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한국 부산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를 위한 마지막 회의가 열립니다. 175개국 대표단에서 약 3,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그리니엄에서는 이에 앞서 10월 한달간 다양한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그 결과, 플라스틱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플라스틱 순환시스템 구축을 위한 투자와 혁신이란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그리니엄에서는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선도사례를 발굴하고자 합니다. 원료 생산부터 ▲소비재 ▲포장재 ▲수거 ▲재사용 ▲재활용 등 플라스틱 밸류체인 전반의 혁신 사례를 소개할 계획입니다.[기자말] |
"한국은 문화적으로 (기업이) 정확한 이행 방안이 없으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다. (이니셔티브 참여까지는) 장벽이 두껍지만 한번 약속했으면 잘 이행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전수원
세계자연기금(WWF)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팀장은 플라스틱 감축 이니셔티브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경향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리니엄은 지난 14일 서울 종로 한국WWF에서 전 팀장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전 팀장은 플라스틱 사용 감축을 위한 기업 다자간 이니셔티브 '팩트(PACT·Plastic ACTion)'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팩트는 기업들의 제품 생산 단계부터 디자인·포장재 등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중장기적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한국에서는 2021년 시작돼 현재까지 14개 기업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리니엄은 25일부터 한국 부산에서 열릴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아래 5차 회의)'를 앞두고 산업계의 플라스틱 감축 노력을 듣기 위해 WWF와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4년간 기업들의 감축목표를 재정립하고 공동행동으로 공표하면서 더 많은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고 전 팀장은 말했습니다.
이 가운데 더 많은 기업이 움직이고 힘을 받기 위해 이제는 자발적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고 그는 토로했습니다.
"이제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처럼) 국제 수준의 규제가 만들어져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전 팀장의 말입니다.
"한국은 선언을 이행하지 못 했을 경우 염려가 크다"
1만 8509톤. 팩트 참여 기업이 2023년 한해 감축한 플라스틱 양입니다.
"팩트는 개별 기업의 감축목표와 성과를 수립·평가합니다. 단, 성과 발표는 공동의 감축량으로만 공개됩니다. 개별 기업의 감축 성과는 각 기업이 동의할 경우에만 공개됩니다. 올해 구체적인 감량 수치를 공개한 기업은 ①아모레퍼시픽(1900톤) ②LG생활건강(1459톤) ③풀무원(348톤) ④매일유업(229톤) 등 4곳입니다."
개별 감축 성과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 팀장은 한국 기업의 문화적 특성이 고려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기업은 (목표를) 선언했는데 이행하지 못 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비난에 대한 염려가 내부적으로 굉장히 크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뚜렷한 이행 방안이 없어도 선언을 먼저 하고 방안을 찾아나가는 해외와는 다른 점입니다.
실제로 코카콜라는 2009년 야심찬 재활용 목표를 발표한 뒤 3차례 목표·시점을 수정한 바 있습니다.
즉, 팩트는 한국 기업들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플라스틱 감축에 대한 의무감을 부여하는 장치란 것이 전 팀장의 설명입니다. "개별적으로 (성과를) 공개하지는 않지만 기업의 감축 과정을 제3자가 모니터링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롯데칠성 2030년 30% 감축 선언... 대표기업 유의미한 메시지"
전 팀장은 최근 공개적인 감축목표를 선언하며 업계에 메시지를 전달한 사례가 있다는 점을 소개했습니다. 지난 9월 롯데칠성이 팩트에 가입하며 2030년까지 플라스틱 사용량을 2023년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공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전 팀장은 "음료업계 대표기업이 참여하면서 목표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업계에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며 "동종업계 기업들도 참여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향후 목표로 더 많은 기업이 가입해 기업 간·부문 간 협력을 만들어낼 수 있길 바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참여 기업이) 14개 기업으로 조금 부족해 보일 수 있다.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해 시장 전반으로 확대되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례로 그는 생수업체 산수음료와 국내 대표 호텔 브랜드 워커힐 간의 협업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두 기업이 협력해 호텔에서 수거한 일회용 생수병을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든 캠페인입니다.
전 팀장은 팩트 가입사가 자체적으로 협력을 만들어 낸 사례라며 이같은 협업이 더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티끌 모아 태산, 이제는 국제적 규제 필요"
"기존에는 그 작은 부분도 없애지 못 하고 있던 게 현실이었다. 기업 1곳에서 10곳, 100곳, 1000곳으로 가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티끌 모아 태산'으로 쉽게 감축할 수 있는 부분을 달성하고 그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자체 감축 노력이 무라벨·경량화 등 쉽지만 '작은 성과'에 국한된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 팀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그마한 성과라도 모두의 힘으로 모이면 의미가 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는 향후 제품 설계 변경 등 감축 노력이 진전될 필요성에는 공감을 표했습니다. 동시에 이를 위해서는 폐기물 수거·분류 등 다운스트림의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재생원료 도입만 하더라도 업계에서는 수급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전 팀장은 전했습니다.
그는 향후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이와 관련해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내비쳤습니다. 협약이 지속가능한 설계부터 수거·처리까지 플라스틱 전주기를 다루는 만큼 기업들이 동참·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가장 큰 목표는 법적 구속력"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논의 추세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전 팀장은 "4차 회의(INC-4)까지만 해도 협약이 흐지부지될 수 있겠다는 상황들이 많이 보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WWF 차원에서도 협약의 목표가 많이 순화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제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약이 달성되는 게 가장 큰 목표"라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WWF 차원에서 제시하는 협약의 필수 요소 4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유해 플라스틱·화학물질 단계적 퇴출 ②무독성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구속력 있는 국제 제품 설계 조건·시스템 구축 ③시스템 전환에 충분한 재원·자원 확보 ④이행 조치 강화를 위한 의사결정 구조 확립 순입니다.
전 팀장은 협약이 성안되지 못하더라도 위 4가지 요소에 대한 각국의 의사가 강하게 표명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을 핵심 그룹·국가가 표명하면 이후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고 본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국제협약서 대중 공감대 충분... 기업 관심도 증가"
그럼에도 전 팀장은 플라스틱 규제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대가 '올라올 만큼 올라왔다'는 점을 피력했습니다.
2023년 WWF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한국 사회의 환경 인식 조사' 결과, 한국인이 가장 분노한 환경문제로 플라스틱이 꼽힌 바 있습니다. 유튜브 댓글 데이터를 감성분석한 결과, 가장 부정적 키워드로 플라스틱이 선정된 것입니다.
올해 4월에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많은 사람이 강력한 협약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해 화학물질 금지·생산감축 등 8개 규제 조항에 대한 설문에서 80% 이상의 응답자가 해당 조항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도 나름의 진전은 있는 상황이라고 전 팀장은 말했습니다. 최근 '글로벌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비즈니스 연합(BCGPT)'을 소개한 이후 가입을 고려하는 기업들이 증가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BCGPT는 WWF와 엘렌맥아더재단(EMF)이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성공적 구현을 위해 출범시킨 산업계 연합체입니다.
현재 한국 기업으로는 블랙야크·H201·유익 컴퍼니 등이 가입돼 있습니다. 제주항공·풀무원·SK매직 또한 가입을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후테크 전문매체 그리니엄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