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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흥 팔영산 능가사
고흥 팔영산 능가사 ⓒ 이완우

지난 14일, 여수 다도해 해상공원 지역의 낭도 주위 여러 섬을 낭도 유람선으로 해상 관광을 하고, 여행의 다음 목표지인 고흥 팔영산(八影山, 609m) 능가사(楞伽寺)를 찾아갔다. 바다 위로 교량을 건너며 연결된 섬섬 백리길을 차량은 상쾌하게 달렸다. 낭도와 적금도를 잇는 오렌지색 아치다리를 건넜다. 멀리 팔영산이 보인다. 저 팔영산 넘어 서북쪽에 천년고찰 능가사가 있다.

여행은 이동하는 경로에서 차창으로 마주하는 뜻밖의 풍경도 흥겹다. 팔영대교를 건넜다. 이 다리는 여수의 적금도와 고흥의 육지를 연결하는 연륙교로서 현수교 주탑 높이가 138m이고, 다리 길이가 1,340m에 이르러 다도해를 늠름하게 건넌다.

이 팔영대교는 차도 옆에 인도가 잘 되어 있다. 날씨가 좋으면 이 다리를 걸어서 건널 수도 있는데, 수려한 다도해의 풍경 속의 다리 위에서 바라보면 신기루처럼 아련하게 펼쳐진 팔영산의 자태는 한 폭의 그림이라고 한다.

팔영산 능가사에 도착하였다. 능가사 가람에서 팔영산 능선에 길게 병풍처럼 펼쳐진 여덟 봉우리가 예사롭지 않은 기상이다. 능가사는 평지 가람인데, 멀리 배경으로 우뚝 솟은 팔영산은 가파른 연봉이어서 색다르게 대조되면서도 잘 어울리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능가사 가람에 완도호랑가시가 가시를 돋우고 붉은 열매를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고흥 팔영산 능가사 가람 단아한 돌길
고흥 팔영산 능가사 가람 단아한 돌길 ⓒ 이완우

가람 입구에 이제염오(離諸染汚) 글귀가 보인다. '연꽃 진흙탕(속세) 물 속에서도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초월)'는 의미이다. 순천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로서 비구니 도량으로 유명한 이 가람은 전각과 도량이 단아했다.

응진전 앞에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연상하게 하는 넓은 도상(圖像, 아이콘)이 있다. 이 넓은 도상에 차나무와 작은 돌로 만든 반듯한 미로 같은 작은 길이 나 있다. 이 길은 스님이나 신도들이 걸으면서 수행하는 방편의 공간이기도 하다. 화엄일승법계도는 신라 고승 의상이 깨달음인 화엄 사상의 요지를 7언 30구의 게송(210자)으로 축약해서 배열한 것이다.

 고흥 팔영산 능가사
고흥 팔영산 능가사 ⓒ 이완우

이 능가사의 사찰 이름은 능가경(楞伽經)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능가경은 붓다가 깨달은 '모든 분별 세계가 내 마음일 뿐'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를 설파한 초기 경전이란다. 능가경은 범어로 '랑카바타라 수트라'라고 하는데, 이 범어의 처음 발음인 '랑카'를 음차한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류큐(오키나와)국 왕자가 표류하여 이 가람에 도착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가람에서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여 무사히 바다의 거친 파도를 넘어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18세기 영조 때까지 이 가람에 류규국 왕자의 이야기를 그린 벽화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가람에는 또한 수수께기같이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설화가 하나 전해온다. 마한 시대에 중국의 어느 왕이 아침에 세수하다가 대야의 수면에 여덟 봉우리의 수려한 산의 자태가 나타났다. 왕은 그 자태를 그림으로 그려서, 신하들에게 찾으라고 명령하였다.

 고흥 팔영산 능가사
고흥 팔영산 능가사 ⓒ 이완우

왕이 그려준 산 그림을 지니고, 중국 사신들은 오랜 세월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림과 같은 산을 찾았다. 사신들은 마한 땅에까지 도착하였다. 이 지역의 어느 시골 노인이 사신들이 지닌 그림을 보고 '이거 장사손메아니요'라고 하였다. 고흥 팔영산은 옛 이름으로 '장사손메'라고도 하였나보다. 중국 사신들은 드디어 그림 속의 산을 찾았고, 팔영산(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팔영산의 옛 이름인 '장사손메'와 관련해서도 다도해 해안 지역인 고흥과 순천에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에 금강산 산신이 한 장사에게 금강산에 1만 2천 봉을 기한을 주고 쌓으라고 하였다. 장사는 열심히 이곳 저곳에서 산봉우리를 금강산으로 옮겼다. 산신과 약속한 날짜에서 하루를 남기고 1만 2천 봉에 한 개가 부족하였다. 장사는 마지막 산봉우리를 옮기기 위해 서둘러 뛰다가 엎어지고 말았다.

