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후회 없이 당신의 길을 걷고 있나?'
이 물음에 자신 있게 '네'라고 답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고백하건대 나는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일말의 거리낌 없이 '네'라고 답할 자신은 없다.
김정아(52), 그녀는 "제 인생에는 후회가 없거든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내친김에 '당신의 방식(뜻)대로 해(살아) 왔나?'라고 물었더니 "제 방식대로 한 것은 맞아요. '너무 내 방식대로 했나'라는 생각도 하죠"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낮은 톤 느린 말투였지만 분명하고 힘 있는 목소리였다.
봉투 속에 담긴 험담들, "빨갱이가 시민단체를?"
지난 10월 24일 오전, 김정아 안시연(안전한안양시민연합) 대표와 안양에 있는 한 카페 햇살 좋은 창가에 마주 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노란 봉투가 눈에 띄어 무엇인지 묻자 "고소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별일 아니라는 말투였다.
"아파트 동대표로 일하면서 겪은 일인데, 너무 심하게 욕을 하고 제가 대표로 있는 안시연까지 끌어들여 '돈 때문에 시민운동을 한다'는 등 모욕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고소를 결심하게 됐어요. 그냥 두면 주민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질까, 그게 두렵기도 했고요."
봉투 속에 고소장과 함께 증거 자료도 들어 있었다. '아파트 익명 단톡방에 누군가 올린 글'이 증거자료였는데, 얼굴 화끈거리는 내용으로 빼곡했다.
"고유정이랑 거의 비슷한 사람입니다. 1% 진실과 거짓만 이야기하는."
"가라(가짜) 단체, 안양시청에 민원 동참해주세요. 이런 빨갱이가 시민단체 해도 되냐고, 불결하다, 도저히 눈뜨고는 못 봐주겠다."
"5XX동 동대표 머리 흰 미친X 하나 있습니다. 저번에 스치면서 보고 ㅁㅊㄴ인 줄."
"저런 대화가 안 통하는 병X이 있으니 일 처리가 어려운 것도 있죠."
모욕적인 글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배경엔 '아파트 리모델링'이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판단이다. 리모델링에 회의적인 입장인 그를 몰아내려는 의도라는 것.
"이런 글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사람일 거예요. 저를 리모델링 방해자로 오해하고는 그 분노를 이런 식으로 표출한 거죠."
아파트 동대표, 회원 300명이 넘는(인터넷 카페 회원은 1600여 명) 안시연 대표까지 맡아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민운동가 김정아. 하지만 직업이 시민운동가는 아니다.
그는 28년 경력 베테랑 영어 강사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국에 있는 한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여 공부를 한 적도 있다. 그 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영어 교육 전문기관에서 일했고, 지금은 학생 영어 과외와 기업체 강의를 하고 있다.
그가 동대표나 시민운동을 하지 않고 영어 강사로만 살았다면 이렇게 험한 욕을 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고소해야 할 상황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머리 흰 미친X'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월급도 안 나오는 일에 열정을 불태우는 것일까. 이 궁금증이 그를 만나고 싶은 이유였다.
"현실과 타협하는 것으로 비칠까봐"... 설득이 가장 난감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22년 12월. 경기도 안양에 설립 예정인 LG유플러스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15만4000볼트 특고압선 지중화' 문제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 시민들이 전자파 발생을 걱정하며 특고압선 지중화 반대 시위를 벌였는데, 그 앞에 서 있던 게 김정아 대표다.
김 대표는 시민들과 함께 공사 허가를 내준 안양시에 공사 중지를 요청했지만 안양시는 '법적, 절차적 문제가 없는 허가였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시민들은 '절차상 하자가 있어 보인다'며 감사원에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또 특고압선이 얕게 묻힌 구간이 있다며 안양시에 전수조사를 요청했다(관련 기사 :
안양 초고압선 지중화 반대 확산... 집단민원, 주민감사까지 https://omn.kr/224m7 ).
전수조사 결과, 실제 몇몇 구간이 시공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안양시는 LG유플러스에 재공사를 명령했다. 감사에서도 몇 가지 지적사항이 나와 안양시는 감사원에게 '주의'를 받았다. 시민들의 주장이 사실로 증명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공사를 중지시키기는 어려웠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때가 김 대표에게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활동 초기, 데이터센터도 이미 지어졌고 특고압선도 이미 매설된 상태에서 반대 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힘겨웠어요. '되겠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많았고요.
그런데 이보다 더 힘든 순간은 특고압선 제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어요. 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대안을 찾자고 설득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자칫 현실과 타협하는 것으로 비칠까 조심스러웠어요."
