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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소희씨, 수많은 여론조사 중 이걸 기사화한 게 유독 눈에 띄는군요.
이게 현 여론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보나요?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오마이뉴스와 그 충성 독자들의 정체성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20년이 넘은 독자이자 10만인클럽 회원으로서 조언합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노무현 시절 김당과 유창선으로 대변되는 당신 선배들의 욕된 역사를 반복하지 말기 바랍니다.
당신의 모습에 이 둘의 모습이 상당히 겹쳐 보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 박소희 씨,
왠만하면 댓글 안 다는 사람인데, 이번엔 그냥 넘어가기 힘드네요.
안병진에 이어 이젠 하다하다 못해 손학규까지 불러오나? 아래 댓글처럼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민주당 걱정하는 걸 오마이뉴스 기사랍시고 써 제끼고 있나? 회견 전문을 복붙한게 기사야?
한겨레의 주옥같은 현직 기레기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노무현 시절 오마이의 김당, 유창선과 같이 주옥같은 당신 선배 기레기들의 욕된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시오. (김당은 그래도 복붙한 걸 기사랍시고 떡하니 내보낼 정도로 게으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통장 잔고를 깜빡한 사이에 10만인 클럽 회비를 내지 못해 통지온 걸 보고 계좌이체하려 했는데, 근래 당신이 써제끼고 있는 여러 '기사'를 보고 이번 달은 그러지 않기로 했소.
좀더 예의주시하겠소. 10만인 클럽 회원 존속 여부도 그에 따라 결정하려 하오.
- 한정화, 정유진 기자님,
멀리서나마 격하게 응원합니다!!
- 읽다 보니 그럴듯 한 듯 하면서도 앞뒤가 좀 맞지 않는 대목들이 눈에 띄는군요.
"대학의 위기는 이미 이십 년 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하지만 대학의 경영 주체들은 이를 외면했고 정부의 재정 지원에만 의존해 왔다"
-> 한국 대학의 최근 역사를 잘 모르시는 것같군요. 현 대학 정원 대비 학령인구 감소는 1995년 대학설립준칙주의에 의해 대학 정원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미 바로 그때부터 감소가 예상되는 인구에 비해 대학 정원이 너무 많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죠. 청년 실업의 문제도 바로 대졸생이 너무 많다는 점에 기인하는 바가 크죠.
그리고 대학이 정부의 재정 지원에만 의존해 왔다고 하셨는데, 외계인이십니까? 대학 등록금을 동결시키고 돈줄을 틀어 막으면서 갖은 지원 사업을 당근으로 삼아 대학을 통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주범이 바로 교육부를 위시한 대한민국 관료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얘기인가요?
온라인 학습에 큰 기대를 걸고 계신 것같은데, 그렇다면 코로나로 전면 온라인 수업이 도입된 이후 학생들이 왜 등록금 반환을 외치나요? 온라인을 통한 반값 내기 반의 반값 등록금 실현인가요? 좀 현실을 알고 쓰시기 바랍니다.
수도권과 지방 간 양극화는 맞고, 이는 비단 대학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전 사회 영역에 해당되는 얘기죠. 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막중하고요. 지방대 문제가 지방대가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가 가장 핵심"이라고요?
첨단 신기술 분야 인재 양성이니 하는 얘기를 들으니, 서구 19세기 제국주의 시절에나 통했던 소박한 기술결정론에 경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기자가 얘기하는 건 기술대학이나 전문대학 모델이에요. University가 아니라 말이에요. 그리고 '위스타 사이언스 파크'가 뭔가요? Adlershof 예를 든 것같은데, 훔볼트 대학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조사를 좀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편적인 인상기 들고와서 전부인 것처럼 왜곡하지 말고요. 거긴 기술 전문학교가 아니라 University란 말입니다.
현재 한국 출산율은 세계 꼴찌에 자살율 세계 1위입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한국은 실패한 국가입니다. 첨단 신기술 분야 인재양성이니, 융복합 교육이니 학제간 융합연구 활성화니 하는 어디선가 항상 들어본 듯한 자락을 늘어놓는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이 될 것같아요? 도리어 이러한 레파토리가 출산 파업과 극악의 자살율의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재벌 산업상비군 양성소를 만들자는 따위의 얘기는 제발 그만 듣고 싶군요. 지겨워요.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기관 보도자료 짜깁기한 상투적인 얘기 말고 다음에는 좀 참신한 내용을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이런 걸로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에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제대로 제출할 수 있겠나요? 연구자, 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가 뭐 이런가요?
반성과 분발을 촉구합니다.
