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 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기자말] |
지난 10월 21일 오후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애초에 독대라고 알려졌으나, 그것의 성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만남 혹은 회동을 했다. 아마도 앞으로 뭔가를 하기 위해서, 최대한 인내하면서 보여주기 위한 수순 혹은 상징적 의례로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일 저녁 추경호 원내대표와 저녁 식사를 했고, 한동훈 대표는 다음날인 10월 22일 친분이 있는 의원 및 당직자 20여 명과 만찬을 했다. 아마도 서로 다른 앞날을 논의했을 것이다. 무엇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이러한 상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나라와) 당과 본인들의 미래가 걱정인 여당 대표와 의원들은 국민 지지율이 바닥인데도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거나 어쩔 수 없다는 대통령과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의 단임제로 인해서 퇴임 이후 미래가 없다는 점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단임제로 인해서 미래를 가지기 어려운 한국의 대통령은 임기 초기 "국민만 보고 간다"고 하지만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국민들을 위한 일이었다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라는 식의 마이웨이를 간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그렇게 말한다.
반복되는 대통령과 여당의 갈등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의원들 간 갈등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고, 민주당 집권기에도 존재했던 구조적인 현상이다. 구조적이라는 말은 쉽게 바뀌지 않고 반복된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 하에서 이준석 당대표, 김기현 당대표는 끝이 좋지 않았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 하에서도 여당과의 관계는 겉으로는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그렇게 생산적인 관계를 형성한 것도 아니었다. 알아서 조용했기 때문이다. 조용했다는 점은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원주의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장기 집권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촛불 정부는 5년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현재, 미래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당 의원들은 어쩔 줄 모를 것이다. 한편, 친윤이나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움직였던 의원들은 여전히 충성을 다하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정치는 의리를 지키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처음부터 국회나 정당의 기반 없이 시작했기에, 지난 3년간 전례 없이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연찬회에 가서 구애했다.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누구이든 전반적으로 따라가는 분위기가 강하다. 한동훈 대표와 새로운 개혁파, 사실 개혁파라고 부르기에는 개혁의 내용을 알 수 없기에 신당권파라고 하는 것이 맞을 텐데, 어쨌든 신당권파는 대통령에 대해 심적인 불편함을 넘어서 더 큰 그림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현재 한동훈 당대표를 필두로 하는 신당권파와 추경호 원대 대표 중심의 친윤 원내 세력 간 갈등과 쟁투는 우리가 보는 대로이고, 대통령은 장기판에 여러 선택지와 말들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개입함으로써 권력 내 갈등은 격화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 변수는 아마도 한동훈 당대표와 신당권파의 선택일 것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추경호 원내대표 및 친윤 의원들 그리고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당 대표들의 생각이 거의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나머지가 상수라면, 한동훈 당대표의 생각은 변수다. 물론 이재명 당대표의 다가올 사법부 판결이 큰 변수이기는 하지만, 우선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한동훈 당대표가 핵심 변수임은 분명하고, 그것이 얼마나 큰 변수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은 한동훈 대표의 의지와 생각에 달려 있다.
대통령의 권한과 책무
이 시점에서 시야를 나무로부터 숲으로 넓혀 보자. 대통령이 여당과 거리를 둘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 먼저 검토할 사항은 한국에서 대통령이 가진 권한과 그 권한의 행사와 한계에 관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대통령과 정당들 및 정부와 민간 기관들간의 관계와 역동성은 대통령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가와 정부를 경영하는 데에 크게 4가지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첫째는 대통령의 행정대권이다. 행정대권은 행정부와 정부 출연기관 및 여러 공직에 대통령이 공직자를 임명하고, 예산을 편성하며, 대통령 시행령을 발동함으로써 정책을 시작하지만, 행정대권은 국회의 동의와 입법과 예산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단기적일 수밖에 없고 장기적인 정책 성공이 어렵다.
