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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치앙라이로 떠날 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발사를 앞둔 로켓 마냥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느낌입니다. 마음으로는 발사대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인데 실제로는 무사 태평으로 지냅니다. 그것은 내 성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추위를 피해 남쪽 나라로 가는 피한 여행이 이제는 연례 행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다섯 번의 겨울을 외국에서 보냈습니다. 남편이 퇴직한 그해부터 겨울이면 남쪽 나라로 갔으니, 이제는 겨울을 동남아에서 보내는 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젊은 시절에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생활입니다. 그때는 애들 키우느라 바빴습니다. 이제 애들은 다 자라 결혼하고 각자의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집을 비우고 오래 여행을 가도 걸릴 게 별로 없습니다.

 장기 여행 준비물 목록
장기 여행 준비물 목록 ⓒ 이승숙

떠날 날을 한 달 여 앞두고 부터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 예보를 보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은(16일)은 비 올 확률이 60%였고 최저 기온은 9도에 낮 최고 기온은 19도였습니다. 그 다음 날인 일요일에는 기온이 확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았습니다. 어제(19일) 아침에는 얼음도 얼었습니다. 마당에 나가보니 돌 절구에 받아둔 물에 살얼음이 얼어 있었습니다.

동남아 겨울살이, 필요 물품 챙기기

우리가 치앙라이로 떠나는 11월 25일은 최저 기온이 3도에 낮 최고 기온은 13도일 거라고 기상대에서 예보했습니다. 이 정도 기온이면 굳이 남쪽 나라로 떠날 이유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날이 추워야 남쪽 나라로 떠나는 맛이 날 텐데 그렇지 않으니 마치 억지 춘향 격으로 떠밀려 여행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떠날 날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비로소 준비물들을 챙깁니다. 한두 번 짐을 꾸려본 것도 아니니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작년의 경우에는 여행 떠나기 하루 전에 준비물들을 챙기기도 했습니다.

옷과 상비약, 신발과 모자 등을 맨 먼저 챙겼습니다.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작은 우산도 하나 넣었습니다. 밥도 해 먹을 생각이니 된장이며 고추장 같은 것도 가져가야 합니다. 김이며 황태포, 건미역 같은 것도 가져가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그 외에도 생각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되도록 간소하게 챙겨서 가는 게 그동안의 우리 여행 방식이었습니다. 두세 달 씩 외국에서 생활하는 장기 여행이었지만 우리의 짐은 약소했습니다. 이동할 때 편리하도록 배낭을 둘러메고 떠났으니 자연 짐을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좀 다른 마음이 듭니다. 이제 우리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만 머무를 생각이라서요. 그러니 가져가야 할 것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국의 최북단 전원 도시인 치앙라이는 피한지로 참 좋은 곳입니다. 1월 최저 기온은 15도 내외이고 낮 최고 기온은 27도에서 30도 쯤 입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데다 근처에 온천도 여러 곳이 있습니다. 게다가 치안도 불안하지 않고 물가까지 저렴하니 피한지로는 최고의 지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살얼음이 얼었다.
살얼음이 얼었다. ⓒ 이승숙

치앙라이에서 지내는 동안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챙기다가 문득 남겨두고 가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였습니다. 가져갈 것보다 남겨두고 가는 게 더 중요한데 저는 가져가야 할 것에만 마음을 두었습니다.

시골 집이라 챙겨야 할 게 많습니다. 보일러며 수도가 얼어 터지지 않도록 잘 건사해 놓고 가야 합니다. 키우는 동물들도 많습니다. 꿀벌은 겨울 동안 활동하지 않으니 방한에만 신경 써주면 되지만 개와 고양이 닭은 날마다 사료를 주고 마실 물도 챙겨줘야 합니다. 지인에게 부탁하고 가지만 그래도 사료를 충분히 사놔야 합니다.

나를 잊지 마세요

집과 동물 외에도 살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여행 다니며 살 수 있는 건 좋은 이웃들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그 분들과는 오래 알고 왕래하는 사이입니다. 그러니 서로의 형편도 잘 압니다. 그 분들과의 시간을 만듭니다. 며칠 전에도 집으로 지인들을 초대해서 밥을 먹었습니다. 가마솥에 고아둔 사골 곰탕으로 밥을 먹는데 남편이 그럽니다.

"봄에 돌아왔을 때 모른 척 하시면 안 됩니다. 물망초 사랑입니다."

그 말에 우리는 와르르 웃었습니다. '나를 잊지 마세요'라니, 얼마나 재미있고 위트 있는 말입니까.

 형제들에게 고구마와 얼린 사골 곰탕을 보냈다.
형제들에게 고구마와 얼린 사골 곰탕을 보냈다. ⓒ 이승숙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뜻을 지닌 식사 자리를 여러 번 마련 했습니다. 내일도 또 좋은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글쓰기 모임' 회원들과 만납니다. 글과 마음을 나누는 사이라서 더 특별하게 마음이 가는 사람들입니다.

글쓰기 모임 회원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뭐가 좋을까 생각합니다. 꿀벌을 치니 집에 벌꿀이 있습니다. 꿀을 작은 병에 담아서 드릴까요? 아니면 사골 곰탕이 더 좋을까요?

날이 추우니 사골 곰탕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사골과 우족을 사와서 가마솥에 넣고 푹 고았습니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넣고 얼려두었는데, 내일 나갈 때 챙겨 가야겠습니다.

내 선물을 받고 좋아할 지인들의 얼굴이 그려집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물망초 사랑'이 다시 한 번 생각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동남아겨울살이#태국치앙라이#피한여행#물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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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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