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런 마무리를 원했던 것인가.
30일 오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춘식(104) 할아버지 측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제3자 변제' 방식 배상을 수용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가운데, 이날 오후 이 할아버지의 장남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후 2시15분경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춘식 할아버지의 장남 이창환씨는 "(부친의) 현재 상태는 정상적인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서 "나는 (부친이) 제3자 변제를 수령했다는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녀 중 일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과 접촉해 수령 여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반대 입장이었다"며 "오늘 형제들을 설득하러 광주로 갈 예정이었는데 뉴스를 통해 판결금을 지급받았다는 내용을 갑작스럽게 알게 됐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노환과 섬망증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정상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데도 (아버지가) '제3자 변제에 동의한다'는 의사표시를 재단에 했다는 것이 아들로서 납득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신속하게 형제들에게 현재 상황이 왜,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누가 서명한 것이고 누가 돈을 수령했는지를 확인할 것"이라면서 "이를 취소할 수 있는지도 논의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 내내 눈물을 보였다. 이날은 이춘식 할아버지가 대법원으로부터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받은지 딱 6주년 되는 날이었다. 앞서 이날 오전부터 이춘식 할아버지 측이 대법원의 징용피해 손해배상 승소판결에 따른 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재단으로부터 수령했다는 보도가 재단발로 이어졌다.
역사적 판결 6주년 날...
오전 '이춘식 할아버지 제3자 변제 수용' 뉴스 - 오후에 장남 반박 회견
이춘식 할아버지는 1940년대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일본제철의 일본 제철소에 강제동원돼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역을 했지만 일제 패망 뒤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귀국했다. 지난한 법률 투쟁 끝에, 지난 2018년 10월 30일 우리 대법원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강제징용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들이 이 판결에 반발하면서 한일 관계 악화로 이어졌다.
윤석열 정권은 지난해 전범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재단이 모금한 돈으로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춘식 할아버지 등 피해자들은 명확하게 수용을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 6년을 맞은 이날, 백세를 훌쩍 넘은 당사자는 상황이 좋지 않고, 표면적으로 자식들의 의사는 갈라진 상황으로 보인다.
"이분 싸움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하게 하는 게 맞는가" 법률대리인도 눈물
이춘식 할아버지의 법률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법적으로 채권자는 이춘식 할아버지"라면서 "자녀들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이 할아버지는 작년 3월 제3자 변제안 발표 후에 반대 의사를 밝혔기에 이것이 공식 확인된 의사"라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이춘식 할아버지가 '제3자 변제를 수용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표시했고, '제3자 변제를 반대한다는 의사표시를 철회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는지, (병원에 입원 중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그런 상황이 아닌데 아주 고도의 법률적인 이야기를 하셨을지, 과연 그 돈은 어디로 수령됐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라고 전제한 뒤 "가정이지만 금원을 (재단에) 다시 반환하면 된다"라고 덧붙였다.
임 변호사는 "후대에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는 건데, (제3자변제안 등) 정책에 맞서 싸운 이춘식 어르신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질지도 모르는데, 지금 온전하지 않은 의사를 갖고 계신 분에게 어떤 방식으로 의사를 확인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이분 싸움의 마지막을 기록하게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정말로 모르겠다"면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기다릴 수 있는 거 아니냐. 국가가 먼저 피해자들이 제3자 변제를 받았다고 하는 게 맞냐"라며 눈물을 삼켰다.
옆에서 임 변호사의 말을 들은 이 할아버지의 장남 이창환씨는 다시 한번 "6년 전 오늘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날 아버지는 '10월 30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쁘고 슬픈 날이다. 전원합의체 승소 판결을 받고 너무 기뻤지만 고인이 된 동지들과 함께 기뻐하지 못해 나는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며 "아버지가 쌓아오신 과정과 기록을 지켜본 아들로서 그 뜻을 끝까지 기리고 지키겠다고 다짐한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23일 또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측도 자식을 통해 제3자변제안을 수용한 상태다. 올해 95세인 양 할머니는 현재 치매로 인해 요양병원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두 차례의 대법원 판결로 승소한 피해 당사자 15인 중 생존 피해자 3인은 모두 제3자 변제 방식을 받아들인 상황이 됐다. 다만 이춘식 할아버지의 장남이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불씨가 남게 됐다.
아래는 장남 이창환씨가 이날 발표한 입장 전문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어르신의 장남 이창환의 2024. 10. 30.자 '이춘식 제3자 변제 수령'과 관련한 입장
1. 이창환은 '이춘식 어르신이 제3자 변제를 수령했다'라는 사실에 대해 알지 못 합니다. 이창환은 이춘식 어르신의 자녀 중 일부가 최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접촉을 하며 제3자 변제 수령 여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창환은 이에 대해 반대입장이었습니다. 형제들이 어제 이창환에게 서명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에, 이창환은 오늘(2024. 10. 30.) 형제들을 설득을 하려 광주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점심 경 뉴스를 통해 이춘식 어르신이 판결금도 지급받았다는 내용을 갑작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2. 이춘식 어르신의 현재 상태는 정상적인 의사를 표시하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춘식 어르신은 얼마 전부터 노환과 섬망증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으시고, 정상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콧줄을 뺄까봐 일정한 활동의 제약을 가하는 조치까지 한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춘식 어르신이 '제3자 변제에 동의한다'라는 의사표시를 강제동원지원재단에 했다는 것이, 아들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3. 이창환은 신속하게 형제들에게 현재 상황이 왜,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를 확인 할 것입니다.
현재 형제 중 일부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곧 누가 서명을 한 것이고, 누가 돈을 수령했는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이를 취소할 수 있는지도 논의하겠습니다.
2024. 10. 30.
이춘식 장남 이창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