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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 대신사 존영 수운 최제우 선생 존영은 1933년 고희동 화백이 그린 초상화이다.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중이며, 수운 선생 초상화는 총 5점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에서 본 초상화가 가장 실물에 가깝다는 평가이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 존영수운 최제우 선생 존영은 1933년 고희동 화백이 그린 초상화이다.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중이며, 수운 선생 초상화는 총 5점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에서 본 초상화가 가장 실물에 가깝다는 평가이다. ⓒ 동학혁명기념관

그럼 동학을 창시한 수운 선생의 삶과 역사를 들여다보자. 수운 선생의 일생과 동학사상을 접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범인(凡人)이 성인(聖人)이 되고, 소인(小人)이 대인(大人)이 될 수 있다'는 천지개벽과 같은 커다란 깨우침에 도달한다.

동학연구가 삼암 표영삼 선생은 수운 선생의 동학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추렸다.

"수운 선생의 동학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천주(侍天主)이다. 사람은 자신 안에 모신 한울님과 둘 아닌 하나이므로, 사람이 곧 하늘이며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 사람 자체가 한울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한울님이 모셔져 있기 때문에 사람이 바로 한울님이다. 주문(呪文) 삼칠자(三七字)의 수행은 사람이 성인(聖人)되는 지름길이며, 누구나 한울님으로 승화되는 가르침이다."

삼암 표영삼 선생은 「동학」과 「표영삼의 동학이야기」라는 동학역사에서 교과서와 같은 중요한 책자를 남겼다.

해월신사 최시형 선생 좌상 해월 최시형 선생 좌상은 동학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천도교종법사 김창업 선생의 특성금으로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 전시실에 세운 동상이다. 좌상 모습은 해월 최시형 선생께서 1898년 6월 1일 고등법원 감옥서에서 교수형 판결 다음날 2일 순도순국 직전 러시아 공사 파불로프가 촬영한 사진을 형상화한 동상이다.
해월신사 최시형 선생 좌상해월 최시형 선생 좌상은 동학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천도교종법사 김창업 선생의 특성금으로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 전시실에 세운 동상이다. 좌상 모습은 해월 최시형 선생께서 1898년 6월 1일 고등법원 감옥서에서 교수형 판결 다음날 2일 순도순국 직전 러시아 공사 파불로프가 촬영한 사진을 형상화한 동상이다. ⓒ 동학혁명기념관

해월 최시형 선생은 독공(篤工)법설에서 성인(聖人)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하였다.

"내가 젊었을 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옛날 성현(聖賢)은 뜻이 특별히 남다른 표준이 있으리라 하였다. 그런데 한번 수운 대선생님을 뵈옵고 마음공부를 한 뒤부터는, 비로소 별다른 사람이 아니요 다만 마음을 정定하고 정하지 못하는 데 있는 줄 알았다. 요순(堯舜)의 일을 행하고 공맹(孔孟)의 마음을 쓰면 누가 요순이 아니며 누가 공맹이 아니겠는가. 여러분은 내 이 말을 터득하여 스스로 굳세게 하여 쉬지 않는 것이 옳겠다."

해월 선생은 부지런히 힘써 공부하고 수련하면 누구나 성인이라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하였다.

수운 선생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평범하지 않은 진인(眞人)이자 성인(聖人)이다.
세계 4대 성인인 석가와 공자, 예수와 마호메트 그리고 수운 선생을 5대 성인으로 추앙함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수운 선생은 누구나 대인(大人)이자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가르치신 분이다. 동학·천도교 3세교조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선생은 성범설(聖凡設)에서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에 대하여 본래 구별이 없다고 말씀하였다.

"한 나무에 꽃이 피니 꽃도 같은 색깔이요, 한 꼭지에 열매가 맺혔으니 열매 또한 같은 맛이라. 성품은 본래 한 근원이요, 마음은 본래 한 하늘이요, 법은 본래 한 체이니 어찌 성인과 범인이 있으리오."

동학은 기존의 사고(思考)와 문명(文明)을 완전 탈바꿈시켜 새로운 세상을 여는 다시개벽 즉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오만년지(五萬年之)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
수운 선생은 「용담가」에서 노래하였다.