김 대표의 고민과 특고압선 지중화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LG유플러스와 대화하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대화는 토론회 등을 통해 이뤄졌다. LG유플러스는 <오마이뉴스>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고압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미미한 수준이라 인체에 큰 해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정아 대표는 "전자파의 유해성으로 인한 불안감도 인체에 유해하다"라고 맞받아쳤다. 이런 식의 공방이 몇 개월간 계속됐다(관련 기사 :
"전자파 우려"-"미미한 수준"... 안양 특고압선 지중화 토론 열려 https://omn.kr/22sca ).
그래도 해결책은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면서 나왔다. 전자파를 차단할 차폐판 설치가 그 해결책. 하지만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았다. LG유플러스가 사람들 왕래가 잦은 구간에 차폐판을 설치하는 것을 전제로 공사 중지 압박을 멈춰 달라 제안했지만, 일부 강경한 시민은 초지일관 '공사 중지'를 외쳤다. 김 대표는 임원진과 함께 시민들을 설득했고 한편으로는 LG유플러스와 '밀당'을 했다. 결국 일부 구간이 아닌 '전 구간에 차폐판을 설치'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안시연과 LG유플러스, 안양시는 15만4000볼트 특고압선 지중화 선로 전 구간에 차폐판을 설치하는 내용이 담긴 협약서에 지난해 9월 서명을 했다. 11개월간의 긴 갈등에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관련 기사 :
안양 특고압선 갈등, 시·주민·LG유플러스 협약으로 마침표 https://omn.kr/25p1h ).
협약식에는 큰 의미가 담겨있다. 전자파와 관련한 갈등을 원만하게 풀어낸 사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각종 공사와 관련한 시민과 업체, 행정 기관 간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번지며 파국으로 치닫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평화적이고 모범적인 갈등 해결 사례로 기록될 일이었다.
"3자(안시연, 안양시, LG유플러스)간 체결한 협약서를 바탕으로 검증된 차폐판을 설치했고, 함의안에 따라 우리나라 전자파 허용기준인 833mG를 훨씬 밑도는 10mG 이하의 전자파가 유지되도록 관리·감독 할 수 있게 됐어요.
이 결과를 통해서 앞으로도 안양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환경이 생긴다면, 모두 하나가 되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차폐판 설치는 올해 10월 초 마무리됐다. 안시연은 차폐판이 설치되는 전 과정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아파트 비리 많다'는 사실 알고 동대표 도전... 안시연 대표까지
영어 강사 김정아의 시민운동은 아파트 동대표에 도전하면서 시작됐다. 김 대표가 사는 아파트는 2018년 안양시로부터 감사를 받아 과태료 처분이 나올 정도로 무더기 지적을 받았다. 이렇듯 아파트에 비리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동대표에 도전했다는 게 김 대표 설명이다.
그는 "이때부터 인생 2막이 시작됐는데, 1막과 다른 점은 여러 사람과 손을 잡고 함께 하는 삶"이라고 말했다.
동대표로 활동하면서 아파트 주변으로 특고압선이 지나간다는 것도 알게 됐고,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시작됐다는 사실도 인지했다.
"2022년 11월 말이었어요. 반대 시위가 열린다는 걸 알고 시위 장소에 가게 됐어요. 단순한 호기심이었고, 제3자 입장에서 그냥 보러 간다는 생각이었어요.
특고압선 매설 '공사중지'를 외치는 엄마들과 유모차에 있는 아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공사에 문제가 없다면서 업체가 '공사 재개'를 외치자 시위자들이 울음을 터뜨렸고, 제 눈에도 눈물이 맺혔어요.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나도 힘을 보태야겠다.'"
안시연을 만나기 전, 그의 인생에서 집회나 시위 같은 것은 없었다. 시민운동 경험도 없고, 대학 시절 데모한 경험도 없다. 이런 그가 집회·시위가 필요한 단체 대표가 돼 결국 승리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대립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합리성이 있었다. 거기에 긍정적인 성격과 현실에 충실하려는 노력, 성실함이 보태져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박수받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저는 큰 계획을 세우면서 살지는 않았지만, 항상 열심히 살아왔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좋았어요. 그래서 저는 인생에 후회가 없어요. 어떤 순간에 내린 제 결정에 만족하고, 제 방식대로 제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고 자신합니다."
그렇다면 '흰머리 미친X'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아파트 동대표와 시민운동에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시민운동이 그런 것 같아요. 안시연 활동을 하며, 제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많은 사람과 함께해냈고,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공익을 위한 일이 결국은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게 시민운동이잖아요.
이게 말도 안 되는 조롱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동대표나 안시연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예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또 힘을 모아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참 큰데, 이 성취감이 힘듦을 상쇄시키는 것 같아요."
이제 인생 2막을 지나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살 생각이냐고 묻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젖은 표정을 짓다가 '생각해보니' 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동안 저 혼자만 열심히 하면 되는 그런 삶을 살았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시민단체 대표로서 다른 사람을 아우르고 챙기는 그런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좀 걱정스럽긴 해요. 사실 그런 경험이 많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는 그런 습관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