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글은 대학 비진학자들의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투명가방끈'에서 기고합니다. 투명가방끈은 학력·학벌 차별과 입시 경쟁에 반대하고 능력주의에 저항하며, 대학중심주의에 맞서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글쓴이 이민혜민님은 투명가방끈의 회원입니다.[기자말]
웹소설을 읽다 보면 책 속 등장인물에 빙의하며 시작되는 소설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상적인 삶을 살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소설책 속 세계의 등장인물이 되어 눈을 뜬다. 그리고 엄청난 능력과 선한 품성으로 주변 인물을 감화시켜서, 원작 소설의 원래 결말-보통은 세계 멸망이다-을 바꾸는 데 성공하고 모두가 행복해진다.

통상 제목은 이런 느낌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다?", "주인공으로 빙의했는데 배드 엔딩이 바뀌었습니다". 제목에 이미 결말이 암시돼 있어도 매 화마다 결제하게 만드는 게 작가들의 능력이다. '이랬는데 (중략) 요렇게 됐습니다!' 사이에 촘촘하게 자리 잡은 인물의 갈등과 변화와 성장이, 읽기 시작할 때 느낀 황당함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감동적일 때가 있다.

내 이야기도 그렇다. 웹소설 제목을 짓듯이 요약하면 "대학에 가지 않았는데 (이렇게) 됐다"인데, '이렇게' 자리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항상 고민이었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하기에는 아직 짧게 산 탓이다. 음, 그래도 "대학에 가지 않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까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말이 아니다. 그 사이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들과 작은 깨달음들이 사실 더 중요하다. '대학에 가지 않고 12년을 살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나는 이 한 문장으로는 요약될 수 없는 삶의 서사에 주목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이유

수능 D-3 '의대 합격'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사흘 앞둔 11일 오전 경북 경산시 팔공산 갓바위 사찰에 수능 고득점과 의대 합격 등 소원이 적힌 연등 아래에서 한 시민이 기도하고 있다. 2024.11.11
수능 D-3 '의대 합격'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사흘 앞둔 11일 오전 경북 경산시 팔공산 갓바위 사찰에 수능 고득점과 의대 합격 등 소원이 적힌 연등 아래에서 한 시민이 기도하고 있다. 2024.11.11 ⓒ 연합뉴스

나는 왜 대학 비진학 청년이 되었을까? 맥 빠지는 대답일 수 있지만, 사실 나는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학교생활을 하는 12년 동안 대학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에야 '대학을 꼭 가야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반년 정도 탐색의 시간을 가졌다. 주변 고3 친구들을 인터뷰하고, 언론사 특강에 참석해서 질문도 하고, 관심 있는 업계 현역자의 책을 읽고 이메일로 질문을 보낸 적도 있다.

그러면서 '19세에 대학에 바로 가지 않는 사람도 꽤 많구나, 대학을 꼭 가야 하는지 조금 더 생각해 보자' 결심했다. 나에게 대학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계속 질문하게 만드는 존재였고,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한 로망이기도 했다. 열아홉 살에는 한 달에 한 번 씩 '대학 가야 하나?' 질문했고, 고민 끝에 안 가겠다고 결심한 이후에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시원스럽게 '올해는 가야겠다!'라고 답하게 될 날이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그러다 12년이 흘렀다. 30대가 된 지금 내가 아는 세상은 그때 내가 알던 세상보다 더 넓다. 대학을 세 번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예순 살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4년제 대학만 있는 것도, 종합 대학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알게 되어 가장 다행이라고 생각한 사실은, 대학에 입학한다고 모두가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학 입학은 정말 입학일 뿐,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결정에는 또 다른 선택지들이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 결정 역시 번복될 수도, 중단될 수도, 생각보다 더 좋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더 마음을 편하게 먹고, 나를 위한 갭이어(Gap Year)를 3년 정도 보냈다. 지금 아니라 언제든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러다가 나 같은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청소년 교육 단체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잠깐의 문화기획 일을 거쳐 지금의 사단법인 성북청년시민회를 설립하며 그렇게 사회에서 약 10년을 보냈다.