그때 두 손으로 짚은 데가 이곳 고흥 팔영산이란다. 무릎을 짚은 곳은 순천 하사 인덕마을이고, 뛰면서 힘을 준 발자국이 순천 해룡면 풍덕마을 뒷산 바위에 남아 있다는 전설이다.

 고흥 팔영산 능가사
고흥 팔영산 능가사 ⓒ 이완우

류큐국 왕자의 이야기나 '왕의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 전설이 어떤 의미를 내포할까? 오랜 옛날부터 이 지역에서 류큐국이나 중국 어느 지역과 해상 교류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설화로 전승된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고흥 팔영산의 다른 이름으로 팔봉산(八峰山)과 팔전산(八顚山)이 있다. 팔봉산은 여덟 봉우리 산으로 쉽게 풀어지는데, 팔전산 이름이 의아했다.

아! 그런데 '장사손메' 전설은 '장사가 손으로 짚은 산' 의미이므로, 장사가 넘어져서(전 顚) 산에 손을 짚었으면 양 손가락 사이로 여덟 봉우리가 비쭉 올라올 수 있다. 팔영산의 이명(異名)인 팔전산은 장사손메 전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리해 보았다.

 고흥 팔영산 능가사 단아한 장독대
고흥 팔영산 능가사 단아한 장독대 ⓒ 이완우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화가 수필가 교수) 화백은 '꽃과 여인'의 화가로서, 불꽃 같은 삶과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이곳 고흥 팔영산 능가사 가까운 마을의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고흥 지역에서 천경자 화백은 찬란한 전설이다. 아마 그녀가 어린 시절에 익숙하게 보았던 고흥 팔령산의 수려한 풍경과 불꽃 같은 여덟 봉우리의 산세가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서남 해안과 그 해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섬들로 구성된 우리나라 최대 면적의 국립공원이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에 생태적 보존 가치 높은 상록수림이 무성하다. 과거 지질시대의 화산 활동으로 조성된 섬과 기암괴석이 개성적인 풍광을 조성한다. 신라 시대 장보고의 해상왕국과 조선 시대 충무공 이순신의 전적지가 곳곳에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보길도, 청산도, 소안도, 완도, 나로도, 금오도, 초도, 비금 도초도, 홍도 등 대부분 해양 도서 지역에 해당한다. 그런데 유일하게 육지 산악지구인 팔영산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다도해 해상에서 팔영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 특별하게 아름답고,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 어디에서도 다도해의 절경이 아름답게 보인다.

 고흥 팔영산 능가사 완도호랑가시, 백일홍, 기와 연꽃 문양, 차나무 꽃
고흥 팔영산 능가사 완도호랑가시, 백일홍, 기와 연꽃 문양, 차나무 꽃 ⓒ 이완우

병풍처럼 늘어선 여덟 봉우리는 쪽빛 다도해와 만남서 어울리고 있다. 어쩌면 고흥 팔영산은 바다의 파도처럼 출렁이는 산이다. 팔영산이 다도해라는 자연의 큰 대야에 비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팔영산의 서북쪽 평지에 자리한 가람 능가사는 도량의 연못에 비치고 있다. 다도해가 팔영산과 마주하고, 팔영산은 능가사와 마주했다.

능가사의 류큐국 왕자의 이야기와 '왕의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 전설은 바로 다도해로 연결된다. 고흥 팔영산 능가사 단아한 가람에 수수께끼가 가득한 느낌이었다.

하루의 여행 여정이 아직 남아 있었다. 팔영산 능가사 가람에서 나로도의 우주과학관을 견학하기 위해 40km(45분)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나로도 우주과학관에는 오후 5시 이전에 도착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어느덧 산그늘 아래를 지나는 도로에는 살짝 어둠 기운이 깔리기 시작하였다.

 고흥 팔영산 능가사
고흥 팔영산 능가사 ⓒ 이완우


#고흥팔영산#고흥능가사#다도해해상국립공원#천경자#장사손메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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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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