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회사 상품 담당 10년 차 차장입니다. 고객지원 담당자 A가 항의가 들어오니 저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웠어요. 너무 억울해서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사람 잘못인 걸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후 A가 제 일을 도와주지 않고 있어요. 제가 상품 담당이라 고객지원이 필요한데, 말도 못 하고 끙끙대며 일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현명하게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회사의 중간관리자라는 사연자의 상황에 기업의 내로라하는 여성 임원 네 명이 머리를 맞댔다. 노선희 포드코리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총괄전무, 허진경 ㈜퀴네앤나겔 인사총괄 전무, 오경아 폭스바겐그룹코리아 인사담당 부사장, 손보현 전 두산퓨얼셀 기술전략 상무가 그들이다. 여성 리더들의 모임 사단법인 '윈(WIN, women in Innovation)이 주관하는 제 31회 차세대 여성 리더 퍼런스가 열린 20일, 'WIN 고민상담소' 프로그램에서 진행된 일이다.
' 멘토'로서 상담에 나선 오 부사장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필요한 일은 요청할 것 같다"라고, 손 전 상무는 "협력이 필수적이라면 개인적인 자리를 만들어서 감정을 풀어보면 어떨까"라고 조언했다. 노 총괄전무는 "A도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다 알 것"이라며 "사연자가 그 사람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고 스스로는 실리를 찾으면 어떠냐"라고 말했다.
다음은 사내 정치에 휘말려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외부에서 영입된 상사가 전 회사에서 후배 두 명을 데려오면서 중요한 업무는 그들에게만 맡기고 자신을 배제한다는 고민이었다.
오 부사장은 "대기업이라면 회사 임원이 자주 바뀌니, 2~3년 상사가 바뀔 때까지 버텨보라"고 진단했다. 그는 "보통은 내가 더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나, 본인의 커리어를 생각해 보고 이직도 준비해야 한다"라며 "잘못하면 나의 전문성이 아까워질 수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고 덧붙였다. 허 전무는 "그 사람에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면 좋겠다"라고 조언했고, 노 총괄전무는 "새로운 조직에 왔는데 내 사람이 없다면 리스크가 높을 수 있지만 언제까지 두 사람에게만 기댈 수는 없을 거다, 기회를 엿보라"고 말했다.
모든 업무에 대해 세세하게 개입하며 일일이 지시 내리고 통제하는, 이른바 빨간펜 선생님 상사에 대한 사연도 있었다. 허 전무는 "불안이 많은 상사가 그러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의 불안과 압박을 파악하는 노력을 한다면 그 사람의 강박을 관리할 수 있다"라며 "그렇다고 너무 맞춰주진 않되, 마음 아픈 사람일 수 있으니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총괄전무는 "회사에는 다양한 종류의 소시오패스가 있다"라며 "그 사람을 더더욱 귀찮게 해서 질리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콘퍼런스에 대해 손 총괄전무는 "사연자들 속 어느 캐릭터는 과거와 현재의 내 모습일 수 있다"라며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현명한 여성 리더가 되는 계기가 됐길 바란다"고 밝혔다.
"어떤 상황에서 결코 포기하지 마시라"
기업 내 다양한 갈등 상황을 공유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한 '차세대 여성 리더 콘퍼런스'는 여성들이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지혜를 모색하는 자리다. 이날 각계에서 여성리더로 자리매김한 멘토 50명과 멘티 250명이 참석해 그룹 멘토링을 진행하기도 했다.
콘퍼런스에서 서지희 윈 회장은 "윈은 여성들의 역할 확대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는 미션 하에 2007년 창립 후 2009년 5월부터 차세대 여성 리더 콘퍼런스를 시작했다"라며 "상·하반기 콘퍼런스를 진행한 지 15년이 지나 31회를 맞이했다, 여성 리더를 육성한다는 새로운 마음으로 콘퍼런스를 준비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서 회장은 "콘퍼런스를 통해 6700명의 참가자가 여성 리더로 육성됐고, 일부 멤버는 기업 임원으로 성장해 윈의 회원 자격으로 멘토로 참여해 후배들을 멘토링하는 선순환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 회장은 "사회 각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 조직 및 경제 부분에서의 여성의 경제활동 관련 지수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라며 "매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성 격차 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2024년 우리나라는 146개국 중에서 108위를 차지했다, 3년째 내리 하락한 결과"라고 전했다.
서 회장은 "매출액 500대 기업 등기임원 여성 비율이 11%라고 한다, 2019년 3%였던 게 급증한 것"이라며 "들여다보면, 내부 승진한 여성 임원 비율은 여전히 3%에 머물고 있고 외부 전문가들인 사외이사비율이 급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 회장은 "출산과 육아기 때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퇴장하고 복귀가 되지 않고 있는데, 기업들의 여성 관리자 육성이 시급한 이유"라고 진단했다. 서 회장은 "이 자리에 오신 여성 중간관리자 한 분 한 분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뜻"이라며 "어떤 상황에서 결코 포기하지 마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