국가지도자인 대통령이 정책 의제를 공론화 하고,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각제 국가에서 의회가 정치를 독점·지배해 사회적 문제를 방치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입법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성과를 낼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이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할 때 가진 중요한 한계이다. 민주 정치사회는 독재를 경계하고 허용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곳곳에 최고 지도자에 대한 제한은 필수적이다.
둘째는 대통령이 가진 권력 기구다. 대통령은 5대 권력기관인 검찰, 경찰, 군, 국가정보원, 국세청과 추가로 감사원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한다. 물론 권력기관들은 (전직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를 포함하는)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중립이어야 하지만, 이미 상당히 정치화돼 버렸다. 따라서 정치적 중립은 껍질과 포장이 됐고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이 본질이다. 사적인 충성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파도 본질은 아니다.
권력 기구의 정치화 메커니즘에 수요-공급 이론을 적용해 보자. 수요 차원에서 권력기관 엘리트들은 유일하게 승진하고 출세할 방법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잘 보이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그래서 대통령이 원한다면 칼을 쥐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찌를 수도, 정보를 캐내어 올 수도,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질 수도 있는 의지를 가진 잠재적 후보자들이 풍부하다. 특히 성공에 목마른 이들은 정말로 이를 원해서 할 것이다.
조직 생활을 하다가 보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쉽게 올라가기가 어렵다. "다음에도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하면 순진한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소수이지만, 핵심에 있는 이들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공급 차원에서, 대통령이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하지 않고 "범죄가 있으면 무슨 일이 있든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하고 그것이 전직 대통령이든 야당 대표이든 상관없으며, 이것이 정의이다. 직책을 고려하는 것 자체가 직무 유기이며, 특정한 요구를 하는 것이 특권이다"라는 교묘하기도 하고 교활하기도 한 말에 힘을 실어 준다면, 정치보복은 계속된다. 사실 이와 같은 정치보복의 정치적 수단화는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도 지속된다.
문제는 이것 또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민주 사회에서 개인의 인권은 보장이 되고, 무죄 추정 주의와 증거 위주의 법정 심리는 오래가기 때문에 대통령을 따르는 검찰이나 권력 기관이 시작한 보복이 끝까지 승리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리고 장기적 재판을 보면서 초기에 지지했던 사람들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라고, 스스로 후회하기도 한다. 온정주의적 한국인들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법적으로 가혹한 처벌을 끝까지 잔인하게 지지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한 가지라도 무죄가 나면 타격은 불가피하다.
셋째 대통령이 지닌 여론에 대한 호소력이다. 대통령은 국회의원들과 같이 파편적 부분적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으로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연설을 할 수 있다. 언론이나 국회의원을 만날 수 있고, 해외 동포들도 만난다. 야당 의원들을 만나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를 대표하는 유일한, 정파를 넘어선 정치인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 또한 대통령이 설명과 설득을 못할 경우 역반응을 일으키기 쉽다. 특히 한국과 같이 토론과 연설 훈련보다는 고개를 숙이고 엉덩이를 무겁게 한 다음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사회의 엘리트가 되는 나라에서는 평등한 관계 속 설득보다는 위계질서 속 명령이 더 지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언론을 멀리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언론 기자회견을 좋아하지 않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아예 할 의사가 거의 없다.
넷째는 여당과의 협력이다. 여당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여당 의원들 또한 행정부 장관이 돼 경력을 쌓을 수 있으며 대통령과 함께함으로써 단기적으로 함께 성공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이 여당의 주요 인사들과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할 경우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을 보호하기도 하고 국민의 시각에서 정부의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대통령은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보다 정제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기서도 한계는 있다. 늘 여당이 대통령과 함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단임제 대통령은 임기 초반에 여당과 밀월 관계에 있지만, 레임덕 이후로는 서로 결별의 수순을 밟는다. 대통령이 탈당하기도 하고, 여당이 도전해 들이받기도 한다. 반복되는 선거에서 당선을 통해서 미래를 도모해야 하는 여당 의원들은 미래가 없는 대통령과 함께하는 것은 거의 자살 행위에 가깝다. 특히 지역구가 영남이 아닌 수도권에 있는 경우 불안은 커진다.
