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한국 부산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를 위한 마지막 회의(INC-5·이하 5차 회의)가 열립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국제협약의 최종안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현재 국제사회는 개최국으로서 한국에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습니다.정작 한국에서는 '산업 피해 대 환경 피해'·'재활용 대 감축' 등 플라스틱을 두고 날 선 대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일부 쟁점에 매몰돼 플라스틱으로부터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그리니엄에서는 한국 사회의 이러한 대립 구조를 해소하고, 합리적이며 생산적인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 다양한 인터뷰를 기획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각계의 목소리를 듣고, 보다 나은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합니다.[기자말] |
"(플라스틱 생산감축에 대한 논의는) 섀도복싱을 하는 느낌이다. 답답하다." - 이유나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국제협력팀장
국제환경단체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이하 오션)의 이유나 국제협력팀장은 플라스틱 국제협약 관련 국내 논의 현황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습니다.
지난달 29일 그리니엄은 서울 광화문에서 이유나 오션 국제협력팀장, 이세미 브레이크프리프롬플라스틱(이하 BFFP) 글로벌 정책고문,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장을 만났습니다. 3개 단체 모두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대응하는 국내외 환경단체 연대체인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 뽑는 연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이하 5차 회의)'를 맞아 기획됐습니다. 5차 회의는 오는 11월 25일부터 부산에서 열립니다.
활동가들은 플라스틱 문제와 관련해 쟁점은 치열하지만 정작 공론장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각 이해관계자가 서로의 입장도 파악하지 못한 채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어떤 산업계 관계자가 '플라스틱을 모두 없애면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시민단체는 플라스틱을 전부 없애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서로의 입장도 이해를 못 하고 있단 거다."
이유나 팀장은 현 상황을 이같이 평가했습니다. 그는 현 상황이 마치 '섀도복싱'을 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섀도복싱이란 상대가 없는 허공에 대고 복싱 연습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상의 상대를 비판하는 모습을 비유할 때 사용됩니다.
산업계 '75% 생산감축' 무리…환경단체 "합의된 목표 아냐"
현재 플라스틱 생산감축 여부는 협약 내 최대 쟁점으로 손꼽힙니다. 최종 협약문에 플라스틱 생산감축 목표 명시를 요구하는 국가들과 이에 반대하는 플라스틱 생산국·산유국의 대립이 팽팽합니다.
섀도복싱의 모습이 드러난 대표적인 의제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플라스틱 생산 75% 감축'입니다.
일례로 김평중 한국화학산업협회(구 한국석유화학협회) 대회협력본부장은 그리니엄에 '환경단체는 75% 감축을 주장하고 있다'고 토로한 바 있습니다. 그는 당장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목표치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이세미 고문은 국제단체 차원에서 생산감축 수치에 대해 합의된 바는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세미 고문은 "생산감축에 대한 논의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문구에 생산감축을 넣는 것이 제일 첫 번째 숙제"라고 말했습니다.
박정음 팀장과 이유나 팀장 또한 국내 환경단체 사이에 합의된 감축 목표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리니엄이 확인한 결과, 플라스틱 75% 생산감축을 공식 입장으로 내 건 곳은 그린피스 등 일부 단체로 확인됩니다.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총생산량의 75%를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하로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유나 팀장은 "지금 제일 문제는 상호 입장 확인조차 안 되는 상황"이라며 "서로 무엇을 주장하는지에 대한 합의조차 없어서 벽을 보고 싸우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공론장 부족, 시작은 일회용컵 보증금제?
박정음 팀장은 이와 관련해 정부가 공론장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최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환경부 내부 문건을 대표 사례로 언급했습니다.
환경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를 지방자치단체 자율시행으로 선회하는 과정에서 '우군화' 그룹을 적극 활용한다는 내용의 문서입니다. 이른바 여론전 추진 정황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이에 대해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지난 24일 종합국감에서 사과하는 일도 있습니다.
박정음 팀장은 해당 문건을 언급하며 정부가 이전부터 환경단체를 논의의 장에서 배제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간 한국 정부는 "입장이 다르니 얘기가 안 통할 것 같다"며 "판(공론장)을 열지 말자는 것 같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시민사회 입장에서는 후퇴한 미래상이라 하더라도 관련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고 박정음 팀장은 덧붙였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논란이 한국 사회의 플라스틱 전(全)주기 로드맵 부재를 보여준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정부의 로드맵은 2022년 발표됐습니다. '전주기 탈(脫)플라스틱 대책'입니다. 발표 당시에도 폐플라스틱 열분해 등 폐기물 처리에 집중한 것 아니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박정음 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협약에 따르면) 플라스틱 전주기에 대한 관점에서 다회용기·재사용 시스템을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어떤 로드맵도 없다. 다회용기·재사용의 기반이 되는 규제 도입부터 안 되고 있다."
플라스틱과의 이혼? "생각의 전환 필요"
플라스틱 관련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다른 이유로는 막연한 두려움이 꼽혔습니다. 이세미 고문은 "플라스틱은 우리 삶에 너무나 오랫동안 침투해 왔다"며 "플라스틱과의 이혼에 두려움과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로 인해 일부는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 빨리 답을 내놓아라'라는 날 선 대응을 보인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이세미 고문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플라스틱을 없애면 어떻게 할 것이냐가 아니라, 가장 먼저 빠르게 없앨 수 있는 불필요한 플라스틱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 볼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유나 팀장은 플라스틱 없는 시기가 그리 먼 옛날이 아니라는 점을 짚었습니다.
일회용 플라스틱만 해도 최근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점으로 급증했다는 관련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린피스가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팀과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2021년 연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2017년 대비 49.5%나 증가했습니다.
그는 "역사에 더 많은 발자국을 남기기 전에 몇 발짝만 뒤로 가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플라스틱 감축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바꿀 한국의 미래는?
그렇다면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박정음 팀장은 협약이 한국 산업구조 전반의 전환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를 내비쳤습니다. 예컨대 국제사회 흐름에 따라 다회용기·재사용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습니다. 협약 내에서 재사용 시스템 구축을 두고 논의가 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정음 팀장은 "한국 정부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와 생분해 플라스틱을 강조해왔다"며 "(그러나) 협약은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피력했습니다.
이세미 고문 또한 한국 다회용기 시스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드러냈습니다. 해외와 달리 한국은 물류·디지털 시스템 등 다회용기에 적합한 기반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부가 조금만 도움을 준다면 들불처럼 퍼져나갈 잠재력이 있는데 (현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협약이 한국의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부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유나 팀장은 한국 사회가 정부·대기업 주도의 '톱다운(Top-down)' 방식에 익숙하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톱다운 방식은 신속하고 효율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단 장점이 있습니다.
이유나 팀장은 이같은 방식이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서는 매우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플라스틱 문제에는) 광범위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는데 그걸 정부가 끌고 나가는 방식으로는 절대 합의가 어렵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이에 이유나 팀장은 한국 정부에 다음과 같이 주문했습니다.
"사회적 합의, 민주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 혼자 답을 내려고 하거나 모두를 상대하려고 하면 더 힘들다. 대화의 장만 열어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후테크 전문매체 그리니엄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