게 하시고, 유족들을 위로하시며, 남아 있는 우리들은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고, 참사의 책임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치를 때까지 사회적 책임감으로 끝까지 함께 해야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추모미사에서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영상으로 추모사를 했고, 박은혜(춤패) 무용가가 진혼무를 추었다.
"안전한 나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참가자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한반도 평화 기도문'을 통해 이들은 "평화의 원천이신 주님. 대북전단, 대남오물풍선, 확성기 재개, 드론 침투 등으로 남과 북이 서로를 헐뜯으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라며 "한국전쟁의 후유증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빨갱이', '사상검증' 등으로 편을 가르고, 아픔의 상처를 숨길 수도 드러낼 수도 없는 고통의 세월 속에 살고 있는 분들을 마주하며,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는 것을, 오직 아물지 않는 상처만 남는다는 것을 압니다. 정치지도자들을 일깨워 주시어 남북이 다시 대화 창구를 열어 한반도에 참 평화가 올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했다.
또 이태원참사 관련해 이들은 두 손을 모으며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누가 그 자리에 왜 갔느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까?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참석했다가 159명의 젊은이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죽어갔습니다. 국가의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고 그 부조리가 드러났음에도 뻔뻔한 정부는 사죄도 반성도 없이 2년을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엉겁결에 잃은 부모님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유가족들과 함께 진상규명이 이루어져 안전한 나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한편 이태원참사경남대책회의는 29일 저녁 창원 한서빌딩 앞 광장에서 '진실을 향한 걸음, 함께하겠다는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문화제'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