보복의 정치에서 회복의 정치로
이렇듯 대통령의 권한과 그 행사에는 제약이 있고 동전의 양면이 공존한다. 여기서 두 가지 수단은 대통령 개인에 해당하고, 나머지 두 가지는 행정관료와 정당에 해당한다. 이 네 가지가 서로 선순환한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란 정말 어렵다.
특히 대통령이 자신이 가진 권한과 한계를 인식하고, 그 행사 방식이 조심스러울 경우 나머지 행정부 관료와 여당 관계는 좋아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관료와 사정기관 간부들은 가장 먼저 손을 내려놓는다. 벌써부터 대통령실에 발령 나기가 두려워 한직을 선호한다는 엘리트 관료들의 이야기들이 들린다. 결국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정치적 운명을 함께할 조직은 여당이 유일하다. 왜냐하면 여당이 대통령을 후보로 공천하고 대통령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여당의 대표를 홀대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면, 과거 대통령의 사례가 일부 교훈을 준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새누리당은 다양한 파벌들이 경쟁하는 살아 있는 조직이었다. 과거 민주화를 했던 김영삼 계열도, 신군부 시절부터 내려온 민정당 계열도, 새로운 개혁 보수도 공존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김무성 대표를 홀대했고, 유승민 원내대표를 거세게 비난했으며, 결국 김무성 대표는 2016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옥쇄 파동을 주도했고, 유승민 대표는 공천받지 못해 탈당했다. 이후 탄핵의 위기 국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의리로 지켜줄 이들은 많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지금 퇴임 이후이지만, 재임 중 스스로 비정치인같이 행동했고 그것을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점에서 그를 정치적 의리로 지켜줄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국가의 지도자로서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사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 사실 그들의 경륜과 지혜가 국가의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화풀이와 보복의 대상으로 희화화하지도 말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역대 대통령 중 여생을 안전하게 보장받은 이는 거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에 정치적으로 쓰러졌다. 재임과 통치기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합의와 전통이 있는 서구의 민주주의 나라들과 달리, 우리의 지도자는 전임자들을 법적으로 공격해 국정 동력을 확보하려는 의지가 강하기에 정치 보복이 만연한데, 이는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관용하고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당 대표들의 의견도 듣지 못하는데, 야당 대표와 사회의 다른 의견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제모글루와 로빈슨이 강조하는 포용(inclusiveness)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구호적 차원에서 포용을 강조했지, 촛불 항쟁에 함께했던 유승민과 안철수 등에 대해 포용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대통령의 불관용과 정치 보복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답 없는 질문일까, 답이 정해진 질문일까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갈 것인가 하는 점이 궁금한데, 필자는 아마도 국가의 지도자인 대통령이 변하고, 정당이 중심이 되는 정치로 발전하지 않는 한 정도가 문제이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대통령의 권한과 한계를 고려해 보면, 집권 초기에 정파가 다른 전임자들은 늘 공격의 대상이고, 집권 후반기와 이후에 외로운 대통령을 보호해 줄 대상은 정당 혹은 정당들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통령이 사인적 권력을 행사하고, 정당과 정치를 경시하는 현상이 구조적으로 만연하기에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대상은 무엇보다 대통령일 수밖에 없고,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다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한국의 정치 문제는 대통령과 정당들이 해소에 나서면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역동적인 나라이고, 한국인들은 국가적 결정에 수용도가 높은 나라이기에 반드시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비교 정치의 관점에서 다른 여러 나라들은 정치의 문제가 사회, 경제, 인종, 언어, 종교 등과 연계돼 있는 반면, 한국에서 정치의 문제는 정치적인 세계 내에서 한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기에 정치적인 어려움에도 국가적 위기는 덜 영향을 받아왔다. 다시 한번 정치의 회복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조영호 서강대 교수가 작성했습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와 슬로우뉴스에도 중복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