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시 태인동에 광양 김 시식지(始殖址)가 있다(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 1987.6.1. 지정). 김 시식지 역사관을 관람하려면 먼저 해은문(海隱門)을 통과하여야 한다. 대문을 지나면 좌측에 김 시식 유적 복원 추진 기념비가 마당의 우물 뒤에 있다. 10월 29일 이곳에 다녀왔다.
기념비 우측에 해은 김여익 선생의 영모제 건물이 있으며, 영모제 건물 우측에 '김 역사관'이 있다. 김 역사관에 들어가면 해은 김여익 초상화(海隱金汝瀷公眞影)가 있는데, 정자관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 복장으로 의자에 앉아 계신 모습이다.
김여익 선생은 전남 영암군 서호면 몽해에서 태어났으며,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는데 청나라와 화의를 맺었다는 굴욕적인 소식에 통탄하며, 광양 인호로 1640년 이주해서 은둔하였다(인호라는 옛 태인도 명칭은 김여익 선생이 이주하고 나서 태인도로 바뀌었는데, 대인이 사는 섬이라 하여 태인도라 불렀다고 주민들에 의해 전해진다).
김 양식을 창안한 대인이 사는 곳
조선 시대 해은 김여익(1606~1660) 선생의 묘표를 1714년 2월 광양 현감(허심)이 지었는데, '시식해의', '우발해의'(始殖海衣, 又發海衣)의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그가 김 양식을 창안했다는 기록이다.
작은 건물의 아담한 김 역사관 내부에 들어가보니, 간단한 서류와 몇 권의 책을 실물로 전시하였다. 과거부터 김을 제조하는 기구 등은 사진으로 전시하고, 작업 내용 등은 사진과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김 역사관 안에 '김 양식의 역사' 안내판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전시해 놓았는데, 한글과 영어 및 일본어로 작성했다. 한글의 첫 부분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김(海衣)은 연안 도서 암면(岩面)에 착생 발육한 해조(海藻)이다. 인공양식(人工養殖)이 시작된 것은 약 370년 전으로, 조선 인조 시대 때 김여익(金汝瀷)이 바다에 떠다니는 유목(流木)에 해의(海衣)가 착생한 것을 보고 밤나무 가지를 갯벌에 꽂아 양식(養殖) 한 것이 시초이다.(하략)'
들물과 썰물의 사이에 갯벌에 설치한 섶들은 바닷물에 잠기거나 노출되는데, 이렇게 되어야 김이 자라는 환경이 된다.
김을 수확하는 시기는 가을에서부터 겨울까지 이어지며, 김을 씻어서 도마위에 놓고 잘개 썰어서 물에 풀어 김을 제조하는데, 짚으로 만든 발장(Baljang : Drying Screen of Gim)을 놓고 그 위에 나무 틀인 고데(Gode: Wooden Frame)를 얹어 물에 풀어 둔 김을 바가지 등으로 고데 안으로 부어서 만든다고 한다.
역사관 사진 한 장을 보니, 사진의 좌측에 앉아 있는 두 분이 김을 제조하다가 무엇이 잘 안 되는지 의논하는 것 같다. 하얀 털모자 쓴 청년은 일을 하다가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마치 검정 털모자 쓴 할아버지가 "애들아 쉬엄쉬엄하거라" 하며 다독이는 듯하다.
이곳 전시물 중에는 책과 서류가 있는데 편지글도 있다. 한문 편지 내용은 서울에서 한 상인이 김을 많이 사겠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른 김 위탁판매 전표가 3 장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 한 장을 보면 등급은 송, 죽, 매, 그리고 등외로 하였으며, 제2313호로 번호가 찍혀 있는 것으로 봐서 거래된 건수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김을 수확하여 가공하는 일은 잘 말려야 하므로 이엉을 엮어서 울타리처럼 만들어 발장을 붙여야 한다.
김을 말리다가 비가 오거나 하면 상품성이 떨어지거나, 쓰지 못하게 되므로 볕 좋고 날씨 좋은 날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이다. 사진을 보니 코흘리개 아이들도 김 말리는 작업을 돕는 철이다.
추가로, 태인도 용지 마을에서는 김 풍작을 위한 줄다리기를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올해도 배알도 해변에서 축제가 있었는데 사진 속 '용지 줄다리기'는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역대급 김 수출 뒤에는 이런 역사가
역사관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여성 해설사 분이 해은 김여익 영모제 건물 5개의 기둥에 글을 써서 걸어 놓은 주련의 내용을 유창하게 해설하신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해석을 잘하십니까?"
"저희 마을에 학덕이 높으신 어른께서 써 주신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써 주신 것을 볼 수 있을까요?"
"잠깐 기다리십시오."
해설사에게 받아든 주련 해설문은 아래와 같다.
永慕齊 株聯 解說文
영모제 주련 해설문
仁湖伴鷗憂樂居
인호(현 태인도)에 와서 갈매기를 벗삼아 즐겁게 살면서
始殖海衣又發明
김을 양식하는 방법을 최초로 발명하여 보급하였스며(으며)
海衣而俾世人頌
이를 들은 사람들의 칭송의 소리가 자자하게 높았다
以調滋味謂罕事
김으로 좋은 맛을 조리케 하였으니 참으로 드문 식견이다
世人溫故呼金名
세상사람들은 김 씨의 성을 따서 김이라 불렀다
이렇게 자세하게 해설문을 써 주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정성스럽게 해설해 주는 해설사가 있어서 뜻하지 않은 주련 해설도 듣게 되었다.
사진 속의 검정 털모자 할아버지의 다독이는 상황이 다시 살아나서, 내 어릴 적 추억의 한순간과 손을 잡는 느낌이다.
한편 지난해, 우리나라 김 수출이 1조 원(7.7억 불)을 달성 하여 수출 역사상 단일 품목으로는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2023.12.21).
올해는 아직 미정이지만 더위로 작황이 떨어지고 있단다. 그러나 문제를 극복하는 기술과 능력이 무한한 사람들이 김을 키우고 있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