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법정에서 검사를 쫓아낸 초유의 사건을 두고 검찰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명백히 복수 직무대리에 1일 직무대리까지 중첩됐기 때문에 벌어진 일임에도, 검찰이 잘못을 인정하거나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보이는 대신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검찰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을 다루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1형사부 허용구 재판장은 지난 11일 공판에서 정승원 검사에게 퇴정 명령을 내렸다. 직접적인 사유는 다른 검찰청 소속인데 중복·1일 검사 직무대리 발령 통해 위법하게 이 사건 공판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관련기사]
'성남FC' 사건 재판부, 주임검사 퇴정 명령 ..."1일 직무대리는 위법"). 즉시 반발하며 재판장 기피 신청을 한 검찰은, 사흘이 지난 14일에도 대검찰청과 성남지청에서 허 재판장이 위법 부당한 재판 진행을 했다고 다시 비판하는 입장을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검사의 직무관할을 규정한 검찰청법 제5조와 직무대리를 규정한 검찰근무규칙 제4조의 해석을 둘러싼 다툼이지만, 바탕에는 검사의 '직관'을 둘러싼 시각 차가 있다. 더 확장하자면 대표적인 검찰개혁 방향인 수사-기소 분리와도 맥이 닿는다.
소속은 부산지검·
1개월씩 서울중앙지검·
하루씩 성남지청... 목적은 하나
검사는 수사 검사와 공판 검사로 나뉘는데, 말 그대로 전자는 '수사 및 기소'를 담당하고 후자는 '공판'를 맡는다. 그런데 기록이 방대하고 복잡한 사건의 경우에는 수사검사가 직접 공판업무까지 맡는데, 이를 '직관'이라고 한다. 이럴 경우 검사는 1~2년 단위로 주기적으로 다른 검찰청으로 전보되기 때문에, 앞서 맡았던 공판업무를 계속 한다면 현재 소속이 아닌 다른 검찰청 업무를 맡는 모양새가 된다.
검찰청법 5조에 "검사는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속 검찰청의 관할구역에서 직무를 수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은 검사 직무대리 발령을 통해 수사검사가 검찰청을 옮기더라도 해당 사건의 공판 업무를 계속 맡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정승원 검사의 경우는 그중에서도 상황이 좀 심한 경우였다. 허 재판장은 정 검사가 단순한 직무대리가 아니라 1일 직무대리, 복수 직무대리인 점을 지적했다. 정 검사는 2021년 2월부터 2년 동안 성남지청 검사로서 성남FC 사건을 수사했다. 이후 검찰은 성남FC 사건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의 다른 사건과 묶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후원금을 지급한 혐의를 받는 기업 경영진 등은 성남지원에 공소제기가 이뤄졌다.
2023년 2월 인사에서 부산지방검찰청에 전보된 정 검사는 그해 9월부터 1개월 단위로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직무대리 발령을 받았다. 또한 같은 해 5월부터는 성남지원 재판이 있을 때마다 1일 직무대리 발령을 받았다. 현재 정 검사가 공판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법원은 성남지원을 비롯해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등법원, 수원고등법원까지 4곳이다. 담당 사건 수로 따지면 5건에 달한다.
허 재판장은 퇴정 명령 결정문에서 "검사 정승원은 부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다시 1일 직무대리 발령을 통하여 그 관할구역을 무려 3곳의 검찰청으로 더 확장시켰는데, 이는 소속 검찰청의 관할구역에서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한 검찰청법 제5조를 무력화 또는 형해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정상적이라 보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정 검사는 "수사검사가 공판을 직접 수행하는 직관의 경우 여러 개의 공판을 수행하여 오랜 관행"이라고 항변했지만, 허 재판장은 "관행이 불법이라면,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수사검사의 '직관' 문제
이창민 변호사(민변 사법센터 검경개혁소위원장)은 "허 재판장은 예외의 예외를 통해 수사검사의 공판 업무 수행(직관), 나아가 수사-기소 분리 원칙을 위반하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사-기소가 분리되지 않으면 검사의 객관의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지적은 일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검사의 객관의무는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뿐만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법정에 제출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대법원은 지난 2002년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은폐한 검사의 행위를 위법하다고 보아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고, 이후 이 판례가 확립됐다.
검찰도 이번 사건에 수사검사의 직관 문제가 깔려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대신 그 필요성과 효율성을 강조한다. 14일 성남지청은 "수사검사가 공판에 관여하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 실체진실 발견, 신속한 재판의 원칙이라는 헌법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남지청은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나 이태원 등 대형 참사 사건 등을 예로 들며 "재판장의 이번 결정은 수사 검사의 공판 관여를 사실상 봉쇄하는 것으로 이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입장문을 낸 대검은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야당 대표 등의 위례, 대장동, 성남FC 재판 및 수원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전 경기도 부지사 재판에서도 변호인들이 직무대리 발령의 적법성을 문제 삼았으나 재판부들은 모두 이를 배척했다"라고 지적했다.
직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수사검사의 직관 문제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검찰 내부에도 문제의식이 있었다. 지난 2021년 김오수 검찰총장은 검찰개혁 방안으로 수사검사의 직관을 최소화하는 '직관 허가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주요 사건을 수사한 특수부 검사들의 반발로 한 달 만에 사라졌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는 "수사 검사가 공판에 관여하는 게 원칙"이라며 "수사 검사가 자신이 수사·기소한 사건 재판에 일일이 들어갈 수 없으니 공판검사제도를 만든 것"이라며 직관 적극 옹호론을 폈다. 이 교수는 "검사동일체 원칙 아래에서 공판업무를 어떤 검사가 하든 관계가 없다"며 "사건의 실체 파악이 더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을 맡았던 검찰 출신 오선희 변호사는 "직관이 필요한 사건이 분명히 있고 오히려 장려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법원에 가면 판사가 하루에 몇 번씩 '공판 검사님, 수사 검사님한테 확인 좀 해주세요'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다만, 이번 퇴정 명령으로 직무대리가 법적으로 정비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지낸 한동수 변호사는 "범죄자 필벌을 위해서는 직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수사-기소 분리를 반대하는 핵심 논거"라면서 "직관을 하게 되면 수사팀의 성과를 위해 어떻게든 유죄 만들려고 하고 객관의무를 준수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직관은 폐지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