어화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 닥친줄을
너희어찌 알까보냐 기장하다 기장하다
이내운수 기장하다 귀미산수 좋은승지
무극대도 닦아내어 오만년지 운수로다

근암공, 운명의 한씨 부인을 맞이하다

그때는 갑신년(甲申年) 시월 이십팔일 늦가을이었다. 농민들의 주름진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추수(秋收)도 끝났다. 산천은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나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텅 빈 들녘은 쓸쓸한 백성들의 가슴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백성들은 몇 명만 모여도 수군거렸다.
"말세야 말세, 이놈의 세상 얼른 망해버려야지, 구세진인이 출현하여 세상을 건져야 할 것이야."
사람들은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외세침략의 걱정으로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 없었다. 더 나아가 정감록 등 참서에서 말했듯이 조선이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간절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바로 구세진인의 출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조선조 말 말세의 상황에서 수운 선생의 출생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수운 선생의 출생은 단순히 한 사람의 출생이 아니라 동학·천도교를 창도한 교조로서의 성인(聖人)과 같은 분으로 탄신(誕辰)이라는 존칭어를 사용한다.
수운 선생의 아버지 근암공은 벼슬을 하지 않은 산림처사(山林處士)로,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성리학(性理學)을 이은 선비로서 경상도 일대에 그의 학문과 덕망이 높았다.

근암공은 이미 오천 정씨와 달성 서씨의 두 번에 있어 아픈 상처(喪妻)를 당했던 내력이 있어서 재혼할 생각을 아예 접었다. 그리고 둘째 동생 규의 큰아들 제환을 양자로 들여 모든 살림을 맡기고 용담정에서 벗들과 도담을 즐기면서 학문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제자들은 나이에 비해 젊었던 스승이 외롭게 홀로 지내는 것이 안타까워 재혼을 여러 번 권하였으나 그때마다 근암공은 거절하곤 했다. 그러면서 근암공은 가끔 뒤를 이을 친아들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자들은 스승을 재혼시키려 본격적으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경주 금척리에 사는 한모(韓某)라는 제자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우리 스승님께서 겉으로는 싫은 척하시지만, 후손을 잇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시지 않습니까? 스승님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젊고 건강하시므로 재혼을 해서 대를 잇게 해야 하고, 스승님 뒷바라지와 살림살이도 하게 해야 합니다."

한모 제자의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어디 좋은 배필감이라도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한모 제자는, "저의 고모님이 현재 경주시 건천면 금척리에 계시는데, 일찍 시집을 갔으나 20세에 부군이 별세하여 홀몸이 되었습니다. 그 후 친정으로 돌아와서 10년이 넘게 살고 있는데 나이는 30세입니다. 몸가짐이 단정하고 말수도 적으며 스승님을 모시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운 선생의 제자들이 한모 제자에게 고모님의 의중을 확인했는지 물었다.
"사실 제가 스승님과 고모님의 연분을 맺어주고 싶어서 몇 번 여쭤보았습니다. 고모님은 스승님에 관해 이야기를 들으시고 겉으로는 말도 못 꺼내게 하시지만, 스승님의 허락이 있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한모제자의 진지한 모습에 여러 제자들은 의견을 모았다.
"스승님이 재혼을 포기하고 양자까지 들이셨으니 쉽게 응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혼인을 성사시킵시다."
한모 제자를 중심으로 여러 제자가 한씨 부인과의 재혼을 권하였으나 근암공은 매번 거절하였다.
근암공이 제자들의 간곡한 요청을 번번이 물리친 이유는, 정절을 지키는 과부를 맞이하는 것은 지조를 깨트리는 것으로 온당치 않으며, 최씨 집안은 물론이고 한씨 집안의 체면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명명한 천지운수
남과 같이 타고나서
기궁한 이내팔자
일점혈육 없단말가
「몽중노소문답가」

덧붙이는 글 |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탄신) 200주년,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
'동학대서사, 모두가 하늘이었다'는 계속 연재됩니다.


#동학#천도교#동학혁명#동학농민혁명#수운최제우탄신2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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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은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장」,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평화민족통일원탁회의 공동의장,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문위원, 또 현(現)천도교선도사·직접도훈, 전(前)전주녹색연합 공동대표, 전(前)전주민예총 고문, 전(前)세계종교평화협의회 이사 등 종교·환경단체에서 임원을 엮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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