- 대한민국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관리'에는 장사도 포함되어 있는가 보군요. 5.5만원-7만원짜리 카라반을 돈받으면서 '관리'한다니 말이죠.
주민들의 반발이 불보듯 뻔한데도 "주민들에게 전달이 안 돼 이와 같은 오해가 생겼다"라면, 먼저 주민들에 대한 공단측의 '공문' 전달 미비에 대한 책임소재 추궁이 필요하며, 만약 그 고의성이 인정된다면 소극행정 내지 업무해태로 지리산국립공원경남사무소 책임자의 엄중 문책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러니 주민들은 공단이 '공문'을 통해 주민들에게 해당 사업 내용을 실질적으로 "전달"했는지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과정에서 대의에 공감하는 유능한 변호인을 섭외하셔서 제반 세부 사항에 발목잡히는 일이 없도록 두루두루 챙기시기 바랍니다. 자연과 그 터에 자리잡은 주민들의 생존권은 국공 따위의 '관리'를 넘어서는 범주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무쪼록 성공하시길 빕니다!
-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꼭 있어야 할 사람이다. 여러분은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기사 마무리 멘트를 아무 말로 채우지는 않을 터이다. 초등학교 때 듣다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간혹 떠오르는 이 몸서리치게 만드는 구절을 조중동도 아닌 오마이뉴스의 기사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예상 못했다. 기사 중간 ‘스파르타’ 운운 할 때부터 조짐이 좀 이상했긴 하지만, 결국 막판에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한번 물어보자. “있으나 마나 한 사람”는 대체 누구이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을 판별하는 건 누구인가? 인간을 “있으나 마나” 하나거나 “있어서는 안 될” 대상이라 판별하는 건 히틀러나 히로히가 하는 짓이 아니라는 걸 정녕 몰라서 쓰고 있는가?
이를 통해 기사에서 찬양하는 김원규가 일제 군국주의 파시스트라는 게 확인되며, 기자 또한 그 멘탈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문제는 오마이뉴스 편집부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참으로 현재진행형의 지난한 도정 위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만드는 하나의 사례다.
- 꺽쇠 괄호가 입력이 안되는군요. 한나 아렌트의 저서는 인간 조건입니다. 번역판 출판사는 좀 문제가 있으니, 가격도 저렴한 중고판 구입을 권합니다.
- 잘 하셨습니다. 민주주의 시민사회 발전의 일상화는 바로 다름 아닌 '말'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말은 동시에 행동이 되는 것 같네요. 그 안의 상황에서 시민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상을 제압하고, 기사님에게 힘을 주게 되니까요. 한나 아렌트가 에서 '먹고사니즘'을 넘어 말과 행위가 지니는 근본적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를 이 맥락에서 확인하게 되는 되는 듯 싶습니다.
- 인간 존엄의 보편성을 말씀해 주시고 또한 몸소 실천해 주심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보통 로그인도 안 하고, 그래서 댓글도 잘 안 달지만, 이 기사를 보고 기사 작성자인 '최서윤'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리라는 희망으로 몇 자 적는다.
'최서윤'은 미누씨에 대해 자행되는 한국 사회의 무례함을 주제로 삼아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글 저자는 통례에 벗어나는 언어 용례를 구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누씨에게 무례를 범하고 있다.
한국어에선 통상적으로 정세균처럼 국무총리라는 직책을 가진 경우를 제외하면, 홍길동에게는 홍길동'씨'란 일반적인 호칭을 부여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최서윤'은 미누씨를 처음에는 '미누'로, 그리고 그 이후에는 따옴표 없이 그냥 미누로 지칭하고 있다.
초반 미누씨의 이름을 둘러싸고 있는 이 작은따옴표는 아마도 '최서윤'이 한국사회가 미누씨에게 자행하고 있는 무례함을 텍스트를 통해 날것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각성을 촉구하기 위한 의도로 집어 넣은 일종의 아이러니적 거리두기의 장치라고 여기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후반부에서 이루어지는 이 작은따옴표의 결락이 오마이뉴스가 글을 옮겨오는 과정에서 비롯된 실수이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결락은 유감스럽게도 최서윤(이 정도면 나도 이제 작은따옴표를 생략하련다)의 자가당착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즉, 최서윤의 말은 무례함(aka 인종주의)에 대해 항의하고 있지만, 실제 그 말을 지닌 텍스트의 몸뚱아리는 그 무례함을 바로 온몸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가당착, 자기모순을 진지하게 성찰함으로써, 당신 최서윤과 미누씨 간에 놓여있는 간극이 기실 만만치 않게 크다는 쓰라린 깨달음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거리에 대한 인지를 통해 양자 간의 연대가 더욱더 강력하게 되기를 또한 바란다.