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이 즉사한 교통사고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했다. 그동안 받은 연락은 반려견의 '가격'을 묻는 가해자 측 보험사의 전화뿐이었다. 피해자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이 같은 일이 지속되는 이유는 여전히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 법 때문이었다.
황아무개(29)씨는 지난 13일 오전 서울 은평구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70대 운전자가 탄 차량의 인도 돌진으로 반려견 '무무'를 잃었고, 본인도 다쳤다. 사고 이후 운전자의 후속 대처가 매우 미진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이 사건이 보도로 이어지면서 공분이 이어졌다.
이날 피해를 입은 황씨는 허리디스크와 뇌진탕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 또한 인도 돌진 사건의 피해자이지만 반려견을 잃은 슬픔이 더 크다. 황씨는 19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서울 관악구 인근에서 만나 갑작스럽게 반려견을 잃은 고통을 털어놓았다.
"자연 사랑했던 친구, 햇볕도 보고 싶지 않아"
"햇볕을 보고 싶지 않아 (입원 중) 병원 커튼을 닫아두었다가 어제(18일) 오랜만에 외출했다. 무무는 파란 하늘과 햇볕, 낙엽이 바람에 굴러가는 현상 같은 자연이 주는 것을 사랑했던 친구였다. 무무를 키우면서 나도 자연 속에서 오는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걸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사라져서 그게 가장 힘들다. 한순간도 무무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황씨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오늘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무무랑 산책하는, 그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고로 입원해 치료를 받고, 무무의 사진을 보면서 운다"라며 "무무와 돌아다니던 기록이 핸드폰에 여전히 남아있다. 함께 산책했던 곳이나 사고가 났던 현장과 비슷한 인도나 구조물만 봐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황씨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공개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그는 "반려견이 물건으로 취급받는 현실 속에서, (가해자 쪽) 보험사에서는 무무를 분양받았는지(구매했는지) 여부를 먼저 물었다"라며 "내게는 보험료를 책정하기 위한 질문으로 들려 기분이 나빴고,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운전자의 사과 연락 또한, 일주일이 지났지만 없는 상태다.
황씨는 "무무의 죽음을 계기로 '동물은 물건이 아닐 수 있도록' 민법이 개정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앞으로 같은 피해를 입을 분들이 없었으면 한다"라며 "(바뀌지 않은 법 때문에 대한민국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에 머물고 있다"라고 전했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해당 운전자 대한 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다. 은평경찰서 관계자는 19일 오후 <오마이뉴스>에 "4~5일 정도 시간을 두고 피의자(운전자), 피해자 모두 일정을 잡고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금씩 변하는 판결, 그럼에도...
사고 이후 동네생활 커뮤니티 '당근'에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주민들이 남긴 글에는 "(운전자가) 차 안에 한참 있다가 나오더니 옷 탁탁 털고 당황한 기색 전혀 없이 한동안 여자 분 쪽 쳐다보더니 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피해 여성 분의 엄청난 상처와 트라우마가 걱정" 등의 내용이담겨 있었다.
김소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동물권소위원회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는 19일 <오마이뉴스>에 "사람이 죽었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법적으로 동물은 물건이다 보니 별 거 아닌 것처럼 취급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지난 2021년 10월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내용을 신설하는 민법 98조 개정안을 발의했고, 현 22대 국회에서도 같은 취지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가 '다양한 종류나 관리 형태의 동물에 대해 일률적으로 물건성 여부를 규율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법 개정에 반대('신중검토' 의견)하고 있어 국회 통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민법 개정은 현재 동물권 운동에 있어서 제1의 과제로 꼽힐 정도"라며 "아직 물건이다 보니 (반려동물 사망의 경우) 법적으로는 '대물(물건)' 배상 기준에 따라 '시가(市價)'를 기준으로 배상해주는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다만 이러한 구조에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 법원이 교통사고를 당한 반려견의 치료비를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하거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지난 2018년 대전지방법원은 "반려견에게 상해가 발생할 경우 보통의 물건과 달리 그 교환가격보다 높은 치료비를 지출하고도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라며 "반려견이 상해를 입음으로 인해 그 소유자인 피고가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될 것임은 교통사고를 일으킨 불법행위자 또한 알았거나 알 수 있는 경우"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또한 2019년 "반려견은 민법상으로는 물건에 해당하지만 감정을 지니고 인간과 공감하는 능력이 있는 생명체로서 물건과는 구분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라며 "반려견주는 반려견과 정신적인 유대감을 나누고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인정하고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 변호사는 "반려동물이 상해를 입거나 죽는 사고가 있었을 때 과거에는 손해배상이나 위자료 등이 크게 고려가 안 됐다. 하지만 최근 판례를 보면 판결문에 '보호자에게는 (반려동물이) 가족이나 다름 없다'는 문구가 나오는 등 법원도 현실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다만) 위자료 등이 턱없이 낮은 게 사실이라 현실화 하기 위해서 민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