스무 살, 스물 한 살 때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면, 대학생이냐는, 몇 학번이냐는 질문을 익숙하게 들었다. 대학을 안 다닌다고 하면 감탄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굳이 대학을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것인지 확인하려는 사람이 있어서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있었고, 부모님 반응을 캐묻는 사람도 많아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제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 스몰토크로 물어보는 사람은 일 년 내내 한 명도 없고, 대학교 특강을 해달라고 섭외가 들어왔을 때조차도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내가 다닌 대학을

 글쓴이 이민혜민씨
글쓴이 이민혜민씨 ⓒ 이민혜민 제공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대졸을 워낙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나를 보호해 준 걸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학이 인생에서 영원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란 또 다른 증명이다. 고교 졸업이 마지막인 내 이력서를 제출해도, 잡혀 있던 강의가 취소된 적은 없었다. 적어도 공공기관에선 학력보다 경력을 더 우선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현재의 내 일을 정말 사랑한다(성북청년시민회를 설립한 뒤 사무국장으로 근무 중이다). 청년 세대를 꾸준히 만날 수 있는 일이라 그렇다. 동시대 사람들이 무슨 걱정을 하며 사는지, 어떤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지 아는 것은 내게 무척 중요하다. 가끔 그들을 만나면, 나는 "요즘 청년들의 가장 핵심적인 고민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라고 꼭 묻는다.

위원회나 공공기관 등에 가면 어른들을 만날 때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꼭 내게 요즘 젊은이들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물어 참 곤란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잘 모른 채 대변하고 싶지 않으니 최대한 솔직하게 답해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요즘엔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까', '하고 싶은 게 없다',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의미를 못 찾겠다' 같은 청년들 답변이 더 자주 보인다.

생각해 보면 이 사회가 제시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시나리오가 있긴 하다. 그러나 청년들이 그대로 살 순 없다는 것, 혹은 살기 싫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직 청년들이 자기 스스로를 탓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시나리오가 낡은 게 문제였다는 사실을 모두 깨닫게 될 것이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서 오는 혼란이 청년들의 답 없는 질문들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도 숱하게 던졌던 질문이다. 사회가 짜 놓은 시나리오와 진학 여부도 직장의 형태도 맞지 않다 보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꼭 증명하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확신을 주고 싶었다. 해서 블로그를 개설해서 글을 쓰고, 일기장에 글을 쓰고, 발표로 경험을 나누고, 모임을 열었다. 그러면서 지금 하는 활동들이 자리를 잡아갔다.

지금 나는 내가 관심 지닌 의제를 토대로 사업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행사나 교육을 진행하는 일을 한다. 저녁 시간엔 동네에 열리는 모임에 가거나 집안일을 하고, 주말에는 독서 모임을 하고, 가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서 응원봉도 흔든다. 아무 핑계로 파티를 열어서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고, 친구나 동료들이 힘든 일에 처해 있으면 같이 분노하고 연대하러 여기저기 다닌다.

그 와중에 찍은 영상으로 브이로그도 만들고, 거기서 출발한 생각들을 담아 팟캐스트도 만들었다. 이렇게 살라고 정해준 사람도 없고, 이렇게 살겠다고 계획한 적도 없지만, 내가 어떨 때 웃게 되는지를 자주 고민한다.

그렇게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살펴 보고, 실천해 보려 노력하는 과정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이렇게 지내다가 어쩌면 언젠가는 대학에 갈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전과 달리 '대학 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더는 하지 않게 되었는데 말이다.

삶이 계속되는 만큼 질문도, 가능성도 계속된다. 그중에는 내가 대학에 진학하는 가능성도 있을지 모르고, 지금 직업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이 엔딩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냥 계속 쓰고, 계속 말하고, 계속 기념하고, 계속 사랑하고 웃고, 그렇게 살 것 같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에게는 삶이 계속된다는 것이 불행보다는 다행에 가깝다. 12년 전, 그때 바뀐 서사의 흐름 덕분일까? 일단 그렇게 믿어보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사단법인 성북청년시민회 사무국장이다. 대학 비진학 이후 스스로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만든 청년진로연구모임 4.2LAB(사이랩) 활동을 통해 청년 갭이어 정책을 제안하였고 서울시 청년인생설계학교가 만들어지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지역에서 만난 동료의 초대를 받아 청년의 시민 참여를 위한 비영리 사단법인 성북청년시민회를 공동창립했다. 직업을 물으면 시민단체 활동가라고 설명하지만, 자기 삶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것이 본업이라 여긴다. 


#투명가방끈#대학#수능#비진학자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투명가방끈은 학력·학벌차별과 입시경쟁에 반대하고 능력주의에 저항하며, 대학중심주의에 맞서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활동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