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공동과제인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 앞에 민의 주체역량으로 새로운 생태계 이루고자 2023년 살림학연구소가 태어났다. 그 길에 동참하는 개인과 단체가 모여 지난 10월 3~6일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를 열었다. 그 자세한 이야기를 살림꾼 주제발표, 강연 등으로 나눠 연재한다. 다섯 번째는 살림꾼 주제발표 '청소년 상담'이다. 살림학연구소 일 살림꾼(연구원)이 함께했다.[기자말] |
청소년 관계의 현실... 단절로 이어지는 또래 문화
여기 '살림이'라는 청소년(푸른이)이 있다. 살림이는 친구 '파랑이'가 평소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 기분이 나빴다. 그 마음을 '보라'라는 친구에게 털어놨다. 그러자 보라는 파랑이에게 이 말을 전했고 화가 난 파랑이는 살림이가 뒷말한다는 소문을 냈다. 그날부터 살림이는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못한 채 혼자가 됐다.
다소 극단적인 듯하지만 교실 안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 배경에는 서로 구분하고 배제하기 익숙한 '무리짓기' 문화가 있다. 소통 과정에서의 작은 오해가 단절과 소외로 이어지는 경험은 청소년에게 오래도록 잊지 못할 고통이 된다.
문제는 학교와 부모가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회복'이 아닌 '처벌'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어떤 종류의 갈등도 '학교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법적 싸움까지 치닫는다. 사과와 소통은 없고 낙인과 보복만 있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에 받은 자료를 보면, 실제 '학폭위' 처분에 불복해 제기된 행정소송은 2021년 255건에서 지난해 628건으로 늘었으며, 그중 가해학생의 소송 건수가 피해학생보다 4배 높았다.
관계 회복의 본질인 '연결'을 돕는 청소년 상담
그렇다면 다시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 청소년이 관계의 단절을 넘어 행복하게 지낼 방법은 무엇일까. 홍천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청소년 상담을 이어오는 살림학연구소 일 살림꾼(연구원)은 "끊어진 관계에 고통받던 한 생명이 주변과 다시 이어져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생명이 기존에 관계 맺어온 생태계 자체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명은 개체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어우러지며 사는 게 본질이에요. 그러나 관계가 하나둘씩 끊어지면 그때부터 삶에 고통이 찾아옵니다. 푸른이(청소년) 상담은 관계를 끊어내는 힘 앞에 고립됐던 한 푸른이가 관계를 회복하고 피해자 정체성에만 머물지 않도록 연결과 소통을 돕는 일이에요. 어두운 얼굴로 상담실을 찾는 푸른이들이 이후에 밝은 얼굴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상담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 할 수 있지요."
상담 현장에서는 청소년이 스스로와 주변과 소통할 힘을 조금씩 늘려가도록 돕는다. 소외됐던 경험으로 다시 누군가와 관계 맺기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돕고, 작은 지점부터 관계를 회복해가는 여정을 함께 이어가는 방식이다.
일 살림꾼은 "특히 한 푸른이(청소년)가 친구뿐 아니라 부모나 교사, 주변 어른들과의 관계까지 통합적으로 회복하는 방향이 상담의 핵심"이라고 지난 상담 경험들을 나눴다.
'일시적 만남' 상담의 한계... 일상적 관계로 풀어간다
하지만 청소년 상담을 이어오며 마주하는 한계도 있었다. 기간을 설정하고 치료를 목적에 둔 인위적인 만남이라는 점, 상담이 상품으로 소비돼 신속한 해법 제시에 치우친다는 점, 청소년은 상담을 잘 마무리했지만 주변 환경은 변하지 않아 문제가 반복된다는 점 등이 있다.
이에 일 살림꾼은 "상담보다 더 지속가능하고 힘 있는 삶이 있는데 바로 마을 살림터"라며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관계 안에서 치유하고 연결성을 회복하는 흐름이 상담보다 더 자연스럽고 근본에 가깝다"고 말했다.
서로 지켜주는 관계망에서 소통을 배우는 청소년들
일 살림꾼은 강원 홍천마을에서 지내는 청소년들과 매주 '여름숲 두레'로 모이는 이야기를 나눴다. 두레는 밝은누리 마을 살림터의 기본 관계망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들으며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모임이다. 상호적인 '상담'이 지속해서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마을에서 자라는 푸른이(청소년)들은 '구분하고 차별하는 힘'에서 보호받는 경험을 토대로 서로 지켜주며 지낸다"고 말했다. 세상의 힘으로부터 대안을 만들어가는 마을 살림터가 있기에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일 살림꾼은 "마을 푸른이들이 매주 두레를 통해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여러 감정과 생각에 스스로 귀 기울이는 모습에 놀랄 때가 있다"며 "갈등이 생겼을 때는 대화하거나 마을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직접 풀어가려는 용기를 보며 뿌듯해진다"고 말했다.
"상담(相談)은 서로 대화한다는 뜻이지요.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과 잘 소통하며 연결된 관계로 사는 삶 자체로 우린 서로 살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살림학연구소 누리집(www.saallimgil.org)에도 실립니다.
*살림학연구소
www.saallimgil.org
cafe.daum.net/saallimg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